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신문으로 보는 개항 이후 들어온 음식 이야기 3

일본 식으로 변형되어 들어온 일제 강점기 빵

근대 신문으로 보는 개항 이후 들어온 음식 이야기 3

일본 식으로 변형되어 들어온 일제 강점기 빵

빵은 밀 등의 곡식 가루에 물과 소금, 효모 또는 화학 약품을 넣어서 반죽한 후 오븐에 굽거나 찐 음식이다. 빵은 중동이나 이집트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만들어 먹었고, 유럽인들의 주식이다. 중국에서도 밀이 많이 나는 지방에서는 빵을 만들어 먹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선 시대 말까지 밥이 주식이었다. 빵이 식사 개념으로 도입된 것은 개항기 이후이다. 일제 강점기 중국 빵의 한 종류인 호떡이 싼 가격으로 퍼졌고, 뒤이어 일본인이 받아들여 변화 시킨 유럽 식 빵이 조선에 보급되었다.

일본인들이 받아들여 변화 시킨 빵은 지금도 한국 군대에서 지급되는 건빵, 단팥 빵이라고 하는 안팡, 현미로 만든 겐마이팡 등이었다. 건빵은 러일전쟁 중인 1905년 일본에서 만들어졌는데, 맥주 이스트로 밀가루 반죽을 발효 시켜 보존과 휴대가 간편하도록 비스킷 모양으로 구운 것이다. 건빵은 가마에 그냥 넣으면 터져 버리므로 반죽에 구멍 2개를 뚫는다. 안팡은 쌀 누룩으로 쓰는 효모를 밀가루 반죽에 넣고 속에 팥소를 넣는데 1874년 일본에서 개발되었다. 겐마이팡은 밀가루 대신 현미 가루를 넣고 청주 만들 때 쓰는 누룩으로 부풀린 빵이다. 러시아 사람이 만든 빵이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많이 팔리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빵은 주로 행상용 물건이었다. 안팡과 비슷한 것으로 갈돕 만두라는 것이 있다. 갈돕만두는 서울에서 고학 하는 고학생들의 모임인 갈돕회에서 만든 팥빵이다. 이들은 공부와 행상을 병행하면서 행상 해서 번 돈을 학비와 생활비로 쓰는 사람들로 1922년 무렵에는 서울에 1000명 정도가 있었다. 이들이 파는 갈돕만두는 중국인인 파는 호떡 처럼  소다를 넣어 밀가루 반죽을 부풀렸는데 호떡 보다는 소다를 조금 넣었고 빵 안에 팥과 설탕을 섞은 소를 넣었다. 『동아일보』1922.10.24 「누리형설(淚裏螢雪) 1000명의 고학생」 갈돕만두를 주로 저녁 무렵부터 밤까지 팔았는데, 갈돕만두를 팔다가 한밤중에 불의의 변을 당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동아일보 1925.12.06. 만두 7개로 생명을 빼앗겨)

건빵은 일제 강점기 한국에 주둔한 일본 부대에서 만들었다. 동아 일보 1926년 8월 9일 가정 고문 기사에는 본적이 황해도인데 미술을 배우고자 상경한 지 5달인데 돈이 없어 육군 영문 안에서 빵을 굽고 있는 청년이 어떻게 해야 공부를 할 수 있는지 질문을 하였다. 이에 대한 대답은 지금 가진 직업을 열심히 해서 썩 잘하게 되면 그것으로 돈을 저축하면 앞날이 열리게 될 거라고 했다. 이 기사는 일본 군대에서 건빵을 구웠음을 보여준다.

                                1923년 12월 1일 인천의 현재장래 (사진출처:동아일보)

현미 빵인 겐마이팡도 행상 용 빵이었다. 1920년대 인천이 겉으로는 발전한 듯 하지만 조선 사람들이 군밤 장수나 겐마이빵 장수로 전락한 것을 한탄하는 신문 기사도 있다. 『동아일보』1923.12.01. 「인천의 현재장래」겐마이빵 장사나 군밤 장사는 가을과 겨울, 봄까지 길가나 큰 집 문 앞에서 무르니 덥소 군밤 이야를 외치고 따끈따끈한 겐마이빵을 부르면서 살을 에일 듯한 추위의 밤이 가는 줄 모르고 팔다가 초여름부터는 아이스크림이나 얼음 장사를 하는 것 이었다. 『동아일보』1924.04.30. 「아이스크림」

러시아 빵 행상도 있었는데 러시아 빵은 쉬즐란스키라는 러시아 사람이 대량으로 구웠던 듯하다. 그는 1925년 빵은 잘 팔면서 밀가루 값은 안낸다고 풍국제분회사로부터 빵굽는 가마를 차압 당하였다. 풍국제분회사는 그가 노국사람이라 빵 장사를 하다가 그냥 다른 데로 떠넘기고 달아나면 꿩 잡은 자리니 미리 차압 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동아일보』 1925.01.20. 「휴지통」

대규모로 만든 러시아 빵 일부를 행상들이 팔았는데 시내 화원정 135번지에 사는 러시아 빵 장수 심명완(45)과 그의 처 정씨(25)가 재작 11일 오후 8시경에 고양군 중면 풍리로 빵을 팔러 다니던 중 별안간 어떤 자 한 명이 심명완을 때리고 지갑과 보따리를 훔치고 정 씨까지 욕을 보이려 「강도강간 하다가 일산 경찰서 순사 3명에게 체포되기도 했다. 『동아일보』1924.09.13. 미수」 이러한 빵 행상은 시기에 따라 갈돕만주에서 로시아 빵, 겐마이빵에서 모던 빵으로 빵 종류가 변화하였는데 1930년에는 겐마이빵에서 모던 빵으로 빵 종류가 바뀌었다. 『동아일보』1930.09.08. 「휴지통」

                                1935년 12월 12일 요새 식빵은 웨 맛이 없나? (사진출처:동아일보)

이렇게 행상 용 빵 이외에 가정에서 식사 대용으로 먹는 빵도 있었다. 이런 빵은 주로 일본인이 운영하는 제과점에서 팔았는데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그리하여 이 시기 신문에서는 집에서 빵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품질이 좋은 빵을 만들려면 오븐이 있어야 하는데 오븐이 없는 조선 가정에서 좋은 빵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밀가루 에서 좋은 빵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밀가루 외에 버터나 계란 등 다소 고가인 재료들을 갖추기도 힘들었다. 그리하여 제과점에서 빵을 사 먹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는데 1935년 무렵에는 제과점에서 파는 빵도 맛이 없게 되었다. 그 원인은 밀가루를 자급자족하게 되어 캐나다나 호주산 밀가루가 못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산이나 호주산 밀가루는 발효를 하면 많이 부풀어서 맛이 부드러운데 자급자족으로 만주 산 밀가루를 쓰게 되면서 빵이 잘 부풀지 않았던 것이다.

『동아일보』1935.12.12 「요새 식빵은 웨 맛이 없나?」 영등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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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