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 문화의 현장과 공동시설

마을 공동체 문화의 현장과 공동시설

 

도시에는 아파트와 호텔이 즐비해도 노숙자가 많지만, 시골 마을에는 노숙자란 말조차 거의 없다. 집 없는 사람들이 잘 수 있는 대문채나 문간방이 있을 뿐 아니라 접방살이(셋방살이) 문화가 있는 까닭이다. 나그네도 ‘하룻밤 쉬어 갑시다’ 하고 청하면, 문간방에서 하룻밤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접방살이 하는 사람도 장가를 가면 주민들이 협력하여 ‘도둑집’을 지어준다. 이웃끼리 밤에 모여서 며칠 만에 지은 집이라서 ‘도둑집’이라 일컫는다.

 

01.고성 왕곡마을의 그네 고성 왕곡마을은 자연경관과 전통주택, 농업시설과 함께 마을 놀이시설이었던 그네 터도 잘 남아 있는 전통 민속마을이자 국가민속문화재이다. ⓒ문화재청

 

02. 상주 복룡동 유적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의 건물지와 우물 등 생활유구들에서

상주읍성지의 동편 외곽에 거주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

03.단양 죽령 산신당(丹陽 竹嶺 山神堂) 산신당은 한국의 토속신인 산신 곧 산신령을 모시는 곳으로,

마을과 절을 수호하는 기능을 가진다. ⓒ문화재청

 

 

공생과 소통의 공동체 일터 공간

시골 마을은 노숙자는 물론이고 실업자도 대체로 없다. 땅이 없는 사람도 두레에 참여하여 공동으로 농사일을 할 뿐 아니라 소작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토지가 사유재산이지만 일을 공동으로 하므로 일자리는 공유되기 마련이다. 어른들은 으레 농부이지만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는 나무꾼이 된다. 따라서 마을에 농부와 나무꾼은 있어도 실업자는 없다. 실업자가 없으니 굶어 죽는 사람도 적다. 공동체 문화의 사회보장 기능이다.

 

공동체 문화에서 주거공간은 물론이고 일터도 공유되므로 생존에 필요한 문제들이 두루 보장되어 있다. 기본적 생존은 물론이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문화생활도 주민들끼리 함께 누린다. 두레 노동의 일 문화를 비롯한 놀이문화나 종교문화, 의례문화도 공동체 문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을에는 문화 공간과 시설, 조직들이 갖추어져 있을 뿐 아니라 누구든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두레는 공동노동 조직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일 문화의 핵심이다. 두레의 현장은 모내기와 논매기를 하는 논농사 공간이다. 농사꾼들은 농요를 부르면서 함께 모내고 논매는 일을 하는 한편, 쉴 참에는 막걸리를 마시며 서로 농사 정보를 교환한다. 남정들의 논농사 두레처럼, 부녀들은 삼삼기와 물레질 등의 길쌈두레를 한다. 길쌈두레의 현장은 부녀들이 함께 모여 길쌈을 하는 두레방이다.

 

두레방에서 길쌈노래를 부르고 시집살이 이야기도 하면서 삼도 삼고 물래도 잣는다. 부녀들은 마을 우물과 빨래터, 방앗간에서도 공동시설을 이용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살림살이 정보를 나눈다. 물 긷는 우물에서는 부녀들끼리 아침저녁으로 잠깐 만나 일상의 정보를 나누고, 빨래터에서는 며칠 만에 만나 한참 빨래를 하는 동안 제법 긴 이야기들을 하며 내밀한 사연들을 공유한다. 방앗간은 사유이지만 집집마다 갖출 필요가 없으므로 이웃들이 공유공간처럼 무상으로 이용하는 시설이다. 그러므로 일터는 더불어 공생하며 양방향 소통이 실현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04. 제천 오티별신제 (堤川 吾峙別神祭) 오티 별신제는 정월 14일 밤, 서낭제를 지내고 나서 별신의

뒷풀이격인 축제마당에는 고대 부락국가의 공동체신상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음주가무를 곁들인 제의형(祭儀型) 풍물놀이가 행해진다. ⓒ문화재청

05.아산 외암마을 디딜방아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등이 보존되어 있다. ⓒ문화재청

 

자급자족의 공동체 놀이 공간

주민들은 놀이를 하면서도 일을 할 때처럼 공동체 의식을 다진다. 도시처럼 공동놀이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일상공간이 필요에 따라 놀이터와 놀이시설로 이용된다. 마당과 텃논이 아이들의 겨울 놀이터가 된다. 넓은 마당에 모여 딱지치기와 술래잡기, 숨바꼭질 등을 하고 텃논에서는 공놀이와 사방치기 등 집단놀이를 한다. 겨울 텃논은 광장 구실을 하므로 어른들도 여기서 동채싸움이나 줄다리기, 강강술래를 한다. 일상의 생활공간이 곧 마을 놀이터인 셈이다. 그러므로 마을에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공동체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마을 숲과 냇물은 아이들의 여름철 놀이터다. 어른들에게는 동구 밖의 정자나무나 당나무 아래가 여름철 쉼터다. 들마루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의 여러 정보와 소문을 공유한다. 마을 앞의 시내는 남녀노소가 이용하는 물놀이 공간이다. 물이 깊은 소(沼)에는 남정들이, 소 아래 얕은 물에는 아이들이, 그 아래쪽 숲 그늘에는 부녀들이 물놀이하는 곳이다. 마을에는 번듯한 수영장이 없지만, 또래끼리 미역감기 좋은 냇물이 있어서 물놀이터 구실을 한다.

 

놀이도구도 제각기 만들어서 자급자족한다. 아이들은 팽이치기나 제기차기, 공기놀이, 딱지치기 등의 놀이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 사용한다. 줄다리기와 동채싸움, 쇠머리대기 등 거대한 어른들의 놀이도구도 직접 만들어서 공유하므로, 주민들은 누구나 차별 없이 공동체 놀이를 즐길 수 있다.

 

06. 순창 충신리 석장승 석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당산’ 혹은 ‘벅수’라고도 하며,

마을을 수호하고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한 주민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문화재청

 

종교와 혼례를 위한 일상공간의 특수화

마을의 종교문화 또한 공동체 신앙으로 공유된다. 마을에 서낭당이나 당나무, 장승 등 동신을 모시는 공간이 있어서 대보름에 동제나 장승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 엄숙한 동제가 끝나면 지신밟기 풍물로 마을은 축제공간으로 바뀐다. 어촌에서는 몇 해에 한 번씩 무당을 불러서 별신굿을 한다. 마을과 바다 사이에 조성된 모래밭이나 광장이 별신굿의 현장이다. 이때는 이웃 마을에서도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마을 축제를 이룬다.

 

그런데도 인위적으로 만든 시설로는 서낭당이 고작이다. 여름철 쉼터인 당나무 둘레에 금줄을 치면 동제를 올리는 신성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기성 종교처럼 교회나 사찰도 없고 교단의 통제도 없다. 주민들의 합의에 따라 제관을 뽑고 제의 방식도 정한다. 모든 결정을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하는 공동체 신앙이므로 진정한 종교의 자유를 누린다.

 

07. 영암 영보정 (靈巖 永保亭) 조선 후기 동계(洞契)의 회합 장소로 사용되었던 향약 정자로서

보기 드문 희소성을 띠고 있다. ⓒ문화재청

08.예천 사부리 소나무.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 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평화를 빌던

당나무로 보호되고 있다. ⓒ문화재청

 

마을에서는 일생의례도 공동체 문화로 전승되어 왔다. 따라서 혼례나 회갑례, 장례를 치를 때 필요한 도구들이 공유자산으로 마련되어 있다. 마당이 곧 의례 공간이어서 굳이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을 빌릴 필요도 없다. 혼례에 필요한 대례복과 가마는 물론이고 장례에 쓰는 상여도 마을에 비치되어 있어서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마을에 각종 풍물이 갖추어져 있고 풍물패도 조직되어 있어서 회갑 때는 흥겹게 마을잔치를 벌일 수 있다.

 

혼례에 필요한 남녀 대례복과 가마는 동사(洞舍)나 유사(有司) 집에 보관되어 있지만, 상여는 거대한 구조물인 까닭에 별도로 ‘곳집’을 지어서 보관한다. 동네 산기슭 외진 자리에 허름한 창고 모양의 와가가 있으면 영락없는 곳집이다. 곳집이 와가인 것은 해마다 지붕을 이는 번거로움을 더는 것은 물론이고 초상 때 외에는 가능한 범접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곳집은 가장 큰 공유시설이면서 가장 소외된 곳에 자리하기 마련이다.

 

서낭당이나 곳집, 동사 등은 공동체 문화를 수행하는 공동시설로서 마을 문화재 구실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시설보다 일상의 생활공간이 더 긴요한 시설로 변용되는 것이 마을문화의 특징이다. 이를테면 마당이 그러한 보기이다. 마당은 타작하는 일터이자 숨바꼭질하는 놀이터이며, 혼례를 올리는 예식장으로 두루 변용되는 까닭에 특수시설이 불필요하다.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는 마을 문화재

삼삼기를 하거나 또래 모임을 할 때도 공유공간이 아닌 이웃집 대청이나 넓은 방이 이용된다. 과부댁 안방이나 어느 집 사랑방 또는 상방이 또래들의 모임방으로 변용된다. 남정들은 사랑방에 모이고 아이들은 상방에 모이며, 부녀들은 안방에 모여서 함께 놀거나 일을 한다. 사적 공간이 모임방으로 정해지면 마치 공적 공간처럼 공동시설 기능을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한 소모임에 따라 남녀노소 주민들이 마을 정보와 세간의 풍문을 서로 주고받으며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또래끼리 놀면서, 부녀들은 우물가나 빨래터에서, 남정들은 일터에서, 노인들은 정자나무 그늘에서 제각기 또래 특유의 정보들을 교환하게 된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가족끼리 아침저녁 밥상머리에 둘러앉아서 다시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은 정보에서 소외된 사람이 없는 소통공동체이자 정보공동체인 까닭에 주민들은 서로 ‘이웃사촌’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마을의 공동시설만 문화재가 아니라 각 가정의 사적 공간은 물론이고 마을 숲과 냇물 같은 자연 공간도 마을 문화재이며, 시설이 없는 무형의 공동조직도 사실상 마을의 무형문화재라 할 수 있다. 출처/임재해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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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