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채계산 출렁다리

최근에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이 바로 채계산 출렁다리이다. 우리나라에 출렁다리가 모두 167개나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길다

순창 채계산 출렁다리

전라북도 순창군은 노령산맥 주능선의 동쪽으로부터 섬진강 건너 남원군과의 사이에 있다. 그래서 험준한 산지와 섬진강 지류 주변에 발달한 분지가 대조되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갈재에서 발원하는 양지천과 산성산(573m), 광덕산(584m)에서 발원하는 경천, 그리고 금과면 서쪽 여러 산에서 흐르는 사천의 세 물줄기가 순창읍에서 합류하여 섬진강의 상류인 적성강이 된다.

순창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로 오산 또는 옥천이라고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땅으로 도실군이 되었다. 백제가 멸망하자 신라 경덕왕 때는 순화군으로 개칭하고 고려 태조때 비로소 순창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순창 고추장(이미지 네이버)


순창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고추장의 고장이다. 고추의 명산지이고 고추장은 조선시대 이래 진상품으로 유명하다. 고추장의 빛깔이 연홍빛이고 달거나 맵고 짜지 않으며 산뜻하고 시원하면서도 알싸한 고유의 맛으로 인하여 예로부터 이름이 났다. 순창 사람이 서울에 가서 고추장을 담가 보아도 순창 본고장에서 담근 고추장의 맛을 내지 못한다고 한다. 이 지방 특유의 수질과 고추나 메주콩에 알맞은 토양 및 고추장을 담그는 시기와 방법 등이 독특한 맛을 내게 하는 비결이라고 전해진다. 특히 이 지방의 물은 철분이 많고 고추와 메주콩은 당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밖에도 밤, 버섯, 비자 등이 특산물이고 한때는 누에치기도 많았다. 섬진강 줄기의 물이 맑아 마치 어여쁜 여인의 눈동자 같다고 표현한다. 그 강물에서 서식하는 은어 또한 명물이고 수박향이 폴폴나는 은어요리는 별미로 알려져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이 바로 채계산 출렁다리이다. 우리나라에 출렁다리가 모두 167개나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길다. 순창군 적성의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의 진안층군에 속하는 퇴적암류와 응회암이 잘 발달 되어있다. 그래서 적성강 주변에는 병풍처럼 깎아 세운 듯 한 기암괴석이 가관을 이룬다. 채계산은 수 만 권의 책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해서 책여산이라고도 한다. 또는 화산옹 바위 전설을 간직하고 있어 화산이라고도 한다. 적성강을 일년내내 품고 있다고해서 적성산이라고도 한다. 적성강변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마치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읊는 모습으로 월하미인의 이름이 생겼다. 실제로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는 명창이 많이 나왔다.

또한 고려말 최영장군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최영장군이 무술을 익히며 장수군 산서면의 마치대에서 화살을 쏜 뒤 말이 얼마나 빠른지 겨루었다. 화살보다 일찍 도착했으나 늦게 도착한 줄 알고 이곳에서 말의 목을 베었다는 전설이 있다. 주변의 여러 상황을 살피지 않고 경솔한 행동에 대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채계산은 343m로 적성채계산과 동계채계산 사이에 출렁다리를 만들었다. 그 길이가 자그마치 270m이고 높이가 무려 75~90m나 된다. 다리를 지탱하는 기둥이 없는 무주탑 산악 현수교이다. 출렁다리는 온통 고추장을 뒤집어 쓴것 같이 붉은 색으로 입었다. 출렁다리 아래로는 24번 국도가 아스라히 꼬물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면 멀리 적성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다리 중간쯤에 서면 출렁거리기 보다는 울렁거린다. 발바닥도 간질거린다. 그런 스릴을 만끽하가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인도나 네팔에서도 출렁다리가 많지만 그들에겐 그곳이 생계를 이어주는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에겐 놀이동산이나 다름없지만. 그리고 허술한 발판이며 삭아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밧줄이 위태롭기도 하고 애처러워 보였다. 네팔 동부 사가르마타에 갔을때 출렁다리를 건너 가야할 코스였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현지인이 내 눈을 가리고서야 간신히 건너 갈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 갔지만 그 사람들은 정말 진심을 다해서 사람간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출렁거리는 다리는 고사하고 보통 다리조차도 건널 수 없는 미숙아였다. 내이(內耳) 안에 있는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감각수용기가 발달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그만 교량도 걸어서 가지를 못했다.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세운 다리인데 나에게는 출렁다리로 보여서 건널 수가 없었다. 또 한번은 보경사 출렁다리 밑에서 장난을 하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계곡물이 너무 맑아서 모래 바닥이 겨우 발목까지 오나 했는데 아뿔사 한 길이 넘는 깊은 물이었다. 친구들이 간시히 건져 올렸지만 그 때는 출렁다리 아래에 그냥 익사하는 줄 알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채계산 출렁다리에서 감회에 푹 젖었다.  /  정태상 기자 (불교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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