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던 섬, 어둠을 안내하는 강렬한 빛줄기

그곳에 가고 싶다던 섬, 어둠을 안내하는 강렬한 빛줄기

 

다시 가고픈 섬

 

일반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섬, 그러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촬영지로 유명한 당사도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다.  코앞에 보길도가 떠있고 소안도와 노화도가 지척이다.  당사도는 완도에서 소안도까지 와서 다시금 배를 갈아타야 한다.

 

방파제조차 없는 당사도 선창에 닿으면 ‘새땀’이나 ‘여드레이’ 같은 해변을 뒤덮은 후박나무·동백나무 등 울창한 상록수림이 압도한다.  짙은 군청색 바위들이 즐비한 해변은 그 자체로 수석공원이다.  당사도의 바위는 단단하여 깨지지도 않는 다부진 몸매로 물만 적시면 군청색이 화사하게 살아난다.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의 촬영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대개 무인도나 척박한 섬에 등대들이 있는데 당사도 등대(등록문화재 제731호 구 당사도 등대)는 정반대다.  주민들이 농사 지으면서 생활하는 섬의 가장 아름다운 곶에 등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등대가 있어서 색다른 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대체로 등대가 있는 섬은 절해고도의 무인도이거나 바위섬에 불과한 경우가 많지만 당사도는 30가구에 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오붓한 등대섬이다. 주변은 어종이 풍부해 바다낚시와 스킨스쿠버 다이빙 포인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진 인터넷 캡쳐)

 

         (사진 인터넷 갭쳐)

 

영화 제목 때문만이 아니다. 당사도는 정말이지 다시 한번, 아니 몇 번이라도 다시 가고픈 섬이다.  근처 보길도에 연간 숱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그리고 보길도의 동백나무숲 등이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고 있지만 당사도는 산 전체가 상록수림이라 눈길 주는 곳마다 나무뿐이다.  숨어 있는 비경 그 자체다.  교통이 불편한 것이 오히려 이 같은 천혜의 자연을 그나마 보존시킨 것 같다.  사람 손길이 거의 타지 않은 몇 개 안 남은 비경이 바로 당사도인 것이다. 당사도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돌담의 섬’이다.  밭고랑의 돌담, 집집마다 둘러싼 돌담, 돌담을 둘러 만든 다랑논까지 돌담 투성이다.  높이도 만만치 않다.

 

완도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당사도 등대는 1909년에 처음 불을 밝혀 100여 년 동안 완도와 제주해협을 지나는 배의 안전 항해를 돕고 있으며 일제의 암울했던 시기의 울분을 달래기도 하였다.  1906년 경 이곳에 등대를 세우면서 항구로 들고나는 곳이라 하여 이 등대를 항문등대라고 하는데서 항문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당사도(唐寺島)는 소안도의 부속도서로 원래 이름은 '항문도'(港門島)였으며,  지명의 어감이 좋지 않아서 바꾼 이름이 '자지도'(者只島)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5권 전라도(全羅道)편에는 좌지도(左只島)의 주위가 36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1928년 8월 7일 동아일보 최용환 기자가 완도군을 순례하면서 적은 기록을 보면 본래의 이름이 자지도(者只島)로 되어있다.  그러나 인체의 그것과 같다고 하여 다시 한번 더 개명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당사도이다. 1982년에 새로 얻은 이 지명은 옛날 당나라를 오가던 배들이 이곳에 기항(寄港)하면서 무사고를 빌었던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뱃사람들 사이에선 자지도라 불리고 있다.  또한, 지도책마다 당사도, 자지도, 자개도 등으로 서로 다르게 표기된 경우도 있다.

 

소안도 건너편에 있는 당사도에는 실제로 일제의 군함이 주둔했었다.

1907년 자료를 보면, “소안도 부근 남연안 항문도 남서방 出雲礁 위험물, 港門도는 등대건설 중, 부근에서 기선 琥浦丸 伊吸丸 騰山丸 高砂丸 등이 조난, 소안항 남동구의 항문도 북동측은 港門堆가 있어 위험, 서남구의 生島 기타 암초 위험”과 같은 기록이 등장한다(한국수산지). 1907년 당시에 등대가 건설되고 있었고 그 전에 여러 배들이 조난당했던 정황이 엿보인다.

 

의거의 장소

 

일제 강점기에는 소안의 주민들과 의병들이 의거를 일으킨 역사적 장소이며, 화물을 실어 나르는 일본배들의 항해를 방해하고 등대를 습격하여 등대수를 타살하기도 했다.

 

일본은 일본상선의 출입을 돕고자 당사도에 등대를 세운다. 당시 당사도 초입의 소안도는 제주도 가는 길목이어서 목포 개항 이후 목포에서 제주도행 배들이 반드시 거쳐 갔다. 

 

 

  김정호도 『대동지지』에서 “제주로 들어가는 자는 해남· 

  강진·영암에서 출발하면 모두 이 섬에서 바람을 기다렸

  다가 제주도로 건넌다”고 하였다. 조선 초기까지는 추자

  도가 제주 육지항로의 중간 기항지였으나 중기 이후부

  터는 소안도가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사정은 변

  하지 않다가 다시금 추자도를 거쳐 제주도로 가는 오늘

  날의 항로로 바뀐다.

 

 

 

 

 

   당사도 항일전적비

 

당사도 등대에는 ‘항일전적비’가 서있다.  재미있는 것은 근년의 전적비 곁에 일제강점기에 등대에서 세운 비석이 무너진 채로 쌓여있다는 점이다.  일인들이 세운 비석을 해방 이후에 이곳 사람들이 부수었으며, 그 대신 항일전적비를 세운 것이다.  무너뜨린 민족정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석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모아두어 비교하게 하여 역사의 교훈을 일깨우는 장소로 손색이 없다. 전적비를 읽어본다.

 

“서해와 남해에서 일본선박을 항해토록 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선박의 안전항해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나라 남단의 자지도에도 1909년 1월 등대를 설치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이 지방 사람들이 의분을 참지 못하던 터에 소안 출신 동학군 이준화 선생과 해남 이진, 성명미상의 의병 5~6명이 1909년 2월 24일 자지도 등대를 습격, 일본 등대 간수 4명을 사살하고 주요 시설물을 파괴하는 의거를 감행하였다.”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피 흘리며 전개되던 의병운동이 이곳 당사도까지 미쳐서 등대를 파괴하기에 이른다. 남도에 속속 등대가 개설되던 당시는 의병운동이 불붙고 있었으며, 서남해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도의병들은 일본 어선을 습격하는 등 마지막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강진에 정박한 일본 어선을 의병이 습격하여 어선에 탑승하였던 일인 6명 중 2명은 즉사하고 2명은 중상” 따위의 신문기사는 이 같은 정황을 잘 설명해준다(매일신보 1909년 4월 6일). 왜 소안도 사람들이 ‘의분을 참지 못하고’ 등대를 공격하여 간수들을 사살하기에 이르렀을까. 등대가 설립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생긴 사건이었다.

당시의 등대는 ‘제국주의의 첨병’ 그 자체였으며, 일본인 간수들은 제국의 요새를 수호하는 파견대였다.  머나먼 오지였던 당사도 같은 섬에 제국의 군영(軍營)이 들어서고 간수들이 총칼로 지키게 되자 의병들이 습격에 나선 것이다.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제국주의등대’가 세워진 어느 곳에서나 등대습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당사도 등대에서 일어난 의거는 상황적 조건과 더불어 당사도 주변의 항일역량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안도를 중심으로 한 준비된 항일역량이 습격사건을 가능하게 하였다.  소안도 선착장에는 ‘항일의 땅, 해방의 섬’이란 장중한 비석이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소안도는 그러한 명성에 걸맞는 섬이다.

 

 

 

 

 

가장 격렬한 항일운동을 펼쳤던 곳으로 완도와 함경도 북청, 그리고 경상도 동래 등을 꼽는다. 소안도가 ‘외로운 섬’이 아니라 ‘항일운동의 메카’였던 셈이다.  당사도나 소안도의 모섬 격인 완도 자체가 항일운동의 진원지였다.  완도의 항일운동은 교육·계몽사업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니 사립학교를 세우고 야학을 개설하였으며, 곧 항일운동의 단서가 되었다.  사립학교 설립자와 교사들은 당대의 지도자이다.

 

항일비밀결사단체였던 1914년의 소안도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활동, 1919년의 3·1운동 참가, 1920년의 고금도 만세사건, 1920년 소안배달청년회사건, 1924년의 소안노농대성회사건, 1923년의 청산도 배달청년회사건, 1923년의 완도청년연합회와 완도무산청년회 조직, 1927년의 일심단사건, 1933년의 완도면 대신리의 비밀결사 신우회사건 등 다양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던 것이다.

 

이처럼 당사도 등대와 소안도 등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이들 섬의 의미가 더욱 값지게 보인다. 항일운동의 등대의 섬, 잘 보존하고 길이 이어갈 해양유산이다.     유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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