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마음과 몸, 폭포에서 내려 놓고 쉬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여름, 마음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하나 되는 경이를 느끼기 가장 좋은 곳이 폭포이다

지친 마음과 몸, 폭포에서 내려 놓고 쉬다


“사람이 언제나 심각하기만 하고 재미와 휴식을 전혀 취하지 않는다면, 자기도 모르게 미치거나 불안해질 것이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글이다. 현대인이 매일 매 순간 느끼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2,500년 전 페르시아에서 살았던 사람도 느꼈다는 것,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여름, 마음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하나 되는 경이를 느끼기 가장 좋은 곳이 폭포이다.


01.직소폭포는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에 있다. 높이는 30m ⓒ부안군청



복잡한 마음 평안케 하는 폭포 소리

흰 명주실 타래가 풀어져 바다를 향해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귀포 정방폭포가 그렇고, 서귀포 항구로 향해 가는 천지연폭포가 그렇다.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폭포, 몸과 마음이 나른해지는 삼복더위에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빨리 서늘하게 만드는 폭포를 두고 김수영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폭포의 소리는 정신을 잃을 만큼, 그래서 물살에 휩쓸려 갈 만큼 웅장하다.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세상을 잊게 할 만큼 우렁찬 소음과 거센 물살 속에서 잠시나마 태풍의 눈 속에 있는 것처럼 ‘마음의 쉼터’를 제공하는 폭포를 보면서 옛사람들은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조선 중기 풍기군수를 지내며 소수서원을 창건한 주세붕은 낙동강변에 위치한 청량산에서 폭포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글을 남겼다.

“산봉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나약한 자가 힘이 생기고, 폭포수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질 것 같다. 총명수를 마시고 만월암에 누워 있으면 비록 하찮은 선비라도 신선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경계해야 할 것이 욕심인데, 폭포소리를 들으면 욕심이 사라지면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쉬엄쉬엄 살아라, 겸손하게 살아라”, “만물을 사랑하라”, “조금만 더 내려놓고 살아라”. 이것이 곧고도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가 사람에게 들려주는 소리다.


한국적인 우리 폭포의 아름다움

탐험가인 리빙스턴은 빅토리아폭포를 발견하고서 “천사들조차 이 폭포 위를 날아가며 경탄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러한 절경이 어디 빅토리아폭포뿐일까? 지난해 명승으로 지정한 부안 직소폭포 일원도 그와 비슷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천마산의 박연폭포와 서경덕 그리고 황진이를 일컬어서 ‘송도삼절’이라고 했던 것처럼, 시인 신석정은 변산의 직소폭포와 이매창 그리고 유희경을 일컬어서 부안삼절이라고 평했다.

직소폭포 아래로 내려가 가만히 바위에 걸터앉는다. 떨어지는 물소리는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고 잔잔한 물결 사이로 보이는 그리움 하나, 문득 바람이 우수수 불고 그렇다. 바람결에 일어난 물살은 또 어딘가를 향해 우르르 밀려간다. 내 마음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피안의 세계를 향해 날아갈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나만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퇴계 이황은 산수가 아름답거나 폭포가 쏟아지는 곳이 있으면, 간혹 몸을 빼내어 홀로 가서 즐기며 시를 읊조리다가 돌아오기도 했다고 퇴계의 제자 이덕홍은 구술하고 있다.

02.하동 불일폭포 전경 ⓒ문화재청



폭포 소리 들려오는 곳에서 글 한 편

막스 뮐러는 그가 지은 『독일인의 사랑』에서 폭포에 관한 글 한 편을 남겼다.

“인생에 다가오기 마련인 이 폭포들은 기억 속에 유착된다. 그래서 이 폭포를 넘어서서 멀리 영원의 고요한 대해로 접근해 가고 있을 때까지도, 우리의 귀에는 여전히, 아득히 그 폭포의 우렁찬 흐름이 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나마 남아 있어 우리를 앞으로 촉진시키는 생명력이 바로 그 폭포에 원천을 두고 양분을 끌어오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세파에 쓸린 마음을 내려놓고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 바로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사는 지름길이고, 한여름에 만나는 폭포가 바로 그런 장소이리라. 나이아가라폭포나 이과수폭포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곳곳에도 아름다운 폭포가 여러 곳 있다.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 남아 있는 철원의 삼부연폭포, 소리꾼 권삼득이 득음을 위해 판소리를 연마했던 완주의 위봉폭포,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난계 박연이 노닐었던 영동의 옥계폭포, 설악산의 토왕성폭포와 대승폭포, 김일손과 남명 조식의 자취가 남은 지리산의 불일폭포 등이 참다운 휴식을 꿈꾸는 답사객을 기다리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물줄기가 골짜기를 갈 듯 뿜어내니, 용추에 떨어지는 백 길 물소리 우렁차라. 솟아 내리는 물줄기 쏟아지는 은하수인가 싶고, 노한 듯 가로 드리운 물줄기 바로 흰 무지갤세.” 폭포 아래에서 황진이의 시 ‘박연’을 떠올리며 성하의 한 시절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처/신정일(문화사학자, 천연기념물분과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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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