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주의 시대의 게슈타포 헌병대

사진한장으로 보는 현대사
일본헌병대(憲兵隊 겐페이타이 けんぺいたい)

사진한장으로 보는 현대사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게슈타포
헌병대(憲兵隊 겐페이타이 けんぺいたい)

당시 일본은 겐페이타이의 횡포가 이루 말할수가 없었지요.


일본이 1876년 국민개병제를 택한 뒤, 1881년 '헌병조례'에 의거하여 헌병대가 탄생했습니다.

미군처럼 병영 내의 군기사고 및 범죄만을 수사하는 헌병대와는 달리, 일본 헌병대는 프랑스의 국가헌병대(Gendarmerie)를 모방했기에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국내 치안문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이것이 훗날 헌병대가 무자비한 월권을 행사하도록 용납하는 계기가 됩니다. 헌병대는 당시 징병제에 반대하는 일본 빈농들과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악명을 쌓기 시작합니다.
헌병대는 이후 일본이 1895년 식민지로 병합한 대만과,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일명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사실상 일본의 속국이 된 대한제국에 파견됩니다.


이들 국가에서 헌병대는 잔인한 '헌병 통치'를 시작하며 독립을 염원하는 일체의 움직임을 각종 고문과 처형을 통해서 무자비하게 진압합니다(1910년대의 무단통치, 1920년대의 문화통치, 1930~40년대의 민족말살정책...국사시간 기억나시는지?). 특히 1920년대부터 시작해서 일본 내의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 등 '사상범', 식민지 조선의 '불령선인', 만주국의 '비적(匪賊)'떼들 등, 일본제국의 통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자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탄압하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서게 되지요.



일본 경시청의 비밀경찰인 특별고등경찰(特別高等警察, 일명 특고)과 정보를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말입니다.
전시 헌병대의 임무는 이전보다 더욱 확대되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됩니다.

각종 여행허가, 노동력 징발, 대침투 및 선무공작, 물자조달, 심리전, 후방지대 방어, 포로수용소 및 노동수용소 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 '위안부'로 나가 성노리개가 될 여성들을 징집하는 임무를 맡게 되고, 심지어 만주에서의 생체실험으로 세계를 경악시킨 731부대나 100부대도 모두 헌병대 소속이었습니다.



게다가 헌병대원들은 천황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해 보이는 '불손한' 사람으로 의심되면 설령 자신의 계급보다 높더라도 누구든지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기에, 사실상 독일의 게슈타포나 소련의 NKVD 못지않은 권력을 누렸습니다.

전쟁 말기까지 무려 36,000여명의 정식 헌병대원들이 일본 본국과 광활한 점령지를 마음껏 누비면서 식민지인들과 일본인, 민간인과 군인들을 모두 공포에 떨게 만들지요. 정식 헌병이 36,000명이었다지만, 실제로 사복으로 잠복근무한 헌병들이나 기록이 완전히 사라진 간첩들, 각종 식민지인 '헌병 보조원'들까지 친다면 그 두배는 될 겁니다.


이들은 조선, 대만, 만주, 중국, 필리핀, 솔로몬제도, 말라야, 네덜란드령 동인도, 버마, 베트남 등 새롭게 정복한 영토에서 조금이라도 일본의 지배에 반항하려는 기색을 보이는 자들을 처형하거나 고문하고 학살을 저지르는 등 각종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렇듯 거대한 권한을 가진 헌병대는 외양으로는 일본군의 총사령관인 일왕에게만 충성을 다짐했지만, 사실은 대본영의 육군원수이자 한때 육군 정보부를 이끈 도조 히데끼 육군원수의 사병들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막강한 권한으로 일본을 사실상 독재국가로 전락시킨 이들은 이후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일본이 국수주의의 길로 추락하게끔 만들지요.

1910년대 조선과 대만의 강압적 식민정책, 1931년의 만주침공 및 만주국 수립 계획은 헌병대에서 상당 부분 그 계획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게다가 1936년 2월 26일에 소수의 극우/소장파 군인들이 이끈 군사쿠데타 역시 상당수의 헌병대 장교들이 이끌었다고 하네요.

이렇듯 헌병대는 일본이 사실상 군사독재의 길로 가게끔 만들게 되고, 이후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을 이끈 수상 11명 중 9명은 모두 군인 출신으로 채워집니다. 군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나라는 항상 망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인가 봅니다.


이렇듯 무자비한 권력행사로 일본을 군국주의의 길로, 더 나아가 패망으로 이끈 헌병대는 전후 완전히 와해됩니다. 헌병대장 상당수는 도쿄 전범재판에서 전쟁범죄자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뒤 처형당하거나 오랫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죠. 한때 일왕의 신민을 사시나무 떨듯 떨게 만들었던 헌병대는 사라지고, 그 뒤에 탄생한 '경무대(警務隊)'는 군인들이 정치에 간섭한 비참한 말로의 교훈을 받아들여, 오로지 자위대 내에서의 군기 및 병영사고나 자위대원 관련 범죄만을 다룹니다.



이들의 복장은 보다시피 일반적인 육군 군복에, 왼쪽 팔에 하얀 바탕에 붉은 글씨로 '憲兵'이라고 쓰인 완장을 착용하고, 주로 남부 권총이나 군도로 무장했습니다. 저 완장은 정말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자료출처 / 김영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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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