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달빛 골목을 걷는 연인의 모습에도, 무덤에서 나온 한글 편지의 떨리는 필체에도, 혼례방의 나무기러기와 붉은 혼수함에도 그리고 탈춤 판 위에서 뒤엉키는 질투와 욕망에도 그 양면이 함께 깃든다
연애, 설렘과 민낯의 사이에 빠지다
연애는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끝내 민낯을 마주하기도 한다. 조선의 달빛 골목을 걷는 연인의 모습에도, 무덤에서 나온 한글 편지의 떨리는 필체에도, 혼례방의 나무기러기와 붉은 혼수함에도 그리고 탈춤 판 위에서 뒤엉키는 질투와 욕망에도 그 양면이 함께 깃든다. 때론 감추고 때론 들키며, 단정하기도 흐트러지기도 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을 얼핏 들여다본다.

신윤복 사시장춘도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속 연애는 말보다 먼저 ‘풍경’에 흔적을 남긴다.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만으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드러나고, 손목을 잡는 동작 하나에 순수한 설렘과 달콤한 욕망이 동시에 배어 나온다. 달빛 아래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연애의 가장 다정한 순간을 보여주지만, 골목 안쪽의 밀회 장면은 관계의 민낯을 숨기지 않는다. 혜원 신윤복의 화면은 오래전의 것이지만 그때에도 연애가 얼마나 쉽게 설렘에서 대담으로, 은근에서 노골로 넘어가는지 조용히 증명한다.
01. 국보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 중 소년전홍 Ⓒ국가유산포털
02. 국보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 중 월하정인 Ⓒ국가유산포털
03. 이응태 묘 출토 편지 Ⓒ국립경국대학교 박물관
04. 원이엄마의 머리카락을 넣어 삼은 짚신 Ⓒ국립경국대학교 박물관
연애의 감정은 때로 가장 조용한 문장 속에서도 드러난다. 이응태의 무덤에서 함께 발견된 한글 편지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뜨겁고 직접적인 마음이 들어 있다. 아내는 남편을 붙잡고 원망하며, 동시에 그를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편지 곁의 미투리는 저승길에서도 발이 시리지 말라는 바람을 담은 물건이자, 함께 걷지 못한 시간을 대신하는 마지막 동행이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부재 앞에서 문장은 고백이 되고, 물건은 기도가 된다.
05. 기러기보 Ⓒ국립민속박물관 06. 합환주상 Ⓒ국립민속박물관 07. 목안 Ⓒ국립민속박물관
08. 혼수함 Ⓒ국립민속박물관
연애의 감정이 제도와 만나면 ‘약속의 형식’을 갖춘다. 혼례의 도구는 사랑을 낭만으로만 두지 않고 생활로 옮겨 심는다. 기러기를 싸서 건네던 기러기보는 두 집안과 두 사람의 관계를 매듭짓는 상징이고, 나무기러기(목안)는 한 쌍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형태로 만든 물건이다. 합환주상 위에 두 잔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연애는 같은 방향으로 걷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마주 보는 일이 된다. 붉은 혼수함은 예물과 서류를 담는 상자이면서 ‘함께 살겠다’는 결심을 잠그는 자물쇠이기도 하다.
09. 국가무형유산 봉산탈춤, 노장과장 장면 Ⓒ국립국악원
탈춤 속 연애는 설렘보다 민낯에 가깝다. 가면을 쓰는 순간 사람들은 체면을 잠시 내려놓고, 오히려 민낯을 드러낸다. 관계의 속내를 과장된 몸짓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이 밀착해 다투듯 얽히고, 옆에서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판을 흔드는 장면은 삼각관계와 질투, 욕망의 충돌을 우리 조상들이 웃음으로 바꾼 방식이다. 탈춤은 연애를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다 그렇게 산다’는 듯한 풍자와 해학으로, 사랑이 얼마나 쉽게 권력관계와 욕심, 불안으로 뒤섞이는지 보여준다. 관객은 그 민낯을 보고 웃으며, 자기 안의 감정도 솔직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10. 국가무형유산 은율탈춤, 최괄이와 어울려 춤을 추는 새맥시 Ⓒ국가유산포털
11. 국가무형유산 강령탈춤, 할미와 용산삼개집의 갈등 장면 Ⓒ무형유산지식새김 출처 : 국가유산포털,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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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