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닮은 모습으로 조심스레 내려앉은 건축물, 정자(亭子)

자연과 닮은 모습으로 조심스레 내려앉은 건축물, 정자(亭子)

 

문화재에 각별한 관심이 없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정자(亭子)’ 라는 건축물을 친숙하게 느낄 것이다.  전통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그 모습을 본 떠 휴식을 위한 장소로 마련해놓은 구조물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집 주변, 회사 근처, 도심 곳곳에 정자라고 부르는 구조물이 있다.  그럼에도 정자 본연의 모습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심상은 늘 자연이나 하늘, 그리고 흐르는 물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정자는 곧 강이고, 산이며, 바다이다.  이처럼 정자는 인공 구조물이면서도 자연으로서 우리네 삶 속에 존재 해왔다.  자연을 즐기고 이해하며 자연과 벗하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성품이 묻어나는 곳이 정자이다.

 

01. 명승 제86호 함양 화림동 거연정 일원. 거연(居然)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12수 중에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딴 것으로 물과 돌이 어우러진 자연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문화재청

 

다양한 삶의 모습이 담긴 정자

작년 여름 방영된 한 드라마에 안동 만휴정이 주요 장소로 등장해 관광객이 크게 늘어난 적이 있었다.  1년이 넘은 지금도 만휴정에는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떠올리는 정자는 대개 대중매체나 사료 혹은 여행 중 방문했던 유적지에서의 모습으로 제한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비슷한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자는 그것이 있는 자리와 필요에 따라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우리 조상은 정자를 그저 휴식과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만 삼지 않았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휴식의 장소로 사용했던 농막, 선비가 심성을 닦고 학문을 연마하며 후학을 양성했던 서원 등 기능에 따른 구분이 가능하다.

 

한때는 정자라고 하면 마을 어르신들의 모임장소를 먼저 떠올렸지만, 요즘 가장 일반적인 정자에 대한 인상은 대중매체를 통해 형성된, 선비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시화를 짓고 긴밀히 정사를 나누는 한적한 공간속의 모습일 것이다. 실제로 정자는 이러한 역할을 했었다. 크게 보면 종류는 다르더라도 근본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 선인들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 정자이다.

 

02. 명승 제82호 안동 만휴정 원림. 조선시대의 문신 김계행(金係行)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만휴정(경북 문화재자료 제173호)은 폭포, 계류, 산림경관 등이 조화를 이루는 명승지이다. ⓒ문화재청(김홍기)

03. 국가민속문화재 제226호 안동 탁청정. 조선 중종 36년(1514)에 김수가 지은 광산 김씨 종택에 딸린 정자로, 영남지방에 있는 개인 정자로는 가장 웅장하고 우아한 건물이다. ⓒ이미지투데이

 

정자의 역사

정자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있어온 것으로 보기는 하나, 특히 조선시대에 그 건축이 성행했다는 것을 사료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정자 건축 흥행의 정신적인 바탕으로 유교, 도선, 풍수가 거론되곤 한다.  특히 당쟁 등 어지러운 현실에서 쉼을 찾고자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 속에 더불어 살려는 도선 사상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자연으로의 회귀와 그것과의 합일이 도선사상이 추구하는 바이기는 하나, 당시의 어지러운 현실에서라면 어떤 사상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것이 인지상정이었을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휴식을 원하는 이들, 혹은 농사를 짓는사람 등 사용하는 이의 필요성이 우선시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정자의 풍수이다.

 

이러한 연유로 다수의 정자가 조용한 산중, 들판, 강이나 호수 부근에 지어졌다.  또한 상당수는 주거공간에서 일정 거리를 둔 별도의 공간으로 조성되었으며, 정원과 함께 한 구조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종합적인 휴식 공간을 별서정원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양산보가 낙향해 지은 명승 제40호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머물면서 지은 세연정, 다산 정약용이 다수의 책을 저술했던 사적 제107호 다산초당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정원과 정자의 특징은 선비들의 문화공간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경남 함양은 이런 종류의 정자가 유난히 많은 지역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안의 광풍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 학사루, 명승 제86호 거연정 등 유명한 정자들이 건재하다.  그곳에는 정자 및 정원과 짝하여 향교나 서원문화가 발전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

 

04. 양산보(1503~1557)가 세운 별서정원인 광풍각 ⓒ이미지투데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

정자 건축의 특징으로 풍수의 영향도 꼽히는데, 이점을 바라볼 때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자의 풍수는 다른 한옥의 건축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반 가옥처럼 배산임수, 남향 등을 고려하거나 실용성을 우선시한 것이 아니라, 짓고자 하는 이의 성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즉 시를 쓰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휴식을 원하는 사람, 혹은 농사를 짓는 사람 등 사용하는 이의 필요성이 우선시 되었다는 뜻이다.

 

05. 사적 제260호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 정면 칠간, 측면 이간으로 큰 규모와, 나무로만 누하주를 세워 복층정자를

구성함으로써 정자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미지투데이

06. 보물 제1763호 창덕궁 부용정. 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인공 연못과 열 십자 모양의 정자로, 풍류를 통해 수양을 하는

한국 정자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미지투데이

 

건축주의 성향이 정자의 풍수를 좌우했다고는 하나, 그것의 실제 활용을 고려할 때 근본 없이 지어졌을리 만무하다.  즉 정자의 건축에도 일조량, 강수량, 바람의 세기 등을 고려한 공법이 적용되었다.  이를테면 정자의 특성상 물가에 짓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때는 습기를 피하기 위해 장주초(혹은 긴 주초, 기둥을 받치는 구조물)를 사용하여 습기의 침투를 가급적 막도록 했다.  더러 아궁이나 굴뚝을 설치한 실용적인 구조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정자를 짓고 사용하는 사람의 성향이 건축을 통해 표현되기도 했다.  선비들이 주로 기거하는 정자의 지붕은 단아한 멋의 홑처마 지붕이 선호된다거나, 궁궐이나 사찰, 혹은 큰 서원에 자리한 정자는 웅장하고 위엄 있는 초익공, 이익공, 심지어는 포를 거는 등의 양식을 보인다.  일반적인 정자가 정면 삼간(칸)으로 많이 지어졌다면, 오간, 칠간의 규모를 자랑하는 정자도 존재했다.  병산서원 만대루의 경우 정면 칠간, 측면 이간으로 큰 규모를 보이며 나무로만 누하주를 세워 복층정자를 구성해 정자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정자의 건축은 자연과 벗하고 자연과 일체가 되려는 열망이 투영되어 있다.  우리네 정자는 사려 깊고 정교한 방식으로 건축되었으며 ‘자연에, 자연과 닮은 모습으로, 자연을 담으려’ 조심스레 내려앉아 있다.  일상을 뒤로하고 자연에 기대어 쉼을 구할 때 한 번쯤은 정자를 마주해보았을 것이다.  등산 중 잠시 다리를 쉬었던 곳, 혹은 갑자기 내린 비를 피했던 곳, 외갓집에 놀러가 수박을 먹었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내오며 얼마나 많은 바람과 볕과 비, 그리고 사람을 마주했을지 가늠해 본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인식하게 되지 않을 만큼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인위적인 구조물이면서도 자연의 일부로 존재해왔던 정자. 그 속에 깃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겸양의 태도를 지녔던 조상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글. 이재균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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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