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마음

感謝(감사)의 마음

오늘은 설사 意味(의미)는 잘못 받아들여도 佛法(불법)을 솔직한 마음으로 ()하여 幸福(행복)하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옛날 인도의 어느 마을에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오직 하나의 즐거움은 每月(매월) 한번 ()이 집에까지 와주어 經文(경문)을 불러 주고 法話(법화)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지금까지 몇십 번이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훌륭한 ()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 달의 일입니다. 그날은 별로 이야기를 잘 못하는 老僧(노승)이 할머니집에 왔습니다. 老僧(노승)經文(경문)을 부르고 나서 막 說法(설법)을 하려 했으나 [이 할머니는 지금까지 훌륭한 ()法話(법화)를 들어서 나보다도 여러 가지 일을 알고 있을 터이다. 오늘 내가 이야기 하려는 것도 틀림 없이 ()에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갑자기 自身(자신)이 없어져 說法(설법)을 안하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할머니는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 것인가 라고 기다렸는데 급히 돌아가 버려 이제까지 이런 일이 없었기에 왜 그랬을까 하고 퍽 괴로워 했습니다.

한 때는 그 老僧(노승)에게 不信感(불신감)을 가졌으나 생각을 바로 잡고 法話(법화)를 받지 못한 것은 무언가 나에게 잘못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이것 저것 반성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할머니는 [앗차!]하고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每月(매월) 自宅(자택)까지 오게하여 說法(설법)을 받는 것은 供養(공양)하고 있으니까 當然(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自己(자기)의 생각의 틀림을 크게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다음날 아침 절에 參詣(참예)하여 부처님과 老僧(노승)에게 이것을 사과드렸습니다. 그리고 더욱 正直(정직)自己(자기)()하는 信心(신심)盟誓(맹세)드렸습니다. 老僧(노승)은 반대로 自己(자기)의 맡은 일을 다하지 않았음을 반성하고 할머니가 그것에 의해 오히려 환희있는 信心(신심)의 뜻을 가진것에 감탄하여 今後(금후) 더욱더 佛道(불도)精進(정진)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이것은 老僧(노승)說法(설법) 안한 것을 할머니가 自己(자기)信心(신심)이 부족함이라 알고 그 結果(결과) 지금까지 이상으로 自身(자신)信心(신심)을 구하여 더한층 환희있는 信心(신심)을 실천할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같은 것이라도 그 사람의 포착하는 방식에 의해 感謝(감사)로도 ()으로도 됩니다. 똑 같은 일도 각각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어 結果(결과)로서 信心向上(신심향상)으로도, 信心退轉(신심퇴전)으로도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습니다.

[손뼉을 치면 새는 날아가고 물고기는 몰려오고 下女(하녀)()를 가져온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길손이 경치가 좋은 다방에서 쉬고 있을때 아무뜻도 없이 손을 탁! 쳤던바, 下女(하녀)()를 부른 줄 알고 급히 ()를 가져왔습니다. 물고기는 모이를 주는 신호라고 생각해 몰려왔습니다. 옆에 있던 새들은 쫓는 줄 알고 급히 날아갔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손을 두드리는 행위가 듣는 사람의 境涯(경애)에 따라 ()으로도 ()으로도 갖가지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좋은 일은 自己(자기)의 탓, 나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하지만 大聖人(대성인)님은 [내편 보다도 迫害(박해)하는 사람에 의해 自身(자신)(), 成佛(성불)은 배양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善知識 (선지식)으로 받아 들인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거짓말의 알림]이라는 韓國(한국)이야기입니다.

어느 지방에 ()라는 靑年(청년)이 있었습니다. ()는 지방의 小科(소과)<공무원 登用試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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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