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 전적기념관은 6·25전쟁 때 아주 중요하였던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 세워진 기념관으로 구국의 정신과 평화의 소중함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1981년 건립되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6·25전쟁 때 아주 중요하였던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 세워진 기념관으로 구국의 정신과 평화의 소중함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1981년 건립되었다. 대구 북방 22km에 위치한 지역으로 상주와 안동에서 대구로 통하는 5번, 25번 도로가 합쳐지고 왜관으로 향하는 지방도로(908번 도로)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마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유학산이 북측에는 황학산, 우측에는 가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였지만, 만약 이 방어선이 무너지면 10km 남쪽의 도덕산 일대까지 아군 철수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대구가 적의 포병 사정권 내에 들어가게 되어있어,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다부동 전투는 1950년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시켜 대구로 진출을 막은 전투다.
전시관의 주요 소장품으로는 T.T 권총, 45구경 권총, 98K 소총, RPG-2 대전차 로켓 유탄발사기, 60㎜ 박격포 등이 있으며 배낭, 야전삽, 수통 또한 전시되고 있다. 이 밖에도 다부동전적기념관에는 구국용사충혼비, 구국경찰충혼비, 야외에는 나이키 유도탄을 비롯하여 각종 전차류, 자주포류, 장갑차와 전투기, 헬리곱터 등과 백선엽 장군, 이승만과 트루먼 3분의 동상이 들어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 특히 백선엽 장군 동상은 대한민국 전 국토를 지킨다는 의미를 담아 매시간 회전하는 동상이다.
다부동전투는 1950년 7월 29일 미 제8군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중장이 "한치의 땅도 적에게 빼앗기면 수많은 전우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라고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Last ditchtand)를 명령함으로써, 한국군 제1사단이 1950년 8월 1일 낙동강을 도하한지 3일이 지난 4일에 낙정리(다부동 북방 43km)에서 시작되었으며. 같은해 월 16일 개시된 반격작전의 일환으로 다부동 북서쪽11km 지점의 천생산을 탈환한 후 잔적을 소탕한 9월 24일에 끝났다.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자 김일성은 7월 21일 수안보에 주둔한 전선사령부까지 내려와서 8, 15광복절 기념행사를 부산에서 거행하겠다는 망상하에 대구 공략을 위해 북한군 4개사단(3사단-성주, 13사단-상주, 15사단-선산, 1사단-효령)을 투입하여 총공세를 펼쳤으며, 이에 아군은 왜관 303고지(자고산)-328고지-518고지(숲데미산)-839고지(유학산)-다부동에 이르는 Y방어선을 구축하고 적과 공방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유엔군은 8월 16일 B-29 폭격기 98대를 칠곡 약목 및 구미3공단 지역 일대에 투입시켜 융단폭격을 감행하였고 북한군 13사단 기갑부대 T- 34전차와 미 제25사단 27연대 M-26전차와의 최초 전차전이 이곳(진목정)에서 벌어졌다. 아군은 10,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적군은 17,5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전투였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 . 이승만 대통령 동상, 위는 백선엽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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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