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 열풍 속에 엄흥도 ‘진짜 묘’가 대구 군위에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1,66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몰이 중인 가운데 단종의 시신을 거둔 ‘충신 엄흥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구 군위에 있는 엄흥도 묘소를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어 눈길을 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 열풍 속에 엄흥도 ‘진짜 묘’가 대구 군위에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1,66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몰이 중인 가운데 단종의 시신을 거둔 ‘충신 엄흥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구 군위에 있는 엄흥도 묘소를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어 눈길을 끈다.

군위군에 따르면 ‘왕사남’이 개봉한 이후 군위 산성면 화본리에 엄흥도의 묘가 있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관광,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평일과 휴일 구분 없이 하루 수십 명에 이를 정도다. 전례 없던 일이라 지역 주민들이 크게 놀라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엄흥도는 왕위를 빼앗긴 뒤 강원 영월로 유배된 조선 6대 임금 단종(1441~ 1457)이 목숨을 잃자,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치된 단종의 주검을 수습한 인물이다. 그와 후손은 이후 화를 피해 신분을 숨기고 영월 청주 군위 지역을 떠돌며 숨어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왕사남’에서는 배우 유해진이 엄흥도를 연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묘 위치를 두고 오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강원 영월이냐, 대구 군위냐를 두고 학계와 지역 사회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600년 전 역사의 흔적을 둘러싼 논쟁의 현장을 찾아본다.

군위에 엄흥도의 묘가 있음이 공식 확인된 것은 김광순 택민국학연구원장(경북대 명예교수) 연구팀이 2009년 공동 발표한 국학연구론총 제3집 논문 ‘충의공 엄흥도의 삶과 묘소 진위에 관한 고찰’을 통해서다. 연구팀은 울산, 충북 청주, 경북 문경·안동 등 전국의 영월 엄씨 세거지를 답사하고 탐문 조사한 결과와 여러 기록을 근거로 엄흥도 묘가 장릉(단종의 묘)이 있는 영월이 아니라 군위에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그동안 엄흥도가 은거하여 생을 마치고 묻힌 묘소가 있다고 제시된 곳은 영월과 청주, 군위 세 곳”이라면서 “‘조선왕조실록’, ‘충의공실기’와 ‘영월엄씨파보’, ‘영월엄씨대동보’ 등의 기록을 보면 군위 조림산 신남촌(지금의 화본리)의 묘가 진묘”라고 설명했다.



박용덕 군위군 향토사 위원 : “세조가 삼족을 멸한다는 그런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엄흥도 어른이 단종 시신을 수습한 이후에 영월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그런 상태에서 삼 형제가 뿔뿔이 흩어져서 엄광순이라는 (엄흥도) 둘째 아들이 이곳 군위군에 같이 와서 지금 후손들이 여기 있는 그런 상태고···”

엄종훈 군위군 의흥면 “영월 엄씨 충의공파 18대손 : “저희가 금양(군위군 의흥면)에 살게 된 이유는, 둘째 아들 엄광순 어른께서, 지금은 화본 2리인데 거기서 터를 잡고 숨어 사셨는데, 영조 정조 시대에, 지금부터 한 300년쯤 전에 그 화본에는 첩첩산중에 찢어지게 가난해서 이쪽 위천이 있는 금양 마을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거의 한두 집 빼고는 거의 다 ‘엄’ 씨였습니다.

저 묘소를 알게 된 거는 어릴 적부터 가을 되면 묘사를 지내러 가는데, 충의공 묘고, 거기서 여러 가지 비석이라든지 무덤이 왜 세 개인지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었고요 ‘흥’자 ‘도’자 어른이 여기에 갑오년 2월 26일, 산소는 여기 보면 의흥 신남촌, 이게 지금의 산소 위치를 우리가 신남촌이라 부르거든요”

박용덕 군위군 향토사 위원 : “여러 가지 역사적 기록이나 또 후손들이 갖고 있는 왕에게 받은 교지라든가 문서, 비석이라든가 이런 거를 봤을 때 군위에 있는 엄흥도 묘가 가장 진묘로서 확실성이 있다. 또 엄흥도 후손 둘째 아들의 후손들이 갖고 있는 예전에 영조 임금이나 받았던 문서에 보면 너희들은 엄흥도의 후손이기 때문에 군역도 면제해 주고 세금도 면제해 준다는 그런 문서가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는데 도서관에서는 이게 역사적인 가치가 있고 충분히 엄흥도의 후손으로서의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해서 기탁받아서 지금 전시하고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동안 학계라든가 언론계가 관심을 두고 밝혀주기를 바랐지만, 저 혼자 하기에 참 힘이 들었는데 최근에 영화를 통해서 다시 부각이 되고 엄흥도의 진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찾아주시고 하는데 진실이 밝혀져서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성역화시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엄종훈 영월 엄씨 충의공파 18대손 : “여기 있는 분들은 이미 충의공 때부터 우리는 당연히 숨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냥 습관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드러나는 걸 별로 안 좋아했고, 무덤도 옛날에 하던 그 무덤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영월에는 가묘인데도 왕릉처럼 해놨지만, 여기는 우리는 그냥 몇백 년 동안 당연히 표시 안 나게 저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이렇게 우리는 했는데 지금은 국가에서 이거는 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므로 좀 많이 관심을 뒀으면 좋겠습니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며 충절을 지킨 인물 엄흥도. 그의 묘가 군위에 있다는 주장과 함께 이곳을 역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북도와 군위군은 이를 근거로 엄흥도 묘 일대를 정비하고 진입로 데크 및 안내 팻말을 설치하는 등 관광자원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박용덕 군위 향토사 위원은 “군위의 엄흥도 묘소는 그의 고향 영월에 가려 사실상 묻혀졌다”며 “국가가 나서 엄흥도 묘소 진위여부를 명확히 하고 성역화 사업을 통해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유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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