정월대보름 유래정월 대보름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권 1 <기이(紀異)> 편이다. 신라의 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이 정월 보름을 맞아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에서 산책을 하는 중에 쥐와 까마귀가 왕에게 다가왔
한국 무형문화재로 다시 선 '장 담그기'2018년 12월 장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음식 관련 국가무형문화재로는 조선왕조 궁중음식, 김치 담그기, 그리고 전통주 등이 있다. 장 담그기가 새로 지정된 데는 최근 우리 사회의 먹거리 붐 현상과도 무관하지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10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 하늘재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충주시를 잇는 해발 520m의 고갯길로, 우리나라 문헌에 나오는 고갯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옛길이다.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이 하늘재이다. 포암산과 탄항산의 사이 말안장처럼
겨울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우다.조선 후기 화가인 혜산(蕙山) 유숙(劉淑)(1827∼1873)이 그린 홍매화 그림의 8첩 병풍이다.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이었던 유숙(劉淑, 1827-1873)) 사과(司果)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초상화를 잘 그렸던 유숙은 1851년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1449년(세종 31) 세종의 명을 받아 김수온이 작성한 사리영응기 이야기김수온은 조선 초기 사대 문장가에 드는 대학자이며 세종과 세조 연간에 주요관직에 종사하였다. 김수온의 친형은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의 주역으로 불리는 신미 대사이다. 이 책은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9단종과 금성대군이 함께 넘는 한 많은 고개 고치령 옛길고치령..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서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를 연결하던 마구령 옛길과 고치령 옛길은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강원도 태백 근처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입춘을 알린다. 창덕궁 보춘정보춘정(報春亭)은 창덕궁 내 성정각(誠正閣)에 딸려있는 조선 숙종 대에 지어진 누각이다. 창덕궁 성정각 건물 동쪽에는 누각 건물이 붙어 있는데, 동쪽에는 희우루(喜雨樓), 남쪽에는 보춘정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희우(喜雨)’는 가뭄 끝에
‘강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의 비밀스러운 주문, 진언(眞言)진언(眞言) ‘옴 마니 반메 훔’ 강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은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조성된 거대한 규모의 마애불상으로 한국 근대 불교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년명(紀年銘) 불상이다. 마애
열두 차례 파견된 조선통신사의 길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는 일본의 요청에 의해 조선 왕실이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이다. 조선 시대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사신을 파견한 것은 세종대부터이지만, 임진왜란을 겪은 뒤 얼마 동안은 통신(通信)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부당하
우리나라에 고려의 왕들과 조선왕의 어진들이 전해지지 않은 이유어진(御眞)은 국왕의 초상화를 뜻한다.진용(眞容), 진(眞), 진영(眞影), 수용(睢容), 성용(聖容), 영자(影子), 영정(影幀), 어용(御容), 왕상(王像), 어영(御影)이라는 단어들로 불리었다가 1713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8강원도의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4대 고개 가운데 하나로 켜켜이 쌓인 선조들의 발자국 명승 대관령 옛길 대관령은 큰 고개다.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넘는 4대령 중의 하나로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
공주 무령왕릉, 유물로 살펴보는 상호 교류의 흔적지난 2015년 공주와 부여, 익산의 백제 역사 유적 8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바로 백제 역사유적지구다. 이곳에는 ▶ 웅진 시기 백제의 유적인 공산성,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사비 시기 백제의 유
보은 삼년산성(報恩 三年山城)보은 삼년산성(報恩 三年山城)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에 위치하는데 삼국이 쟁패한 국경의 요충지로 축성시기와 축성기간, 동원된 인력, 성곽전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소상하게 알려진 유일한 고대산성이다.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았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7속리산 말티재(말티고개)말티고개라고도 불리는 말티재는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속리산의 언덕으로 충북 보은군 장안면 장재리 산5-12번지다.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을 오르기 위해 길을 닦았다 하며, 그 뒤 인도의 형태로 존재하였지만, 현재의 말
누구나 부르는 노래, 아리랑민요 조사를 할 때 민요를 불러주셨던 분들에게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 노래도 모리믄 사람인가?’, ‘아리랑도 못하는 사람이 있당가?’ 아리랑은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