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품고 있는 옛 길 16

낙동강 벼랑 길 황산 잔도

사연을 품고 있는 옛 길 16
 
낙동강 벼랑 길 황산 잔도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은 낙동강과 양산천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낙동강의 상류 방향으로 조금 이동하면 황산강 베랑길이라는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황산강은 낙동강의 옛 이름이고, 베랑길은 벼랑길의 경상도 방언이다. 즉 황산강 베랑길은 낙동강 변에 있던 가파른 절벽의 벼랑길을 의미하며, 황산잔도(黃山棧道)로 불리기도 한다. 잔도는 가파른 벼랑길을 지나기 위해 나무를 선반처럼 내매어 만든 길이다. 낙동강을 아래에 두고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어 매우 위험천만한 길로 알려져 있으며,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지나던 영남대로 가운데 가장 험준한 구간이었다. 낙동강을 따라 경부선 철길과 자전거 도로가 잘 어울리면서 ‘황산강 베랑길’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황산 비리, 황산 베리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대동여지도』에는 황산도(黃山道)로 표기되어 있다.


                                                                                           대동여지도



영남지방의 가운데를 남북방향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조선 시대에 경상도 동래지방과 한양을 오가던 사람들이 이용하던 물길이다. 영남지방 사람들은 배를 타고 낙동강을 따라 이동하거나 육로를 따라 영남 내륙까지 올라온 후 육로를 통해 백두대간을 넘어 충주에서 남한강이나 육로를 따라 한양으로 이동했다. 낙동강 물길을 직접 이용하지 않더라도 낙동강 변을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조선왕조 개국과 동시에 조정은 한양-동래간 간선도로의 노선을 확정하였는데, 이것이 영남대로이다. 특히 영남대로는 한양을 중심으로 X자 축으로 이루어진 조선 시대 9대 간선도로 중 가장 대표되는 도로였다. 9대 간선도로는 제1로 의주로: 한양-개경–평양-의주 (중국과의 외교 루트이자 교역루트로서 가장 중요히 여기던 대로이다) / 제2로 관북로: 한양-회양-원산-북청-경성-회령-경흥-서수라 / 제3로 관동로: 한양-원주-진부-강릉-울진-평해 / 제4로 영남대로 (좌로): 한양-용인-충주-조령-문경-대구-동래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이 루트를 통하여 한양까지 일사천리로 진격하였다) / 제5로 영남대로(우로): 한양-문경까지 우로와 동일, 문경(유곡역)-상주-성주-현풍-함안-고성- 통영 / 제6로 호남대로 (좌로): 한양-동작나루-과천-수원-천안-공주-삼례-전주-운봉-함양-고성-통영 / 제7로 호남대로(우로): 한양-삼례까지 호남좌로와 동일, 삼례-정읍-나주-해남- (바닷길)-제주 / 제 8로: 6로를 따라오다, 신례원-충청수영 / 제9로 강화로: 한양-김포-강화로였다.

개국 초에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한양을 중심으로 한 X자형 간선 도로망이 이루어졌다. 조선조 이전에도 중부지방과 경상도 사이에는 교통량이 많았지만, 대동맥이라 할 만한 도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 개국과 동시에 조정은 동래를 종착지로 정하고, 한양과 동래를 연결하는 간선도로의 노선을 확정했는데 이것이 영남대로다. 통과한 지역은 조선 시대에 가장 인구가 조밀하고 산물이 풍부하여 경제적으로 중시되던 곳이었다. 전국의 10대 도시의 반 이상이 분포했으며,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고장이 많았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행정적으로 큰 비중을 두었다.

조선 시대의 주요 도로는 한양을 중심으로 종착지를 연결하는 방향에 따라 그 이름이 정해졌다. 영남대로 역시 말 그대로 한양에서 영남 방향으로 향하는 큰길을 말하며, 조선 시대 9대 간선도로 중의 가장 대표되는 도로였다. 960여 리에 달하는 길에 29개의 주요 지선이 이어져 있었고, 총연장이 약 380km로 한양에서 동래를 잇는 최단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인구와 산업이 한반도 중부 이남에 치우쳐 있어 북부지방보다 도로망이 조밀하게 짜여져 있었으며, 도로를 중요도에 따라 대로, 중로, 소로로 나누고, 도로 폭은 대로 12보, 중로 9보, 소로 6보로 정했다. 그러나 자세한 사항은 지방마다 지형 여건에 따라 다소 다를 수도 있었다.

영남대로는 문경새재로 이어지는 과거길이었다. 선비에게는 입신양명의 길이었다. 조선 시대에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했던 선비들의 꿈이 아로새겨져 있는 길기도 하다. 올라갈 땐 희망을 안고 갔다가 낙방의 쓴 고배를 마시고 돌아오는 절망의 길이기도 했다. 선비들은 그 꿈을 좆아 다리품을 팔며 서울로 향하여 성공 후 금의환향하는 길이었고, 때론 재기를 꿈꾸며 낙향하기도 했다. 고달픈 삶을 살았던 민초들, 머리와 등에 무거운 업장 같은 등짐을 나르던 보부상들이 이 길을 갔었다.


조선 시대에는 각 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9개의 주요 도로가 정비되어 있었다. 대동여지도에 보면 영남대로는 부산에서 대구, 문경새재, 충주, 용인을 지나 서울로 이어져 있으며, 실제로 이 길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가면 약 14일이 걸렸다고 한다. 이 길은 경상도의 58개 군현, 충청도와 경기도의 5개 군현에 걸쳐 있었고, 29개의 지선이 이어져 있었다. 영남 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영남대로 외에도, 영천과 안동을 지나 죽령을 넘어 서울로 가는 영남좌로와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 가는 영남우로가 있었다. 이 길로 서울까지 걸어가면 영남좌로는 15일, 영남우로는 16일이 걸렸다고 한다. 현재 온전히 남아있는 영남대로의 구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양산 물금에서 밀양 삼량진에 이르는 영남대로는 일제 때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철도 밑으로 사라져 버렸다. 조금 남아있는 영남대로의 흔적도 사람이 다니지 않아 희미하다. 조선 시대 서울과 부산을 잇는 최단거리의 간선도로로 행정과 군사, 통신, 교통의 중심축이었던 영남대로(嶺南大路)에는 황산잔도(양산시 물금), 작원잔도(밀양시 삼랑진), 관갑천잔도(경북 문경)가 영남대로의 대표적 3대 잔도로 손꼽히고 있다.


                                                                                            작원잔도


                                                                                   경파대(鏡波臺)


                                                                                     임경대(臨鏡臺)




물금에서 밀양시 삼랑진 작원관까지 험준한 산길을 갈 수 없으므로 잔도를 개설하여 통행을 하였다. 잔도 위를 걸어가서 작원관에서 1박하고 한양으로 갔다고 한다. 물금읍 물금리와 원동면 화제리 경계에 배리끝이라는 절벽이 있으며 이 절벽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이곳의 수심이 아주 깊어서 쉰질 물길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설치된 황산잔도는 낙동강을 아래에 두고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어 매우 위험천만한 길로 알려져 있으며,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지나던 영남대로 가운데 가장 험준한 구간이었다. 과거에 이 옛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녔는지는 돌길이 반질반질하게 닳은 흔적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워낙 길이 험해 동래부사가 이 길을 피해 지나갔다고 하며, 옛 선비나 상인들이 황산장에서 술을 한잔 걸치고 지나다가 발을 헛디뎌 낙동강 물에 많이 빠져 죽었다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양산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모심기 노래에도 이와 같은 죽음 내용이 있다. “낭창낭창 베리 끝에 무정 하다 울 오라배, 난도 죽어 저승 가선 낭군부터 찾을란다" 라는 노래는 황산잔도 난간길을 오라버니 내외와 여동생이 함께 가다가 갑자기 강물이 넘쳐 물에 빠져서 오빠가 부인을 먼저 구하는 순간에 여동생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사건에서 나왔다는 위험한 길이었다.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가 낙동강변의 영남대로 구간을 따라 건설되면서, 지금은 모두 기찻길로 바뀌었다. 그래도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30여년 전까지 학생들의 통학로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황산잔도 주변에는 다양한 유적도 많다. 시인들이 노닐던 경파대(鏡波臺)라는 바위가 낙동강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잔도의 위쪽 오봉산에는 신라 말기 최치원이 풍류를 읊으며 시간을 보내던 임경대(臨鏡臺)가 있다.
황산잔도 근처의 경부선 철로변에는 용화사라는 사찰이 있다. 이 사찰에는 1694년 실시된 황산잔도 정비를 기념하면서 세워진 황산잔로비(黃山棧路碑)가 있다. 잔도라는 표현 대신 잔로라고 기록해 놓았다.

2012년에는 부산 시민의 식수원인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취수장에서부터 원동 취수장까지의 구간에 대해 황산잔도 복원 사업이 완공되었다. 지금 영남대로 황산잔도는 낙동강을 따라 경부선 철길과 자전거 도로가 잘 어울리면서 ‘황산강 베랑길’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구간은 아름다운 국토종주 자전거길 2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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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