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

1449년(세종 31) 세종의 명을 받아 김수온이 작성한 사리영응기 이야기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
1449년(세종 31) 세종의 명을 받아 김수온이 작성한 사리영응기 이야기

김수온은 조선 초기 사대 문장가에 드는 대학자이며 세종과 세조 연간에 주요관직에 종사하였다. 김수온의 친형은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의 주역으로 불리는 신미 대사이다. 이 책은 김수온(金守溫)이 편찬한 부처님 사리에 대한 영험기로서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질은 한지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 30.3㎝, 가로19.8㎝이다. 현재 규장각, 고려대학교 육당문고, 동국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소헌왕후(昭憲王后)가 세상을 떠난 후 불교에 의지하던 세종은 자신의 손으로 없애버린 문소전(文昭殿)에 있던 내불당(內佛堂)을 (『세종실록』 30년 7월 17일), (『세종실록』 30년 8월 5일) “태종이 일찌기 문소전 곁에 불당을 세워 열성조의 명복을 빌었으나 지금에 이르러 불당을 경영하지 못하는 것은 선왕의 뜻을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며, 의정부 좌참찬 정공과 중추원사 민신 등에게 임무를 맡기고 안평대군을 총감독으로 하여 내불당 재건립을 진행하였다.

그 명에 따라 궁성 북쪽에 불당을 준공하였는데, 불전 1칸, 승당 3칸, 선당(禪堂) 3칸, 정문과 주방과 곳간 등이 26칸이었다. 또 황금으로 삼존불을 조성하고, 약사여래와 아미타불보살상과 나한상을 조성하여 모셔, 그해 7월 28일 기공하여 11월 20일 준공하였다. 대자암(大慈庵) 주지 신미(信眉)와 김수온에게 『삼불예참문(三佛禮懺文)』을 짓게 하였다. 또한 세종은 「앙홍자지곡(仰鴻慈之曲)」·「발대원지곡(發大願之曲)」·「포법운지곡(布法雲之曲)」 등 세종대왕이 직접 곡을 붙인 악곡(樂曲) 7수와, 「귀삼보(歸三寶)」·「찬법신(贊法身)」·「찬보신(贊報身)」·「찬화신(贊化身)」 등 9수의 찬불가는 범패승들과 45명의 국악 연주자와 10명의 무용수가 화려하게 춤추며 경복궁에서 장엄하게 연주되었으며, 내불당 이날 경찬회에서 열린 세종찬불관현악단에는 총 61명이 참가했다고 사리영응기의 기록은 전한다. 수양대군(首陽大君)도 새로 저술한 『월인석보(月印釋譜)』를 받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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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