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8

강원도의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4대 고개 가운데 하나 대관령 옛길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8

강원도의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4대 고개 가운데 하나로 켜켜이 쌓인 선조들의 발자국 명승 대관령 옛길

대관령은 큰 고개다.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넘는 4대령 중의 하나로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사이에 자리한 명승 대관령 옛길은 예로부터 영서와 영동을 연결하는 길 중에서 가장 이용량이 많다. 아흔아홉 굽이라는 대관령 고갯길은 굽이진 골짜기를 돌고 돌아 오른다.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강릉의 한 선비가 곶감 한 접(100개)을 지고 과거를 보러 가다가 대관령 굽이 하나를 돌 때마다 곶감 하나를 빼먹었다고 한다. 정상에 도달하고 보니 곶감이 달랑 한 개만 남아 있어 대관령이 아흔아홉 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관령 고갯길이 굽이가 하도 많아 생긴 전설로 생각된다.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의 영감을 받았고, 김홍도가 풍경에 취해 산수화를 그렸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했었다. 옛날 대관령을 넘던 신사임당은 이 고갯마루에 올라 산 아래 멀리 펼쳐진 고향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고향집의 노모를 떠올리고는 애틋한 마음에 젖으며, 고향인 강릉을 떠나 서울로 가는 신사임당이 대관령을 넘으며 지은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이 있다.

慈親鶴髮在臨瀛 身向長安獨去情
回首北村時一望 白雲飛下暮山靑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 떠 있는 곳 저녁 산만 푸르네



오늘날 대관령을 넘는 길은 세 가지나 된다. 첫째는 골짜기를 따라 단거리로 개설되어있는 가장 오래된 대관령 옛길이며, 둘째는 차량을 위해 개설된 신작로가 1975년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확장된 도로다. 셋째는 대관령을 관통하는 일곱 개의 터널 구간을 통해 영동과 영서를 단번에 연결한 고속도로다. 대관령을 넘는 방법이 차량으로 바뀌면서 대관령 옛길은 일찍이 폐쇄되었다. 그러나 차도가 별도의 노선으로 개설되면서 도보로 올라야만 하는 옛길은 다행히 옛 모습 그대로 남게 되었다.

백두대간의 뿌리인 태백산맥 줄기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대관령 옛길은 주변 계곡과 옛길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2010년 명승으로 지정된 이 고갯길이 대관령 옛길이다. 큰 뜻을 품고 한양으로 향했던 수많은 선비와 등짐 들쳐 멘 보부상의 발자국 역시 대관령 옛길에 남았다. 영동 사람들에게는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동해에서 잡힌 해산물은 대관령을 넘어 영서지방으로 퍼져나갔고, 영서지방에서 생산된 토산품 역시 대관령을 거쳐 강릉의 구산장과 연곡장 등으로 넘어갔다.

대관령 옛길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사이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정상은 해발고도 832m이며 동쪽사면으로는 남대천이 발원하고 있다. 도보로 고개를 넘던 시절에 이용됐던 대관령 옛길은 성산면 어흘리로 들어가면 계곡으로 형성된 하천을 따라 이어진다. 고개 중간에 자리한 반정(半程)에서 내려가는 길과 대관령박물관이나 부동(釜洞, 가마골)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반정은 ‘길의 절반 되는 위치’라는 뜻으로 ‘반쟁이’라고도 불린다. 도중에는 원울이재(員泣峴, 원울현)가 있는데, 이곳은 신임 강릉 부사가 부임할 때 고갯길이 험해서 울고, 임기가 끝나서 다시 고개를 넘어갈 때는 강릉의 인정에 감복해서 울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대관령 옛길은 과거 가마골로 불리던 어흘리 마을의 주택들이 위치한 지역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상류로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나란히 우측으로 난 옛길을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통나무로 벽체를 하고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주막집에 다다른다. 예전에 주막이 있던 터에 재현된 주막집은 흙 마당이 친근한 느낌을 준다. 마당 한옆으로 놓인 물레방아와 자연석으로 만든 수조는 매우 정겹다. 그 옛날 허기진 길손들이 주린 배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채우던 모습을 상상해본다.


주막


옛길과 백두대간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토종 소나무 금강송, 수백년의 세월을 옛길과 함께 지켜오고 있다


대관령 옛길 깊은 산속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하는 금강소나무 숲이 빽빽하게 펼쳐진다. 한겨울 눈이 내릴 때는 수묵화처럼 은은한 풍경이 주변을 가득 채운다. 반정에서 만나는 강릉 시내 모습과 동해의 풍경은 묵묵히 걸어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길이 험준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대관령은 겨울이면 험난한 고개를 지나다 목숨을 잃는 여행객이 많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강릉부의 향리 이병화가 반정에 주막을 설치했다. 주막에서 쉬거나 하룻밤을 묵는 여행객은 이후 그를 기리는 ‘기관 이병화 유혜불망비(記官 李秉華 遺惠不忘碑)’를 근처에 세웠다.


김홍도의 산수화
대관령 고개에서 강릉 방향을 보고 그렸으며, 옛길이 저 멀리 이어지고 경포호가 보인다.


국사성황당(大關嶺 國師城隍祠)


대관령은 강릉의 진산이기도 하다. 강릉 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국사성황당(大關嶺 國師城隍祠)이 정상에 위치한 곳으로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대관령은 영산(靈山), 신산(神山)으로 많은 전설과 민속이 전해진다. 신령스러운 장소인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산신제’와 ‘국사성황제’가 열린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을 산신, 강릉 출신으로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고승인 범일을 국사성황신으로 모시고 있다.

옛길은 현대의 문명세계를 잠시 잊게 하는 장소다. 점점 빨라져만 가는 속도에 함몰된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어떠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여유의 공간이다. 옛길을 걷는 것은 지나간 역사 속 느림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옛날 보부상들이 봇짐을 지고 힘겹게 걸어가던 흙길, 과거를 보기 위해 떠난 선비가 청운의 꿈을 안고 오르던 돌부리 가득한 옛길을 느림의 미학을 음미하며 천천히 걷는 것은 문명의 수레바퀴에 얽히고설켜 있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