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이타령覺說理打令의 의미

깨달음을 전(傳)하는 말로서, 이치(理致)를 깨우쳐 알려준다는 뜻이다

각설이타령覺說理打令의 의미

覺說理(각설리)의 覺(각)은 깨달을 覺(각)이고, 說(설)은 말씀 說(설)이며,理(리)는 이치 理(리)다.

이를 굳이 풀이해서 설명하면 깨달음을 전(傳)하는 말로서, 이치(理致)를 깨우쳐 알려준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깨치지 못한 민중(民衆)들에게 세상 이치(理致)를 알려준다는 뜻이다. 野史에 떠도는 내용들을 정리 해본다.

이에 관한 원조를 신라(新羅)의 원효대사(元曉大師)로 보고 있다.
원효대사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전설을 만들고 금강삼매경론으로 민중 호국불교 창건을 주도하고, 지신밟기로 얼씨와 절씨를 심어 놓았고, 각설이들 죽지 않고 오게 하여 꺼져가는 각설이를 설파(說破)하기 위해 중생(衆生)들이 알기 쉽도록 바가지를 치며 민중(民衆)속에 들어가 법문(法文)을 노래하며 교화(敎化)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서진 그림


각설이타령은
얼씨구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얼씨구는 얼의 씨를 구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 의미는 얼의 씨가 몸 안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저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 이 또한 저얼의 씨도 몸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이는 전생에 깨달았던 영(靈)은 죽지 않고 이생에 다시 태어난다. 라는 뜻이다.

이놈의 자식이 이래봐도 정승판서(政丞判書)의 자제로서 ~ 이생에서는 이 모양 이 꼴이지만, 전생(前生)에는 정승판서의 아들이었다는 전생론을 말하고 있다. 영(靈)은 돌고 돌아 다시 태어나는데 살아생전에 덕(德)을 쌓지 않으면 다음 생에 이 꼬락서니가 되기 쉬우니 이 사실을 잘 알아라. 는 뜻이다. 따라서 각설이(覺說理)는 영(靈)의 윤회(輪廻)를 노래한 선각자(先覺者)들에 의한 민중문화(民衆文化) 운동이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흥(興)이 날때 누구나 하는 소리로 얼씨구 절씨구라고 하는데, 그 말의 어원(語源)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900여 회나 되는 외세 침략을 받았는데, 한번 전쟁을 치르고 나면 전쟁에 나간 남자들은 거의 씨가 말라버릴 정도로 남자들이 수없이 많이 죽었다. 그러다 보니 졸지에 과부(寡婦)가 된 여자들과, 과년(過年)한 처녀들은 시집도 못 가고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도 쉽게 씨를 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이 맺혀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 소리가 바로 얼씨구 절씨구 지하자 졸씨구(卒氏求)였다. 이 말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얼씨구(蘖氏求) : 세상에서 가장 멸시당하는 서자(庶子)의 씨라도 구해야겠네.
​절씨구(卍氏求) : 당시 사회에서 천노(賤奴)였던 중의 씨라도 받아야겠네.
​지하자졸씨구(至下者卒氏求) : 가장 낮은 졸병의 씨라도 구해야겠네.
이렇게 남자의 씨를 구하고자 했던 아픈 사연이 숨어 있는 내용이다.

한자 원문을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얼씨구(孼氏求)란,
우리나라의 가족사에 서얼(庶孼)이란 말이 있다. 서자(庶子)와 얼자(孼子)를 합친 말이다. 서자(庶子)는 양반의 남자가 양가나 중인의 여자를 첩으로 얻어 낳은 자식을 말하며, 얼자(孼子)란 천민의 여자로부터 얻은 자식을 말한다. 그러니 천대받는 서얼(庶孼)의 씨라도 구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절씨구(卍氏求)란,
절간에서 씨를 구한다는 의미이니 중(승려)의 씨를 구한다는 뜻인데, 당시 중(승려/僧侶)는 사노비(私奴婢), 백정(白丁), 무당(巫堂), 광대(廣大), 상여(喪與)꾼, 기생(妓生), 공장(工匠)과 함께 팔천(八賤)이라 하여 천민(賤民)중에서도 최하위(最下位) 천민에 속해 있었던 것이 중(승려)이였다. 그래서 천민에 속해 있는 중의 씨라도 구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지하자졸씨구(至下子卒氏救)는
세상에서 가장 바닥 생활을 하던 자로 어딘가 모자라고 신체적으로 불구(至下子)인 이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최하위 졸병들의 수발을 들며 허드레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병신(病身)인 졸병의 씨라도 구한다는 의미라 하겠다.   유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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