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1.4℃
  • 맑음강릉 5.9℃
  • 구름많음서울 4.9℃
  • 맑음대전 3.6℃
  • 맑음대구 2.5℃
  • 맑음울산 2.8℃
  • 맑음광주 4.4℃
  • 맑음부산 5.1℃
  • 구름많음고창 3.6℃
  • 맑음제주 8.8℃
  • 맑음강화 2.1℃
  • 맑음보은 -1.8℃
  • 맑음금산 -0.7℃
  • 맑음강진군 1.0℃
  • 맑음경주시 -0.5℃
  • 맑음거제 2.9℃
기상청 제공

충무공의 넋어린 옥포대첩 기념관 충무공의 넋어린 옥포대첩 기념관
기자가 거제도에 있는 옥포대첩 기념관을 찾은 날은 마침 비가 살짝살짝 눈치를 보며 내린다. 1971년에 당시 통영군(현, 통영시) 용남면과 거제군(현, 거제시) 사등면 사이의 견내량해를 잇는 거제대교가 세워졌으며, 거제도는 섬 신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동부와 남부에 끼고 있어 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이곳 옥포대첩 기념관은 우여곡절을 3번씩이나 겪으면서 옮겨져 1991년 12월 20일 기념공원 사업을시작하여 1996년 5월15일 준공했고, 6월 22일에 옥포대첩기념공원이 개원되었다. 1998년 4월 22일에는 이순신 장군 사당 건립공사를 시작하여 1999년 5월 6일에 준공되었다. 매년 이순신 장군 제례행사가 열리며, 6월 16일을 전후하여 3일간 옥포대첩기념제전이 개최된다. 옥포대첩기념탑과 옥포정은 본래 옥포조선소(현재는 대우조선해양)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1973년 옥포조선소가 기공됨에 따라 1974년 옥포대첩기념탑과 옥포정을 조선소 부근 거제시 아주동 탑곡 마을로 옮겨지었다가, 그 곳이 부지가 좁고 위치도 적합하지 않아 다시 현재 이곳 옥포동에 부지를 확보하여 옥포대첩기념공원을 조성하면서 기념탑과 누각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포대첩 기념공원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첫 승전한 옥포해전을 기념하고 충무공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하여 유서깊은 옥포만에 조성한 기념공원이다. 기념탑과 옥포루에 오르면 정면으로 보이는 옥포만의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당시의 이충무공의 전승의 쾌거를 상기해 볼 수 있다. 공원 내에는 기념탑과 참배단, 옥포루, 기념관, 이순신장군 사당 등이 있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을 거둔 옥포해전을 기념하고 충무공정신을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옥포만이 내려다보이는 거제시 옥포동 산 1번지 일원에 약 109,000m2의 규모로 옥포대첩기념공원을 조성했다. 공원 내에는 30m 높이의 옥포대첩기념탑과 참배단, 옥포루, 기념관, 기념탑 이순신 장군 사당 등이 있다. 1592년 4월 14일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군은 경상북도 상주, 충청북도 충주를 거쳐 5월 2일에는 마침내 서울을 점령했으며, 6월 13일에는 평양에 도달했다. 일본군은 전국 곳곳에서 살인, 방화, 약탈, 부녀자 납치를 일삼았다.일본군 부산 상륙 후 경상우수사 원균은 율포만호 이영남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4월 29일 구원요청을 받은 이순신 장군은 출전을 결단하고, 5월 4일 축시(丑時, 새벽 1~3시)에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을 거느리고 전라남도 여수의 전라좌수영을 출발하여 경상도로 향했다.이순신은 소비포 앞바다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하룻밤을 지낸 다음 5월 5일 새벽 원균과 만나기로 약속한 당포로 향했다. 5일 밤을 당포 앞바다에서 보내고 6일 아침에야 전선 1척을 타고 도착한 원균을 만나 일본 수군의 정세를 상세히 들은 이순신은 남해현령과 경상도 진장 들의 전선 6척을 증강 편성하고 거제도 남단을 거쳐 송미포 앞바다에 도달한 후 밤을 지냈다.5월 7일 새벽 송미포를 출발하여 일본 수군이 머무르고 있는 가덕도로 향했다. 옥포만은 지형이 복잡한 거제도의 동쪽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어항이다.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경, 조선 수군 함대가 옥포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이순신 장군이 타고 있던 판옥선 전방의 척후선으로부터 옥포 선창에 일본 수군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왔다. 이순신은 여러 장병들에게 일본 수군 발견을 알림과 동시에 전열을 가다듬은 후 공격 개시 명령을 내렸다. 이 공격으로 옥포선창에 정박하고 있던 일본 전함 50여 척 중 26척을 격파했다. 당시 일본 수군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등의 장수가 지휘했다.옥포해전은 조선이 일본의 수군을 맞아 벌인 최초의 해전(海戰)이며 조선 수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의 통신 및 보급로를 해상에서 차단함으로써 일본군의 상륙, 진격을 저지했고 동시에 조선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유시문 기자









수행의 향기


해방70년 - 근대불교제종파
해방70년 - 근대불교제종파 사진 : 예천 회룡포 광복 70년의 한국불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1천6백년의 한국불교사를 정립하면서 새로운 미래불교를 펼쳐가는전환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는 그동안 하향과 상향의 신앙형태를 모두 겪었다. 국가의 절대적인 지원아래 위에서 밑으로 전해지는 하향의 귀족불교와 처절할 정도의 박해를 받으면서 밑에서 위로 전개했던 민중불교를 다같이 경험했고 이제는 비호도 탄압도 없이 자신의 두 다리로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그 기간이 광복 70년일 때 짧은 세월동안 많은 과거가 정리되었고 그 위에 앞으로의 역사를 이끌어갈 설계도가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장래는 매우 밝다고 여겨진다. 특히 젊은 스님들의 수행열과 신도들의 높은 의식구조는 한국불교를 늘 깨어있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한국불교의 중추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종단일 때 과연 오늘의 각 종단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종단의 현황은 바로 한국불교의 현주소와 직결되는 까닭이다.종파불교라는 말은 한국불교의 한 특징처럼 되어 있다. 불교가 삼국에 전래된 후 많은 스님들이 입당하여 수학했고 돌아온 후 한


일본 귀신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귀신마을로 불리우던 비석마을 산복도로변의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마을이다. 지금도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 등이 계단, 담장의 부재로 사용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덕분에 도시괴담 등을 모아놓는 사이트에 관련 괴담이 자주 보인다.아미동 비석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좀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네다. 이 곳 역시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남겨두고 떠난 후 5년간 비어 있다가,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꽉 차있는 시가지를 피해 마을을 꾸렸던 것이다.비석마을의 골목을 따라 거닐다 보면 각진 모양의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되었다. 토성역을 나오면 탐방로 안내판이 보이고 고갯마루에 마을지도가 있다.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비석을 사용한 건축물 앞에는 안내판도 있다.아미동 비석마을의 진수를 맛보려면 숨은 그림을 찾듯 비석의 자취를 찾아내는 게 흥미롭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개방성을 지닌 마을이 아니다. 삶의 골목을 거니는 게 부담스럽다면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아미문화학습관이나 기찻집 예술체험장 등을 방문하길 권한다.아미문화학습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