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門戒壇(본문계단) 大御本尊(대어본존)의 意義(의의)

本門戒壇(본문계단) 大御本尊(대어본존)의 意義(의의)


 강사 : 海外部長(해외부장) 尾林廣德(오바야시고도쿠) 御尊師(어존사)


本宗(본종)에 있어서 本門戒壇(본문계단) 大御本尊(대어본존)님의 意義(의의)에 관해서 약간 말하고자 합니다.
大聖人(대성인)님은 佐渡流罪中(사도유죄중)인 文永(분네이) 10년(1273년) 4월에 [觀心本尊抄(관심본존초)]를 著述(저술) 하셔서 大聖人(대성인)님 自身(자신)의 開悟(개오)에 依據(의거)한 一閻浮提(일염부제) 未曾有(미증유)의 御本尊(어본존)의 綱格(강격)에 관해서 밝히신 것입니다.
[觀心本尊抄(관심본존초)]에 [이 本門(본문)의 肝心(간심)인 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의 五字(오자)에 있어서는 부처가 文殊(문수). 藥王(약왕) 등에게도 이를 付囑(부촉)하지 않으셨으니 하물며 그 以外(이외)에랴. 但(단) 地涌千界(지용천계)를 불러서 八品(팔품)을 說(설)하여 이를 付囑(부촉)하셨느니라. 이 本尊(본존)의 相貌(상모)는 本師(본사)의 娑婆(사바) 위에 寶塔(보탑)이 空中(공중)에 있으며 塔中(탑중)의 妙法蓮華經(묘호렌게쿄)의 左右(좌우)에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 多寶佛 (다보불) 釋尊(석존)의 脇士(협사)인 上行(상행) 등의 四菩薩(사보살) 운운](신편 654) 라고 說(설)하셨습니다.
그리고 [觀心本尊抄(관심본존초)]의 맨 마지막에 [本門(본문)의 釋尊(석존)을 脇士(협사)로 하는 一閻浮提(일염부제) 第一 (제일)의 本尊(본존)이 이 나라에 서느니라. 月支(월지). 震旦(진단)에는 아직 이 本尊(본존)이 계시지 않도다.] (新,661) 라고 大聖人(대성인)님은 이 末法(말법)에서의 文底下種(문저하종)의 本尊(본존)의 綱格(강격)을 提示(제시)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御指南(어지남)은 [日女夫人答書(니치뇨부인답서)]등 에서도 [여기에 日蓮(니치렌)이 어떠한 不可思議(불가사의)한 일인지 龍樹(용수). 天親(천친) 등, 天台(천태). 妙樂(묘락)  등조차도 나타 내시지 않았던 大曼茶羅(대만다라)를 末法(말법) 二百余年頃(이백여년경)에 비로소 法華弘通(법화홍통)의 旗幟(기치)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日蓮(니치렌)의 自作(자작)이 아니로다] (신편,1387) 라고 이 또한 確實(확실)하게 御本尊(어본존)의 綱格(강격)에 관해서 쓰고 계십니다. 이 御文(어문) 등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하면 本門(본문)의 御本尊(어본존)만이 아니라 大聖人(대성인) 一期(일기)의 御化導(어화도)의 究竟(구경)이기도 한 本門戒壇(본문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님은 未曾有(미증유)의 大曼茶羅(대만다라) 로서 大聖人(대성인) 在世中(재세중)에 御本佛(어본불) 大聖人(대성인)님의 손에 의해서 正確(정확)히 確立(확립)되어 顯現(현현)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이 御本尊(어본존)님의 相貌(상모)는 실제로 大聖人(대성인)님이 정확하게 먹으로 있는 그대로 法體(법체)의 모습을 大曼茶羅(대만다라)로 圖顯(도현)하신 것으로 [觀心本尊抄(관심본존초)] 나 [日女夫人答書(니치뇨부인답서)] 혹은 [報恩抄(보은초)] 등에서 提示(제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大聖人님은 [本尊問答抄(본존문답초)]에 [法華經(법화경)의 題目(제목)을 갖고 本尊(본존)으로 하도다] (신편 1274) 라고 확실하게 提示(제시)하고 계십니다.
二祖(이조) 日興上人(닛코상인)도 또 [富士一跡門徒存知事(후지일적문도존지사)]에 [聖人(성인)이 세우신 法門(법문)에 있어서 는 결코 繪像(회상) 木像(목상)의 佛(불) 菩薩(보살)을 가지고 本尊(본존)으로 하지 않음이라. 다만 御書(어서)의 뜻에 따라서 妙法蓮華經(묘호렌게쿄)의 五字(오자)를 가지고 本尊(본존)으로 해야 하느니라고, 즉 自筆(자필)하신 本尊(본존)이 이것 이니라.] (신편,1871) 라고 御指南(어지남)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大聖人(대성인)님의 直筆(직필)의 御本尊(어본존)에, 例(예)를 들면 釋尊(석존)의 像(상)을 세운다든지 혹은 釋尊(석존) 과 多寶佛(다보불) 혹은 上行(상행), 無邊行(무변행), 淨行(정행), 安立行(안립행)의 四菩薩(사보살)을 붙여서 造立(조립)한다든지, 모든 菩薩(보살)이나, 佛(불)의 木像(목상) 등을 建立(건립)한다. 혹은 繪像(회상)으로 그린다. 그러한 佛像(불상)이나 繪像(회상) 을 本尊(본존)으로 한다. 혹은 別個(별개)로 끄집어내어 나는 藥王(약왕)이 좋다든지 나는 藥師(약사)가 괜찮다. 나는 文殊 (문수)가 좋다. 不動明王(부동명왕)이 좋다든지 그러한 제멋대로의 解釋(해석)을 갖고 別立(별립)하여 佛像(불상)을 세운다. 그러한 佛像(불상), 本尊(본존)이라는 것은 전부 大聖人(대성인)님의 正意(정의)의 本尊(본존)이 아닙니다.
大聖人(대성인)님은 [日女夫人答書(니치뇨부인답서)]에서도 일체의 佛(불). 菩薩(보살)도 전부 [妙法(묘법) 五字(오자)의 光明 (광명)에 비추어져서 本有(본유)의 尊形(존형)으로 되니 이를 本尊(본존)이라고 하느니라] (신편 1388) 라고 說(설)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大聖人(대성인)님의 大曼茶羅(대만다라) 本尊以外(본존이외)에 一尊四士(일존사사)라 하여 身延(미노부) 日蓮宗(일련종)처럼 佛像(불상)을 造立(조립)한다는 것은 전부 大聖人(대성인)님의 이러한 御指南(어지남)에 背反(배반)하는 것이 됩니다. 師敵對(사적대)의 大謗法(대방법)이 됩니다.
身延(미노부) 日蓮宗(일련종) 등에 있어서도 [三大秘法抄(삼대비법초)]에 의거하여 三大秘法(삼대비법)이라는 名目(명목) 本門(본문)의 本尊(본존). 本門(본문)의 戒壇(계단). 本門(본문)의 題目(제목)이라는 것을 일단은 말하지만 그 三大秘法 (삼대비법) 根本(근본)의 御本尊(어본존)의 [法體(법체)]는 身延(미노부) 日蓮宗(일련종)  등에는 一切(일체) 없는 것입니다.
身延(미노부) 日蓮宗(일련종) 등에 있어서는 本門戒壇(본문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을 否定(부정)하여 第九世(제구세) 日有上人(니치우상인) 時代(시대)에 僞造(위조)된 것이라든가 大聖人(대성인) 在世中(재세중)에 日興上人(닛코상인)에 대한 授與書(수여서)가 있어야 한다든가 여러 말을 합니다.
그러나 本門戒壇(본문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은 大聖人(대성인)님의 內證(내증)을 圖顯(도현)하여 末法万年(말법만년)에 걸쳐서 一閻浮提(일염부제)의 一切衆生(일체중생)을 救濟(구제)하는 御本尊(어본존)님 이십니다. 이 弘安二年(고안이년)의 大御本尊(대어본존)은 本門弘通(본문홍통)의 大導師(대도사)인 二祖(이조) 日興上人(닛코상인)에게 相傳(상전)된 御本尊(어본존) 님이십니다. 戒壇(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의 授與書(수여서)로서는 大聖人(대성인)님의 內證(내증)으로서 [右(우) 現當二世 (현당이세)를 위해서 造立(조립) 앞에 말한 바와 같도다. 本門戒壇(본문계단)의 願主(원주) 彌四郞國重(야시로쿠니시게) 法華講衆(법화강중) 등 敬白(경백) 弘安二年(고안이년)  10월 12일] (富要 8-177)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本門戒壇(본문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님은 大聖人(대성인)님으로부터 日興上人(닛코상인), 日目上人(니치모쿠상 인)으로 정확하게 本門弘通(본문홍통)의 大導師(대도사), 一閻浮提(일염부제)의 座主(좌주)로서 資格(자격)을 갖추신 唯授一人 (유수일인)의 相傳上(상전상)에서 양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大聖人(대성인)님으로부터 日興上人(닛코상인)에게 또 日興上人(닛코상인)으로부터 日目上人(니치모쿠상인)으로 그 授與書(수여서)가 正確(정확)하게 남아 았습니다. 弘安(고안)2년(정경원년) 11월 10일이 [日興跡條條事(닛코적조조사)]라는 日興上人(닛코상인)이 쓰신 책이 매년 「御蟲拂會(어충불회)」 때에 高座(고좌)에서 猊下(예하)께서 초고와 本書(본서)를 披露 (피로)하고 계십니다. 이 속에 [本門寺(본문사) 建立時(건립시) "新田鄕阿闍梨(니이다교아쟈리)' 日目(니치모쿠)를 座主(좌주)로 하고] 라고 쓰시고 [日興(닛코)가 가진 바의 弘安(고안) 2년의 大御本尊(대어본존)은 이를 日目(니치모쿠)에게 相傳(상전)하다. 本門寺(본문사)에 奉揭(봉게)할지어다](신편,1883) 라고 日興上人(닛코상인)이 日目上人(니치모쿠상인)에게 대해서 이 授與書(수여서)를 明白(명백)히 하고 계십니다.
三大秘法(삼대비법)중의 本門(본문)의 本尊(본존)과 本門(본문)의 題目(제목)에 대해서 大聖人(대성인)님은 이미 文永(분네이) 10년 여름에 正確(정확)하게 富木殿(도키전)에 대해서 [定慧(정혜)는 生前(생전)에 이를 넓히고 圓戒(원계)는 死後(사후)에 이를 나타낼 事法(사법)이기 때문에 一重大難(일중대난)이 있었으리라] (신편 679)라고 말하시고 저 傳敎大師(전교대사)의 迹門戒壇(적문계단)의 建立(건립)을 본받아 大聖人(대성인)님도 戒定慧(계정혜)의 三學(삼학) 중 定慧(정혜), 즉 本門(본문)의 題目(제목)<慧(혜)>과 本門(본문)의 本尊(본존)<定(정)>에 대해서는 正確(정확)하게 大聖人(대성인)님 在世中(재세중)에 弘通(홍통)하시는 것을 나타내시어 建立(건립)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本門(본문)의 戒壇(계단) <戒(계)>의 實現(실현)만은 滅後(멸후)의 일입니다. 더구나 그것도 事(사)의 戒壇(계단), 事相(사상)으로써 現實(현실)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一重(일중)의 大難(대난)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大聖人(대성인)님의 滅後(멸후)에 있어서 閻浮(염부)에 廣宣流布(광선유포)해 간다는 것은 대단히 큰 難事(난사) 중의 難事(난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大聖人(대성인)님은 [日蓮一期弘法付囑書(니치렌일기홍법부촉서)]에 [日蓮一期(니치렌일기) 의 弘法(홍법), 白蓮阿闍梨日興(뱌쿠렌아쟈리닛코)에게 이를 付囑(부촉)함. 本門弘通(본문홍통)의 大導師(대도사)일지니라. 國主(국주)가 이 法(법)을 세우려면 富士山(후지산)에 本門寺(본문사)의 戒壇(계단)을 建立(건립)해야 할지어다.](신편 1675) 라고 本門弘通(본문홍통)의 大導師(대도사)로서 日興上人(닛코상인)을 세우시고, 滅後(멸후)의 御遺命(어유명)을 富士山(후지산) 本門寺(본문사)의 戒壇(계단)으로 日興上人(닛코상인)에게 本門戒壇(본문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님을 양도하심과 동시에 그 廣布(광포)의 遺命(유명)을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本門戒壇(본문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님에 대해서 云云(운운)하는 사람은 전부 이러한 大聖人(대성인)님의 御指南 (어지남)과 그 處置(처치)와 그 化導(화도)에 一切(일체) 師敵對(사적대)하는 大謗法(대방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大聖人(대성인)님이 9년동안 身延(미노부)에 계셨고, 大聖人(대성인)님의 滅後(멸후)는 大聖人(대성인)님의 相傳(상전)을 받으신 日興上人(닛코상인)님이 身延山(미노부산) 久遠寺(구원사)의 別當(별당)으로서 化導(화도)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戒壇(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님과 그리고 御影(어영)님<最初(최초)의 부처님>은 역시 日興上人(일흥상인)님 아래 安置 (안치)되어 있었던 것은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에 日興上人(닛코상인)님의 敎導(교도)를 背反(배반)한 波木井(하기리) 一族(일족) 중의 波木井淸長(하기리키요나가) 라고 하는 분은 日興上人(닛코상인)에게 信心(신심)의 誓約書(서약서)를 쓰고 있습니다.
正應元年(정응원년) 12월 5일에 쓰신 책 속에 淸長(키요나가)는 [法門(법문)을 一分(일분)이라도 違背(위배)한다면 本尊(본존) 및 聖人(성인)의 御影(어영)의 미움을 淸長(키요나가]가 두껍게 깊게 입겠습니다.] (富要(부요) 8-10) 라고 쓰여 있어서 만약 自身(자신)이 大聖人(대성인)님이나 日興上人(닛코상인)님의 敎導(교도)에 反(반)하여 謗法(방법)을 犯(범)한다면 御本尊 (어본존)님과 大聖人(대성인)님의 御影(어영)에 대해서 背反(배반)하는 것이 된다. 참으로 罪悚(죄송)한 일이라는 것을 日興上人(닛코상인)에게 盟誓(맹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편지가 西山(서산)의 本門寺(본문사)에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波木井淸長(하기리키요나가)의 편지 內容(내용)으로 보아도 역시 戒壇(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은 正確(정확)하게 大聖人(대성인)님에 의해서 建立(건립)되어 身延(미노부)에 安置(안치)되어 있었던것과 또 大聖人(대성인)님을 尊敬(존경)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御影(어영)이 建立(건립)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戒壇(계단)의 大御本尊(대어본존)님과 御影(어영)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러한 波木井淸長(하기리키요나가)의 誓約書 (서약서)가 나왔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라며  오늘의 인사로 할까 합니다. 대단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자료출처 : 정선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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