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신문으로 보는 개항 이후 들어온 음식 이야기 5

일제강점기 대만에서 온 바나나

근대 신문으로 보는 개항 이후 들어온 음식 이야기  5

일제강점기 대만에서 온 바나나

바나나는 파초과에 속하는 다 년생 초본 식물로서, 아시아에서는 필리핀·대만(臺灣) 등지에서 많이 재배하여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많이 수입하고 있다. 한때 제주도 등지에서 바나나를 재배한 때도 있었지만 외국산 바나나에 비해 생산 비용이 많이 들어서, 요즘은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


바나나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이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대만을 식민지로 삼았는데 대만산 바나나가 일제강점기 본격적으로 조선에 들어온 것이다. 1933년 무렵 신문 기사를 보면 해마다 철을 따라 대만 방면에서 조선에 이입되는 바나나의 수량은 56만 3148관에 달하고 그 가격은 20만 4629원에 달하였다. 그중 경성에 이입되는 것은 32만 5608관이요 그 가격은 12만 2275원이었다. 전체 바나나 이입량의 절반 이상이 경성에 들어와 소비되었다. (동아일보 1933.04.23. 빠나나이입 오십여만관)

이 당시 경성의 인구가 40만 정도이고 조선 전체 인구는 2000만 명 정도였다. 조선 전체 인구의 2%정도가 사는 지역에 바나나가 절반이상 소비되었다는 것은 바나나가 사치품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나나가 계란 1개 반의 영양과 85칼로리의 열량을 갖고 있으며 철분과 비타민도 들어있다고 하지만(동아일보 1928.06.07. 계란 한 개 반에 해당한 빠나나의 영양가치) 바나나의 가치는 이국 과일의 맛에 있었다. 이것은 바나나의 가격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바나나는 보통 1관에 1원 5-6전정도로 거래되었다. (동아일보1929.07.19. 제철 만난 과실가 잘 안팔닌다고)

                                  1929년 7월 19일 제철만난 과실가 잘 안팔닌다고(사진출처:동아일보)
                                  1928년 6월 7일 계란 한 개 반에 해당한 빠나나의 영양가치(사진출처:동아일보)

대만의 바나나는 1928년 대만 기융(基隆)항과 조선의 인천항에 직항로가 개설되면서 더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 항로는 1928년 6월에 개시되어 제이양로환이라는 배가 대만 기융항에서 6월 19일 인천에 입항하야 빠나나 하물을 풀고 대련으로 직항하고 다시 28일 인천에 입항하여 조일양조회사의 당밀과 기타의 하물을 풀은 후 부산을 지나 다음달 5일 대만 기융(基隆)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이 근소한 오일 내지 팔일간의 시일로써 대만 조선 양지간 접속케 된 것은 피차 교통상 상거래상 극히 좋은 현상이요, 금후 무역 발전에 기대 할 것이라 할 수 있었다.(동아일보 1928.06.30. 대만인천간 정기항로 개시 상인시찰에 필요)

대만 현지에서는 바나나 백문(百匁)이 단돈 2전이었다. 조선에서 바나나 백문에 12-13전인 것과 비교하면 거의 1/7 가격이다. 이 시기 바나나가 주로 대만에서 수입된 까닭에 대만으로 여행을 간 사람도 주로 바나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대만에서 바나나가 언제부터 경작되었는지는 알 수없으나 대만 시찰 온 영국 식물학자가 대만산 바나나를 먹어보고 세계제일이라고 격찬한 일도 있었다. (동아일보 1934.02.09. 빠나나 이야기 대만시찰에서 본대로(하))

해방 후에도 바나나는 인기 있는 과일이었다. 그러나 쌀이 귀했던 시기에 바나나가 서울에서 날개 돋힌 듯 팔리는 것을 씁쓸하게 쓴 기사가 있다.

‘올해 들어 유난 스레도 서울엔 빠나나 사태가 났다. 과일전마다 구루마군마다 빠나나를 팔지 않는 곳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눈에 띠운다. 이놈은 본시 열대지방의 산물이 분명한데, 한 알도 생산되지 않는 온대 한국에, 어떤 경로를 밟아 이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수도 서울 거리에 이 때아닌 빠나나의 홍수가 난 것을 본 어떤 외국인은 하도 진기하다는 듯이, 우리 사람에게 이런 질문의 화살을 던졌다. 즉 "당신네 나라엔 빠나나가 쌀 이상으로 그처럼 많이 나는가?" 였다. 그 사람에겐 아마도 쌀가게보다도 빠나나 장수가 더 많이 눈에 띠었던가 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데야 ... 이 진기한 질문받은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그것들은 거의가 대만 등지의 남쪽 나라로부터 쌀같은 것들과 바꾸어 수입하는 것일게라고 솔직히 대답하자, 그 이방인은 천하 대사처럼 깜짝 놀라면서, "당신네 나라는 장차 큰일 났소"하고 매우 놀라더란 것이다. ... 이러한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바로 그날 길에서 어떤 옷차림을 화려하게 한 아낙네가 행상에게 그 치욕적인 빠나나 한관을 덥썩 사는 것을 보았다. 모두 열서너개 밖에 안되는데 값이 천삼백환, 그렇게 치고 보면 한 개에 근 백환 꼴이나 된다. 그것을 쌀값으로 환산하면, 소두(小斗) 한말 치(즉 쌀 5되)에 해당한 엄청난 고가다. 농민들이 들으면 기절할 노릇이다. 도대체 이것 먹는 사람이 누구냐. 그보다도 이 땅에 들여온 사람은 누구일까, 더더구나 다른 나라로부터 사들여오게 한 사람은 그 누구였던가. ...’(동아일보 1959.05.28. 빠나나가 쌀을 먹는 세상)


오늘날 바나나는 세계적으로 대량으로 생산되는 과일로 우리나라에도 관세를 적게 내고 들어온다. 따라서 가격이 싸다. 옛날 관세를 엄청나게 매겨서 가격이 비싸던 과일이 오늘날은 가장 싼 과일이 되었다. (출처: 전북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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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