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세배와 도소주

도소주(屠蘇酒)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이라는 뜻으로 새해 첫날 차례를 마치고 온 가족이 모여 마시던 술이다

묵은세배와 어린아이도 원샷 하는, 도소주

"섣달그믐 묵은세배, 위로 왕궁에서 아래론 여염(閭閻)까지, 길들이 막혀도 끊임없이 오고 가니, 뉘 집에서 장기 두며 도소주(屠蘇酒)에 취할까"

동국세시기를 지은 홍석모(1781~1857)가 서울의 세시풍속을 126수의 7언절구로 묘사한 도하세시기속시(都下歲時紀俗詩)에 배구세(拜舊歲)라는 제목의 시가 전한다.

배구세는 묵은세배라는 말이다. 아시다시피 해가 바뀌는 날에 존장자에게 절을 해 예를 표하는 것을 세배라 하는데, 섣달그믐날 밤에 옛것을 보내는 뜻으로 하는 것을 따로 묵은세배라 하였다. 대개 송구영신(送舊迎新) 즈음에 과거에 대한 감사와 장래에 대한 희망의 뜻을 표하는 하나의 의례(儀禮)였는데,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 되었다.

도소주(屠蘇酒)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이라는 뜻으로 새해 첫날 차례를 마치고 온 가족이 모여 마시던 술이다. 섣달그믐에 약재가 담긴 주머니를 우물에 넣었다가 새해 새벽에 꺼내어 청주에 섞어 끓여낸 다음 차게 식혀 만든다. 어린아이부터 연장자순으로 동쪽을 향하여 앉아 마시는데 한 해 동안 건강과 악운을 떨치기를 바라며 마시던 술이다. 보통 데우지 않고 마시는데, 봄을 맞이하는 뜻이라고 한다.



도소주는 길경(桔梗), 산초, 방풍(防風), 백출(白朮), 밀감피(蜜柑皮), 육계피(肉桂皮) 따위의 약초를 다려 빚은 술로, 설날에 마시면 사기(邪氣)를 물리친다고 여겼다. 술 맛이 달고 부드러우면서 약재의 독특한 향을 띠는 도소주는, 어린아이도 쉽게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순하며 맛이 좋다. 다만, 술 빛깔은 여러 가지 약재를 함께 넣고 끓여내어 맑지는 못하다. 도소주에 들어가는 약재는 대부분 기운을 돋궈주는 약재이거나 피부병, 각기병, 혈관계 질환에 효험이 있는 약재들이다. 특히 대황과 거피오두가 사용된 점이 흥미롭다. 대황과 오두(부자라고도 하며 추출액은 예로부터 화살의 독으로 사용했다. 주성분인 아코니틴은 중추 신경을 마비시키고 호흡 마비를 일으킨다)처럼 독성이 있어 함부로 취급할 수 없는 약재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각종 질병과 전염병에 대하여 독은 독으로 치유하는 이독치독(以毒治毒)의 효과를 기대한 것으로 생각된다. 도소주는 집에서 빚는 가양주(家釀酒)로, 계피와 여러 종류의 향료, 약재 등을 첨가하는 약주(藥酒) 문화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 풍속은 거의 사라졌으며, 노인층이나 식자층에서 간혹 볼 수 있다. 흔히, 청주나 약주를 세주로 사용하고 있다.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1912, 간송미술관. 종이에 옅은 채색. 23.4 x 35.4cm)가 있다. 제목은 ‘탑원에서 열린 도소주 마시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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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