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 火塟을 하다 낭산은 사방으로 명활산, 선도산, 토함산, 소금강산이 감싸고 있는 높이 99.5m의 조그마한 산이다. 신라 실성왕 12년(413) 무렵 부터 神이 살고 있는 神遊林(신유림)이라 불리며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다.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절과 왕릉이
문물로 시각을 넓히다 한반도에서 나오는 여러 유물 가운데 서역 등에서 온 것들이 종종 나타난다. 물론 직접적인 교류가 아닌 중국이나 고구려를 거쳐 들어왔을 수도 있다. 터키석, 청금석 등 이국적인 보석을 끼워 넣은 황남대총의 금팔찌, 독특한 형태와 문양이 있는 계림로
경주 망덕사지 (사적 제7호)狼山낭산 앞에 너른 들판 가운데 오늘도 汶川문천이 금빛 모래를 적시며 조용히 흐르고 있다. 거기에 나즈막한 언덕이 있어 望德寺망덕사를 세웠다. 뒤로는 사천왕사에서 대중 공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들릴 듯 가까운 곳이고, 앞쪽으로 코가 닿을
허리띠허리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맞먹는다. 오늘도 허리춤에 차고 있지만 그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원시인들도 짐승의 가죽이나 풀을 엮어 걸친 것도 끈이 있어야 몸에 지탱할 수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 보다도 훨씬 전인 네안데르탈인부터 의복을 걸쳤다
왕의 행차 길서라벌에서 동쪽으로 80里는 동해이고 서쪽으로 80里는 골화국(영천)이다. 남으로 80里를 가면 울산 개운포가 되고 북쪽 80里에는 포항 영일만이 있다. 그 중 동쪽으로 가는 길은 신라의 왕들이 자주 찾던 길이었다. 신라의 시작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억세게 재수 없을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정반대의 현상이 여기에 있다.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여래입상은 앞으로 넘어졌는데 코가 반듯이 살아있다. 70톤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에 불상을 조각했는데 정면으로 넘어져 있다. 코와 지
하늘이 내려준 옥대, 天賜玉帶(천사옥대)신라 제26대 임금은 진평대왕이다. 진평왕은 제 24대 진흥왕과 사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동륜태자의 아들이고 제25대 진지왕의 이복형이다. 동륜태자와 입종의 딸 만호부인이 결혼해서 白淨(진평왕)을 낳았다. 572년 백정
이견대(利見臺)와 만파식적(萬波息笛)지난 11월 23일자 호국의 상징 경주 문무대왕릉에 이어 마지막 세번째 유적지가 이견대다.이견대는 사적 제159호이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깃들인 해중왕릉 대왕암(大王巖)이 보이는 감은사지(感恩寺址) 앞에 있다. 만
보물로 남은 조선 레시피 『수운잡방(需雲雜方)』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을 적은 ‘레시피’. 일반인들에게 레시피는 그저 조리 방법이지만, 그 음식을 만든 이에게 이는 엄연한 ‘저작물’이다. 그렇다면 그런 방법들을 담은 책이 있다면? 그리고 그 책이 무척 오래되었다
탑에 대하여불교문화 중에서 불상과 더불어 탑은 많은 것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탑의 역사 또한 불교의 성쇠에 따라 맞물려 왔다. 탑의 어원은 고대 인도어인 범어(梵語 Sanskrit)의 스투파(Stupa)와 빨리어(巴梨語 Pali)의 탑(Thupa)를 한자로 표기한
감은사와 龍지난 11월 23일자 호국의 상징 경주 문무대왕릉에 이어 두번째 유적지가 감은사다. 어느 날 동해 바다가 넘쳐서 감은사 뜰 앞까지 밀려왔다가 물러났다고 한다. 경덕왕이 고승 法海에게 법력을 보여 달라고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법해는 滄海(창해
호국의 상징 경주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1967.07.24 지정)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불린다. 봉길리 해변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다.문무대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武烈王)의 업적을 이어받아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계림도호부를 설치하려는 당나라 군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慶州 芬皇寺 幢竿支柱)’ 보물 지정- 통일신라 당간지주 중 유일한 귀부형 간대석 보존돼 가치 높아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慶州 九黃洞 幢竿支柱)」를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라는 이름으로 국가지정문
경주 표암 서라벌의 북쪽을 지키는 소금강산은 신라의 4대 영산중의 하나이다. 이 산 남쪽 기슭에 표암이 자리하고 있다. 표암이란 박바위 또는 밝은 바위를 뜻하는 것이다. 기원전 117년 진한 땅 표암봉에 알평이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 해서 표암이라 부르게 되었
신라 탈해이사금 (경주 탈해이사금)소금강산 남쪽 자락 양지바른 곳에는 탈해왕릉(신라 4대 왕)이 있다. 탈해왕릉은 1969년 8월 27일에 사적 제174호로 지정되었으며, 백률사가 있는 소금강산의 남록 낮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왕릉은 20세기 초에 석씨 일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