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과 짝을 이룬 굴뚝은 방바닥을 데워 혹한을 이기게 했을 뿐 아니라 바닥 중심의 생활 방식을 유도하며 독특한 가족 문화와 공간 감각을 빚어냈다.
한국인을 짓다, 굴뚝
굴뚝 사람이 집을 지으면 집은 다시 사람을 짓는다. 한옥에서 만나는 굴뚝이 이를 잘 설명한다. 구들과 짝을 이룬 굴뚝은 방바닥을 데워 혹한을 이기게 했을 뿐 아니라 바닥 중심의 생활 방식을 유도하며 독특한 가족 문화와 공간 감각을 빚어냈다. 가장 기능적인 시설이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만들었다는 역설, 그 흥미로운 이야기가 굴뚝에서 시작된다.

00. 굴뚝 위에 항아리를 얹은 왕곡마을의 대표적인 원통형굴뚝 Ⓒshutterstock
01. 구례 운조루 고택 Ⓒ한국관광공사 이범수
02. 경복궁 십장생굴뚝 Ⓒ한국관광공사 이범수
한옥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한국인조차 종종 한옥을 기와집으로 오해한다. 한옥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시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굴뚝을 발견한다면 좋은 단서가 될 수 있다. 굴뚝은 전통 한옥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만약 굴뚝이 없었다면, 한옥은 한반도에서 살림 집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한반도는 국토가 길어서 남북의 기온차가 큰데, 이런 기후에서 한옥이 한국인 모두의 집이 될 수 있었던 건 절반 이상이 굴뚝의 공이다. 그 뿐 아니다. 굴뚝은 구들과 짝을 이뤄 실내 공간을 난방 단위로 구성하고, 바닥 생활을 유도하여 좌식이라는 한국인 고유의 생활 패턴을 빚어냈다.
구들의 뿌리가 굴뚝이라는 건 한옥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면 쉽게 동의할 수 있다. 구들은 청동기시대 화덕의 연기를 외부로 배출하기 위하여 굴뚝을 발명하며 태어났다. 밖으로 이어지는 굴뚝의 온기를 쓰다 보니 굴뚝과 구분되는 고래를 고안해 냈고, 이 고래를 하나 둘 늘려 구들로 발전시켰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보면 굴뚝이 구들의 끝이지만, 연원을 살피면 굴뚝은 구들의 시작이다.
굴뚝이 마을의 중심인 곳, 고성 왕곡마을
굴뚝이 빚어낸 전통 한옥을 극적으로 만나려면 강원도 북단으로 가야 한다. 국가민속 문화유산 고성 왕곡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겹 집 한옥의 전통이 남아 있다. 이성계가 새로 나라를 일으키자 강원도 은거를 선택한 함부열은 자식들에게 조선 조정에는 결단코 나가지 말라고 유언 했다. 후손은 그의 유언을 받들어 관직에 나가지 않고 대대손손 마을을 지켜 양민만 모여 사는 특별한 마을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곳은 춥다. 외양간까지 부엌에 이어지어 소에게 온기를 나눠줘야 할 만큼 추운 곳이다. 이 땅에서 한옥이 살림집으로 살아남은 건 온전히 굴뚝 덕분이다. 이곳 굴뚝은 어느 지역의 그것보다 높고 크다. 굴뚝이 높으면 기압차가 생겨 부뚜막에서 노는 불덩이를 구들 아래 고래로 강하게 빨아들인다. 고래에 머무는 열기로 방바닥의 온기가 오래간다. 이곳에서 굴뚝이 소중한 까닭이다. 어느 것 하나 정성 없이 빚은 굴뚝은 없다. 지붕 위로 날렵하게 올라가 머리에 항아리를 인 굴뚝도 있지만, 여러 개의 굴뚝을 하나로 묶어 집의 외벽을 통째로 가릴 만큼 크고 우람한 굴뚝도 있다. 그 덕분에 막사발이 이룬 미적 성취를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지난 세월 삶의 무게가 주는 숭고함이 굴뚝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묘한 감동과 여운을 선사한다.
관념화된 남도의 굴뚝, 운조루
겨울이 짧은 남쪽에선 난방 효율이 좋다고 구들을 냉큼 받아 쓸 수 없다. 땔감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던 시절이다. 구들은 난방과 취사를 동시에 해결해야 했고, 지역마다 난방과 취사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 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굴뚝 형태나 재료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조선 후기로 가면 초가의 굴뚝을 나무 껍질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화재 위험이 ‘0’으로 수렴하는 극단적 열효율의 결과다. 각양각색의 굴뚝이 나오다 보니 종국에는 굴뚝의 형태와 재료가 다 사라지고 관념으로만 남은 굴뚝도 등장한다. 우리는 그런 굴뚝을 기단에 구멍만 냈다고 해서 기단 굴뚝이라고 한다. 전라남도 구례의 국가민속문화유산 구례 운조루 고택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굴뚝 위치가 꼭 뒤꼍일 필요도 없었다. 고래의 모양에 따라 굴뚝이 아궁이 옆에 놓일 수도 있었다. 운조루 굴뚝 역시 뒷마당이 아니라 앞마당을 마주한다. 아무튼 남쪽에서 열효율은 난방보다는 취사에 방점이 찍히는데, 굴뚝 높이를 낮추어 기압차를 줄이면 불기운은 고래보다 부뚜막에 더 오래 머문다. 불길이 세지 않아 장작도 오래 탄다. 취사에 유리하고 땔감도 적게 든다. 그래서 남쪽 굴뚝은 낮고 아담하고 그래서 정겹다.
모더니즘의 끝에서 만난 굴뚝, 십장생굴뚝
굴뚝은 기능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모던하다. 모더니즘의 구호인 ‘Less is More’를 아주 잘 성취한 시설이다. 굴뚝을 넘어 전통한옥 전체를 살펴봐도 장식만을 위해 설치한 부재는 하나도 없다. 한옥은 그런 면에서 의외로 현대적이다. 장식이라고는 고작해야 꼭 필요한 부재에 새긴 문양이 전부였으니. 그런 면에서 운조루의 기단굴뚝이 모더니즘 건축의 극단이라면, 풍부한 장식을 살린 궁궐 집 자경전의 굴뚝은 아무래도 고전적이다. 보물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은 담에서 한 자 정도 돌출시켜 바닥에 장대석을 깔고 그 위에 전돌을 쌓아올려 너비 13자, 높이 8자 정도의 벽면을 만들었다. 상부에는 여러 지붕 부재를 벽돌로 구워 장식하고 기와를 덮었다. 그 위에 연가(煙家) 10개를 올렸다. 굴뚝 벽면에는 다양한 문양을 삼단으로 배치했다. 가장 아랫단에는 코끼리를, 두 번째 단에는 해·구름·산·바위·소나무·포도·연꽃·대나무·백로·사슴·학·거북 등을, 지붕 아래 세 번째 단에는 학과 불로초를 부조했다. 바로 옆 교태전의 보물 경복궁 아미산 굴뚝의 문양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는 왕실의 장수와 복을 기리는 길상 문양이다. 왕곡 마을 굴뚝이 덤덤하다면, 궁궐 굴뚝은 절절하다.
세계 굴뚝의 역사를 건축의 역사와 구분해서 따로 쓴다면 우리 굴뚝이 그 처음을 차지할 것이다. 그토록 유구한 시설이 한옥의 굴뚝이지만, 건축의 역사에서 흔히 만나는 민중의 고통과 죽음의 흔적이 없다. 죽음과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시설, 전통한옥의 굴뚝에선 온기 외에 아주 작은 슬픔도 만나기 어렵다. 한때 굴뚝의 이미지가 서양 굴뚝과 뒤섞이며 굴뚝은 무언가 횡재를 꿈꾸게 하는 거리가 되기도 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들어와 착한 아이인 내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사라진다는 풍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가 다니는 굴뚝이 시멘트로 지은 건물 지붕 위에 넓고 튼튼하게 설치된 유럽의 굴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런 허황한 꿈을 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럽의 굴뚝은 거실의 벽난로로 이어져 쉽게 실내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지만 한국의 굴뚝은 애초에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고, 들어간다 해도 거실이 아니라 방바닥 아래 구들 밑이다.
산타클로스로 윤색된 서양 굴뚝에는 가슴 저미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벽난로에서 장작을 때면 불완전 연소된 찌꺼기가 연기와 함께 올라가 굴뚝 안쪽에 눌어붙는다. 이 찌꺼기를 청소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여기에 불이 붙어 폭발을 일으키는데, 그러면 지붕은 불바다가 되고 만다. 이 갑작스러운 화재를 막으려면 굴뚝을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했다. 그래서 유럽에는 굴뚝 청소부라는 직업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이 좁은 굴뚝으로 들어가서 청소를 하려면 어른보다 덩치가 작은 어린이가 더 적합했다. 굴뚝 청소는 가난한 집 어린이의 몫이 되었고, 그들은 모두 타르 찌꺼기를 마시고 어른이 되기 전 죽어갔다. 그 아픈 이야기를 떠올리면 온가족이 따뜻한 구들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겨울 내내 따뜻한 국과 밥을 먹게 한 전통한옥의 굴뚝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사람이 집을 지으면 집은 사람을 짓는다고 한다. 굴뚝만 살펴도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굴뚝이 구들과 짝을 이뤄 만든 좁은 공간을 식당, 거실, 침실로 시간에 맞추어 바꾸어 쓰다 보니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태어났다. 스케줄에 따라 가족 모두가 함께 움직이면서 독특한 가족 중심 문화가 만들어졌으니 한국 특유의 가족중심주의 역시 굴뚝에 빚진 게 있다. 건물 자체의 비례에서 건축의 미학적 가치를 찾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전통한옥의 미적 가치에선 주변과 어우러짐이 중요하다. 이 또한 굴뚝이 구들과 짝을 이뤄 만든 독특한 공간지각능력 때문이다. 역할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 받는 시설이 굴뚝이다. 전통한옥을 지날 때면 굴뚝을 바라보자. 굴뚝 끝에 매달려 웃고 있는 아주 오래된 미래의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 출처 / 이상현(한옥연구소 소장, 『인문학, 한옥에 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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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