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글과 그림은 무궁화처럼 끝없이 피어나리라

오세창(吳世昌)은 우리 서화가들의 생애와 자취를 집대성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수호했다. 그가 치열한 집필 끝에 남긴 것은 한국 미술사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단단한 예술적 가교다.

우리 글과 그림은 무궁화처럼 끝없이 피어나리라

오세창의 『근역서화사』와 『근역서화징』 일제강점기에 우리 미술의 계보를 잇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 있다. 오세창(吳世昌)은 우리 서화가들의 생애와 자취를 집대성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수호했다. 그가 치열한 집필 끝에 남긴 것은 한국 미술사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단단한 예술적 가교다.


           오세창 Ⓒ독립기념관   /   근역서화징 권1 내지

한국미술사의 태동을 알리는 『근역서화사』(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소장)는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치밀한 기획으로 1910년부터 1917년까지 7년여간 집필했다. 오세창은 아버지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의 영향으로 개화기를 대표하는 신지식인으로 성장했다. 정치적 부침을 겪었지만, 20대 초반부터 오세창은 박문국(博文局)의 《한성순보(漢城旬報)》 기자로 입직해 1910년 8월 《대한민보(大韓民報)》가 폐간할 때까지 생의 전반을 언론인으로 재직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모든 활동을 접고, 본격적으로 서화 수집과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근역서화사』는 상·중·하 세 권과 표제가 없는 보록(補錄)까지 총 4권으로 구성됐다. 이 책은 1928년 최남선의 주도로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인쇄본으로 출간된 『근역서화징』의 초고로, 무엇보다 원고 작성과 내용 편집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원고를 시작한 시점부터 책으로 출판된 1928년까지 기나긴 출판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출간과정에서 오세창은 서화계의 대외 활동을 펼치며,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1918년 서화협회 설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1919년 3·1운동에 민족대표로 이름을 올리며 옥고를 치르고, 독립운동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책 제목에 ‘무궁화가 피는 땅’이라는 정체성을 담은 ‘근역(槿域)’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오세창이 직접 쓴 『근역서화사』의 표제를 넘기면, 책의 면마다 가지런하면서도 바쁜 오세창의 속필과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이어 붙인 첨지, 교정을 볼 때 사용한 주홍빛 먹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치 100여 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그가 모은 자료와 메모 속에서 고심하고 궁리한 궤적을 보고 있는 듯하다.

권마다 첫머리의 표제가 ‘근역서화보’ 또는 ‘근역서화사’로 섞여 있어 ‘계보(系譜)’와 ‘역사(歷史)’ 사이에서 책의 나아갈 방향을 깊이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최종 출판에서는 제목을 『근역서화징』으로 바꾸었는데, ‘징(徵)’은 개인적인 의견보다 사료를 인용하는 객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근역서화사』 상권, 박팽년, 성삼문 수록 부분 Ⓒ한세현  / 『근역서화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소장 Ⓒ한세현
               서화가 1,117인의 기록, 시대를 넘어 미래로

『근역서화사』는 초고이긴 하지만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고, 첨지로 계속 보충할 내용을 덧붙이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상권은 신라 솔거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성종 대 태어난 신은윤까지 정리되어 있다. 중권은 같은 방식으로 조선 성종 대 노우명부터 숙종 대 엄한붕까지, 하권은 숙종 대 유덕장부터 헌종 대 김재락까지 적었다. 보록인 현대편에는 김성근부터 강훈까지 기재했는데, 본권에서 사료를 인용했던 방식과 다르게 현대편은 거주지, 생년, 졸년만 간략하게 적었다.

이를 보면 조선시대를 3개 편년으로 나누어 조선 초기를 태조에서 명종(1392~1567)으로, 중기를 선조에서 숙종(1567~1696), 후기를 다시 숙종에서 헌종(1696~1845)으로 구분하여 대략 150년씩 차이를 두고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차후 편집을 위해 인명과 인용한 문헌에 순서를 매기는 등 오세창의 주도면밀한 집필 과정이 『근역서화사』에 수록되었다.

최종 인쇄본인 『근역서화징』은 신라시대 솔거부터 근대의 나수연에 이르기까지 서화가 총 1,117명을 연대별로 구분하여 출생 순으로 나열하고 인물 관련 기록을 모았다. 본격적인 예술인만을 따로 모은 전문적인 인명사전의 시작이며, 100여 년이 지난 현재도 서화가들의 행적을 살필 때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중요한 사료다.

오세창이 『근역서화사』를 집필할 당시 멀리 프랑스에서도 에마뉘엘 베네지트(Emmanuel Bénézit, 1854~1920)가 서구를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의 인명과 서명, 전기, 옥션의 방대한 기록 등을 정리하여 『베네지트 예술가 사전』 1권을 출간하였다. 일제강점기라는 자유롭지 못한 시대에 이 책에 못지않은 우리의 서화가에 대한 사전이 있다는 사실에 후대 연구자로서 오세창의 안목과 기획력, 오랜 시간 이를 옮긴 실행력에 감탄하고, 감사할 뿐이다.

『근역서화사』와 『근역서화징』은 오세창이 시대와 세대의 다리가 되어 후대에 전통의 사료를 개화세대의 방식으로 전한다. 그는 눈앞에서 나라를 잃어버린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나라의 근간인 문화부터 정리해야 나중을 도모할 수 있다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벼리지 않았을까.  출처 : 한세현(국가유산청 인천항 문화유산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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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