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몇 분의 부처가 있을까

돌과 나무로 깎은 부처를 비롯하여, 진흙을 개서 구워 만든 부처, 청동이나 철을 용광로에 녹여 주물로 만든 부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부처가 맞을까

동봉스님 법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몇 분의 부처가 있을까

十方三世佛 阿彌陀第一
九品度衆生 威德無窮極
我今大歸依 懺悔三業罪
시방삼세 부처님중 아미타불 제일이니
구품으로 건넨중생 그위덕이 한이없네
지성스런 마음으로 우리이제 귀의하고
삼업으로 지은죄업 털어내고 참회하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몇 분의 부처가 있을까
다시 말해서 지구에 부처로서 존경받을 이가 과연 몇 분이나 계실까. 돌과 나무로 깎은 부처를 비롯하여, 진흙을 개서 구워 만든 부처, 청동이나 철을 용광로에 녹여 주물로 만든 부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부처가 맞을까

스리랑카, 타일랜드, 인도네시아와 미얀마,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중국, 티베트, 일본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처가 있을까.
우리나라에만 하더라도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과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고 근현대에 와서도 부처는 주조된다.
시방삼세불十方三世佛은 이들 불상佛像을 두고 한 말일까.

시방삼세 부처님은 불상이 아니다.
나무와 돌을 깎고 흙을 이기고 철과 청동, 금과 옥으로 빚고 FRP로 찍어낸 부처상이 아니다. 수미단에 말없이 앉은 동상이 아니다. 물론 서 있는 입상立像도 아니다. 공간적으로는 시방十方이고 시간적으로는 삼세三世에 걸친다. 어떤 경우도 상像은 아니다. 반드시 살아 숨 쉬고 꿈들 대는 부처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졸음이 오면잠을 청한다.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숨 쉬고 배설하고 추우면 몸이 움츠러들고 더우면 온몸에 땀이 흐른다. 불의를 보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옳은 일 선의를 접하게 되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남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음이 부처다.

거센 바람이야 불거나 말거나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이 가지 많은 나무가 아니듯이 더 낮은 곳이야 있거나 말거나 넘치지도 않고 흐르지 않는 것이 그래서 중력을 거스름이 물이 아니듯 흔들리지 않는 게 부처는 아니다. 지닌 본능은 본디 부동이지만 다양한 중생의 삶을 따라 움직일 줄 아는 이가 곧 부처다.

공간적 시방불과 시간적 삼세불은 바로 이와 같은 부처님을 말한다. 이들 시방삼세 부처님 중에 으뜸가는 부처님이 과연 누굴까.

구병시식문에서는 말한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첫째'라고 어째서 아미타불이 첫째고 으뜸일까?
아미타불이란 이름에 깃들어 있는 '밝게 건강하게'라고 하는 구호
곧 무량광불無量光佛이고 무량수불無量壽佛 때문일까

이름에 담긴 헤아릴 수 없는 광명과 헤아릴 수없는 수명의 부처 아미타불이 내세운 口號가 '밝게 살자'와 '건강하게 살자'다. 마음이 밝은이는 기쁨을 선물하고 몸이 건강한 요리사는 맛부터 다르다. 밝음과 건강, 무량광과 무량수는 세상에 으뜸일 수밖에 없는 아미타불의 소중한 별명이다.

극락에는 크게 아홉 단계가 있다. 이는 외형적 단계가 아니다.
마음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하는 정신적 수행단계를 두고 한 말이다. 하품에 하품 중품 상품이 있고 중품에 하품 중품 상품이 있듯, 상품에도 하품 중품 상품이 있다. 이들 9단계는 9단계 낱낱마다 다시 9단계로 퍼지면서 프랙털 구조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누구나 극락세계에 이르면 다들 쾌적할 듯싶지만 반드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만 극락세계에 들어가기만 하면 극락세계 삶이 자연스레 보장된다. 만일 본인이 퇴임하길 원하지 않거나 그리하여 법도에 어긋나지 않으면 누구도 그를 추방하지 못한다. 임기가 보장된 정규직인 까닭이다. 다만 노력에 따라 승진하듯이 제힘에 의해 결정 된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 단계는 보통 9급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차례로 올라가기도 하고 또는 행정고시 등을 거치며 바로 중견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단계가 구품에서 온 것은 아닐까.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에 잠겨 혼자 미소 짓는 일도 많은 편이다. 극락세계는 가볼 만한 곳이다. 나는 삶을 거듭하면서 극락과 함께 천국에도 꼭 한번 여행하고 싶다.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건축설계가 이미 10겁을 지났다고 하는데 지극히 아름다운 곳이다.
설계면 설계, 시공이면 시공, 인테리어면 인테리어 다반茶飯이면 다반이다. 오죽했으면 죽고 난 뒤에도 죽은 사람은 필히 천국에 가서 지극히 즐길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리 범부들은 귀의할 수밖에 그러려면 업業을 털어내야 한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털어내고 베풀고 보살피고 더욱더 총명하게 하나하나씩 가꾸어야 하리라.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고 시간의 거울로 삼고 다가올 시간을 내다보고 희망에 찬 내 미래를 세워나감이 불자로서 태어나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무량광불에 햇빛 더하기는 아닐까

01/10/2021

동봉스님    곤지암 우리절 주지/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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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