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종의 역사와 일련종(日蓮宗)의 성립(成立)

日蓮宗開敎布敎所 所長 平井智親 스님

일련종의 역사 日蓮宗의 歷史
(日蓮宗開敎布敎所 所長 平井智親 스님)

일련종의 역사와 일련종(日蓮宗)의 성립(成立)
일련성인의 제자들은 다섯개의 문류를 형성하고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포교에 힘썼습니다. 각각의 문류(流)중에는 분파독립(分派獨立)하는 일이 있거나, 또는 문류동사(門流同士)가 교류(交流)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완전히 다른 종파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포교(布敎)뿐만이 아니라, 가르침에 관하여 연구(硏究)와 논쟁(論爭)도 중세 이후 활발하게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한가지의 예(例)가 본적승렬 논쟁(本迹勝劣論爭)입니다.

이것은, 법화경(法華經)의 전반(前半)14장(章)인 적문(迹門)과 후반(後半)14장인 본문(本門)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법화경(法華經)을 하나의 경전으로 전부를 중요하게 신앙(信仰)하는 것을 일치파(一致派)라고 하고, 적문과 본문에는 중요성이 다름이 있는 것을 구별하는 것을 승렬파(勞派)라고 하였습니다. 커다란 논쟁이 되어, 문류에서 분파독립이 여기저기서 일어났습니다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합쳐도 승렬파(勝劣派)는 꽤 소수파였습니다. 불교사원을 지배체제에 완전히 편입시킨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가 1868년에 도괴 (到處)하고, 메이지시대(明治時代)가 시작 되었습니다. 메이지막부(明治幕府)는 신도(神道)를 국가종교(國家宗敎)로 채용(採用)하기 위해 불교탄압(佛敎彈壓)을 시작 하였습니다. 그 시작이 불교 각 종파의 통합(統合)이었습니다. 1872년에 일련성인을 종조(宗祖)로 신앙(信仰)하는 교단(敎團)은, 문류(門流)나 승렬(勝劣), 일지(一致)등의 교의(敎義)와는 관계없이 모두 일련종(日蓮宗)으로 통합시켰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통일된 종명(宗名)은 이때까지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종명(宗名)을 통일(統一)시켰다 하더라도, 교의(敎)나 조직 내부(內部)까지 통일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종단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메이지막부(明治幕府)는 이런 점을 곧 알게 되었고, 각 파 별로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1874년 일부가 일련종승렬파(日蓮宗勝劣派)로 독립하고, 남은 다수의 파(派)는 , 일련종일지파(日蓮宗一致派)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지파라는 이름으로는 어느쪽이 원류(原流)인지 본류(本流)인지 모르게 되는 등의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이런 연유로 막부(幕府)에 개명(改名)을 신청하여 1876년에 일련종이라는 명칭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엄밀한 의미로 현재의 일련종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노부 구원사를 총본산으로 정하고, 대본산본산말사(大本山本山末寺)의 조직이 굳어져 가게 되었습니다.

한편 승렬파 쪽은 흥문파(興門派), 묘만사파(妙滿寺派), 본성사파(本成寺派), 팔품파(八品派), 본륭사파(本隆寺派)의 다섯으로 분파 독립하였습니다. 묘만사파(妙滿寺派)는 본문종(本門宗(興門派))과 함께 1941년에 일련종에 합동되었으나, 1947년에 다시 독립하여, 현재는 현본법화종(顯本法法宗)이 되었습니다.
본성사파(本成寺派)는, 팔품파(八品派)와 본륭사파(本隆寺派와 함께 한 때 합류하였습니다만, 현재 법화종진문류(法華宗陣門流)가 되었습니다. 팔품파(八品派)는 다른 두 파와 합류했다. 다시 독립하여, 법화종본문류(法華宗本流)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본문법회 법화종(法華宗)이 다시 분파하였습니다.
본륭사파(本隆寺派)는, 다른 두 파와 합류하였다가 후에 독립하여 법화종진문류(法華宗旨門流)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흥문파 (興門派후지파)입니다만, 1899년에 일련본문종(日蓮本門宗)이 되었고, 다음해 1900년에는 일련종후지파(日蓮宗富士派)가 분파하였습니다. 이 후지파(富士派)는 1912년에는 일련정종(日正蓮宗)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련정종이 된 곳은 대석사(大石寺), 하조묘련사(下條妙蓮寺)의 계통뿐이고, 이 외의 다른 사원은 현재의 일련종에 1941년에 합동(合同)하였습니다. 북산본문사(北山本門寺), 소천구원사(小川久遠寺), 이두실성사(伊豆實成寺)의 계통은 현재에도 여전히 일련종 사원입니다.

그러나, 보전묘본사(保田妙本寺)는 1957년에 일련정종으로 이동하였다가, 1995년 독립.
서산본문사(西山本門寺)는 1957년에 단립(立)하였습니다.
교토요법사(京都要法寺)도 1950년에 일련본종(日蓮本宗)으로 분파하였습니다.

마무리...
일련대성인 이후의 역사를 지극히 간단히 설명하였습니다.
현재의 일련종은, 종조(宗祖) 이후 단순히 혼란만을 거쳐 왔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복잡한 역사라고 생각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앞선  스승(先僧, 先師)들이 법화경을 신앙하고, 일련대성인을 추모하며, 조금이라도 가깝게 가고자 절차탁마(切磋琢磨)한 결과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노력의 결과를 일련종의 역사로 존중(尊重)하고, 귀중한 역사로 남겨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도 뒤를 이어 정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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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