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장 담그기

한국의 장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완성된다.

한국 무형문화재로 다시 선 '장 담그기'

2018년 12월 장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음식 관련 국가무형문화재로는 조선왕조 궁중음식, 김치 담그기, 그리고 전통주 등이 있다. 장 담그기가 새로 지정된 데는 최근 우리 사회의 먹거리 붐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현대 미식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오히려 전통음식문화를 되돌아보게 해주었고 이를 지키고 보전하는 것으로 나아간 것이다. 수천 년간 이 땅에서 이어 온 장을 담그는 과정은 우리가 지키고, 보호하고,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무형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국가민속문화재 논산 명재고택 ©이미지투데이



장(醬) 종주국 한국은 대두 발효 식품(fermented soybean foods)으로 수천 년 동안 주로 아시아인의 식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이렇게 전통적이고 토착화한 발효 식품이 많은 이유는 그 만드는 법이 대개 가정에서 기술로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두 발효 식품인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장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왜 장이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장은 식물성 단백질량이 많은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소금물을 넣고 미생 물의 작용으로 발효시킨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구수한 향미가 나며, 조미료로 사용되어 왔다. 또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식품이다.


한국인의 밥상은 채식에 기반한 음식이 특징인데 과거 지형적 조건 때문에 농산물을 경작할 수 있는 땅이 부족해 주로 산에서 나는 임산물을 채취해 먹었다. 채소와 나물을 맛있게 먹으려면무엇보다 장이 중요하다. 그리고 채식을 주로 하는 경우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는데,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조건이 바로 콩으로 만든 장이다. 따라서 한국의 장은 채식과 발효 음식 문화를 대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국 음식 문화의 정수이다.

콩의 원산지는 지금의 만주 땅으로 고구려시대 이후로 우리 땅에서 나는 콩을 이용한 장이 발달하게 되었다. 또 콩은 예전에 벼농사 후 남은 논 귀퉁이에서 주로 경작했는데 한반도 대부분의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나며 전 국토에서 콩의 경작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소금, 천일염도 장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데, 서해안에 있는 대규모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에서도 천일염을 생산하는 유일한 곳이다. 한국의 소금은 바닥이 고르고 수심이 일정한염전에서 생산되어 입자가 균일하며, 끝에 단맛이 난다. 그리고 물은 천혜의 선물로 한국은 예부터 물이 좋은 나라이다. 장의 시작이 좋은 물에서 출발하기에 장은 이러한 우리 천혜의 자연 재료인 콩과 소금, 물로 만들어진 최고의 창작품인 것이다.

02.항아리에 친 금줄은 장맛이 솔잎처럼 변치 말라는 의미이며, 숯과 같이 검고, 고추처럼 붉으라는 표현이다.

버선은 장맛이 변했더라도 되돌아오라는 의미로 햇빛을 반사시켜 벌레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 ©문화재청

03.장 가르기 과정. 메줏덩어리에 항아리 속 장물을 부으면서 잘게 부순다. ©문화재청    04.소금물에 불은 메줏 덩어리를 항아리에서 꺼내는 모습 ©문화재청    05.장을 담근 항아리에 대추, 고추 등을 넣는 과정 ©문화재청


치즈는 우유의 단백질만을 모아 덩어리를 만들었다가 곰팡이를 이용해 만든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음식인 콩 발효 식품 템페(tempeh) 역시 곰팡이를, 일본의 낫토(納豆)는 낫토균을, 빵이나 와인은 효모를 이용하는, 즉 ‘단일 발효’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국의 장은 곰팡이, 세균, 효모 등 세 가지 미생물을 모두 이용하는 복합 발효의 산물이다. 장이 만들어 전파된 데는 불교의 영향이 컸다.

한국의 사찰은 주로 산속에 있고 육식을 할 수 없는 규칙때문에 사찰에서 먹는 음식에는 채식과 저장 발효 음식이 발달했는데 그중에서도 주로 콩을 이용해 단백질을 섭취했다. 또 한 장은 365일 돌봄을 통해 완성된다. 한국의 장은 낮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 직사광선에 노출하여 살균작용을 통해 잡균을 없애주고, 밤에는 수분이 들어오지 못하게 뚜껑을 닫아준다. 숙성 초기에는 장이 잘 익도록 수시로 장을 저어주어야 하며, 항아리 외부는 잡균이 자라지 못하게 늘 깨끗하게 청소하고 유지하는 사람의 관심과 수고가 필요하다.

한국의 장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완성된다. 세월이 만들어 낸 산물로 각 가문은 오랫동안 장의 맛과 품질을 이어 왔다. 해가 바뀌어도 장맛이 유지되는 비결이 바로 ‘겹장 형식’ 이다. 예로부터 옹기는 숨을 쉰다고 알려져 있다. 이 숨 쉬는 옹기가 장을 제대로 발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또 장은 고기를 대적할 수 있는 감칠맛을 줄 수 있는 건강한 한국의 소스이다. 나물은 우리 식생활의 부식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음식인데 장이 발효감칠맛을더한다. 또한 장은 단백질이 부족한 한식에서 오랜 세월 단백질 보충 역할을 담당했다. 콩을 발효시킨 장류에는 콩에는 없는 비타민 B12가 생겨나 장수에 필요한 영양소 보충도 한다.

장 담그기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에서 중요한 점은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장 담그기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이되 우리 국민 모두가 바로 장 담그기의 전승 주체이면서 주인공이라는 엄중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장을 함께 담그는 공동체 문화도 살아나고 있다. 가정뿐만 아니라 마을의 종가 그리고 사찰, 학교, 회사와 같은 단체급식소에서도 장을 함께 담그는 문화가 살아나고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전승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민족의 발효 음식인 장은 할 일도 많고 앞으로 갈 길도 멀다. 과학적 연구 외에도 사찰 장이나 종가 대물림 전통 장, 왕실 장 등의 조리법을 기록하여 남기는 작업 또한 중요하다. 이처럼 전통장 담그기를 식품으로만 인식하기 보다는 가족공동체의 역사 문화적인 가치로 보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재외동포(조선족, 고려인 두레공동체 등) 사회의 전통 장류 제조와 사용 실태 등에 관한 심층 연구도 필요하다. 장은 맛을 좌우하는 조미료에서 더 나아가 인류미래의 건강 음식이다. 전통 장은 인공 첨가물 없이 자연의 재료와 물과 햇빛 그리고 시간과 정성으로 만드는 식품 이다. 그리고 느리게 살아가는 철학을 실현하는 한국 슬로 푸드(slow food)의 대표 주자이다. 글. 정혜경(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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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