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寺址), 여백 속 충만한 흔적

사지(寺址), 여백 속 충만한 흔적

 

 

‘빈터’가 주는 울림

마음이 가난하고 메마른 사람은 모든 것을 표면적으로 즐기는 버릇이 있다. 그들은 화려한 전각도 없고 경관이 아름답지도 않은 사지에서 무엇을 보고 즐길 것인가 반문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꽃을 보는 데도 개화가 절정에 달할 때를 기다려 달려가 마음에 사무치는 감동도 없이 꽃나무 아래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하여 계절 변화나 전체 분위기를 아울러 보는 관조(觀照)가 없다. 눈으로만 보고 즐기는 사람들은 꽃이 다 지고나면 구경할 게 없다 하여 그곳을 두 번 다시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지도 그런 곳이라 믿는다.

 

사지에는 눈길을 끌 만한 것이 적은 반면 빈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무언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고, 사람을 명상에 잠기게 하는 마력(魔力)이 있다. 사지를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시간이라든가 자연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이것은 사지가 던져주는 의외의 선물이자 색다른 교훈인 셈이다.

 

 

03, 04. 사적 제301호 부여 정림사지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 (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이다. ⓒ문화재청

 

사지의 첫인상은 적적하고 쓸쓸하다. 그런데 이 분위기는 태초의 원초적 적막과는 다른 것이다. 사지의 고적함은 난장을 치르고 난 장터 오후의 공허함과 같은 것이요, 원색 인파가 민물처럼 빠져나간 겨울 해변의 허전함과 같은 것이며, 타작소리 끝난 가을 들판의 고요하고 잠잠한 것과 같은 것이다. 사지를 감도는 고적함은 변화와 움직임을 다한 후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는 회귀의 자태이자 원본으로 귀의한 후의 여운과 같은 것이다.

 

불교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조선의 유학자들도 때로 사지가 주는 감흥에 젖곤 했다. 그들은 옛 사지에서 묵은 자취를 더듬어보기도 하고, 황량한 비석을 보고 지난 일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사지의 고적한 분위기 속에서 회귀의 자태를 자각하고 마음의 묘처를 찾기도 했다. 그러한 경지는 성리학이 불교와 만나는 지점이기도 했기 때문에 선비들은 종교적 거부감 같은 것은 느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임제(林悌,1549∼1587)의 <백남사 절터를 지나며>, 소두산(蘇斗山, 1627~1693)의 <고사허(古寺墟)> 등 조선 선비들이 남긴 시에 사지의 감흥이 잘 표현돼 있다.

 

여백은 실체가 없으면서도 그 무엇으로 충만되어 있는 묘유(妙有)의 기색(氣色)이다.

 

 

산수화의 여백과 같은 빈터

동양 산수화 화면에서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부분을 여백이라 한다. 여백은 공백과 차원이 다른 것이다. 공백이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처럼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여백은 실체가 없으면서도 그 무엇으로 충만되어 있는 묘유(妙有)의 기색(氣色)이다. 공백은 비어 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여백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보이는 것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닌 신묘한 그 무엇이다. 여백의 기색은 어떤 현상이나 모습 따위가 일어나거나 있는 것을 짐작케 해주는 낌새다. 이 낌새는 보이는 것에 의해 파악되는데, 산수화에서는 산이나 물이나 나무이고, 사지에서는 남아 있는 것들이다.

 

사지의 빈터는 ‘완전한 전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의 무형의 흔적이다. 원래 텅 빈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지의 빈터는 산수화의 여백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여백에 충만된 묘유의 기색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방 안에 가득 찬 물건들이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불을 비추면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홀연히 나타난다. 사지의 탑, 주춧돌, 축대, 계단 등 모든 보이는 것들이 등불과 같은 존재다. 이들을 등불 삼아 사라진 것들을 비추면 보이지 않던 것들의 실상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05. 중원 미륵리 사지. 절터에는 제일 위로부터 미륵석불입상, 석등, 오층석탑, 돌거북, 당간지주 등이 일직 선상으로 놓여 송계계곡을 향하고 있고 조금 떨어진 하늘재 입구에는 자그마한 삼층석탑 한 기가 있다. ⓒ한국민예미술연구소

 

 

남아있는 것이 말해주는 사라진 것

사지의 모든 것은 유·무형의 오묘한 교합상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즉 보이는 것에 기초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불탑의 규모와 층수와 서 있는 위치를 보면 이 절의 중심 영역이 어디인지, 주불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현존 대가람과 중·소규모 사찰들을 봐서 알 수 있듯이 석탑의 크기와 주불전의 크기는 비례한다. 이것은 탑이 크면 불전 규모도 크고, 탑이 작으면 불전의 크기도 작다는 의미다. 탑과 불전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알고 남아 있는 탑을 보면 사라진 불전의 모습이 드러난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친 이끼 덮인 고승대덕의 부도는 이 절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말해주고 있으며, 부도의 수는 전등(傳燈)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요사체 터에 남은 주춧돌의 수는 얼마나 많은 수도승들이 이 절에서 생활했는지를 알려 주며, 커다란 돌을 파서 만든 석조(石槽)는 이 절이 수많은 잔치와 행사를 치렀던 대찰임을 알게 해준다. 곳곳에 남은 사자, 용, 가릉빈가 등 석조 장식물들은 사찰을 불국토로 조성하는 불자들의 종교적 열정과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다.

 

폐허 후 사지를 거쳐간 장구한 세월은 높은 것은 깎아내리고 낮은 곳은 채우면서 수평을 지향했다. 모나고 날카로운 파편을 둥글고 무디게 만들었고, 반쯤 묻힌 주춧돌은 자연석처럼 보이게 했으며, 허물어진 석축 틈새에는 고비, 고사리가 자라게 했다. 불탑, 부도, 탑비, 주추, 계단, 축대, 장식석상, 기왓장 등 사지에 남은 모든 것들의 뒤에는 오랜 시간과 인과(因果)의 법칙이 내장돼 있다.

 

흐르는 것이 시간이라지만 어떻게 보면 사지의 시간은 멎어 있다. 지금 불탑이 서 있는 자리는 천 년 전과 변함이 없고, 귀부의 위치는 처음 그대로다. 좌향(坐向)도 달라진 게 없고, 석계에 비추는 햇살 방향도 그때 그대로다. 불탑은 현란한 상륜(相輪)을 잃었지만 모든 움직임이 제거된 영겁의 형(形)을 드러내고 있고, 비신을 잃은 귀부는 만법이 원래 정해진 형상과 주처(住處)가 없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수도자들의 염불과 독경소리가 계곡에 가득했고, 사부 대중들의 공양미가 산처럼 쌓여 있던 대가람이 지금은 이렇게 스산하고 쓸쓸하고 고적한 빈터로 변해 있다. 어제의 영화와 오늘의 폐허 사이에는 무량대수의 인연과 긴 세월의 작용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긴 세월이라는 것도 영겁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둘 사이에는 선후의 구별이 없다 할 것 이니, 영화와 폐허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당초부터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관조의 눈으로 사물을 보면 그 근원적 실체가 드러나고, 침잠의 상태에서 나를 돌아보면 본성이 드러난다.이런 눈과 마음으로 만사를 대한다면 현실과 외형 집착에서 오는 고통과 번민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해인삼매(海印三昧)라 했던가. 고요한 바닷물이 만상을 거울처럼 비추는 적멸(寂滅)의 경지 같은 것을 사지에서 느낄 수 있다. 옛 영화와 폐허의 잔영이 공존하는 사지에는 보이는 것은 적으나 함축은 많다.

출처:글.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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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