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3국의 건축양식이 다 모인 곳, 보길도 정자리 김양제 고택.

고산 윤선도로 유명한 섬 보길도 정자리에는 완도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김양제(김동성) 고택이 있다. 이곳 김 씨 고택은 조선 말 고종 때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역임하고 일제 침략 초기 항일 산림 전재의 주도자로 알려진 계암(溪岩) 김성희(金成喜) 선생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양 3국의 건축양식이 다 모인 곳, 보길도 정자리 김양제 고택.

고산 윤선도로 유명한 섬 보길도 정자리에는 완도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김양제(김동성) 고택이 있다. 이곳 김 씨 고택은 조선 말 고종 때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역임하고 일제 침략 초기 항일 산림 전재의 주도자로 알려진 계암(溪岩) 김성희(金成喜) 선생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 후손들은 지역의 유지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이들은 조선 시대 8대 부자의 하나로 손꼽혔는데, 제사상에 소머리를 올릴 정도로 그 세가 대단했다. 또 만호장(1만 가구를 거느릴 수 있는 장수)을 거느릴 만큼 부와 권세를 누리기도 했다. 전라도 해남과 진도까지 땅을 가지고 있었고, 보길도의 산 가운데 70%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김 씨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행율당), 행랑채, 대문채 등 4개 동으로 구성되었으며, 총 231.3㎡ 규모의 목조 전통주택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안채는 200여 년 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전 할머니(93세)


행율당(杏律堂)

뒤를 이어 2대 정산(停山) 김상근(金商瑾) 선생이 사랑채인 행율당과 대문채, 행랑채를 축조하였다. 당시 인근에 기와 공장을 세워 여기서 구운 기와로 지붕을 이었으며 중국, 일본인 목수와 건축기술까지 참여하여 공사를 함으로써 동양 3국의 특징을 두루 지닌 독특한 건축물로 축조됐으나, 지금은 일부 개량되어 원형이 아쉽다.



이후 3대 고암(鼓岩) 김양제(金良濟) 선생이 중수하고, 정원을 조성했다.
정원은 전정, 중정, 후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50여 종류의 아열대수종과 난대수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택 내부 정원의 존재도, 섬지방이 주로 상록수임에도 이곳 정원의 식물 종류가 다양한 것도 특이하다.


현재 이 고택은 김양제 선생의 부인인 김 전(93세) 할머니가 지키고 있으며, 4대 김동성 선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향토유적 (신라 말기 고승 혜일스님의 제자들이 세운 부도탑으로 추정)


또한 김 씨 고택보다 오래된 것이 이 고택 안쪽에 있는데, 바로 완도 향토유적으로 청해진을 설치했던 장보고 시대에 조성된 중암사지에 방치돼 있던 신라 말기 고승 혜일스님의 제자들이 세운 부도탑으로 추정된다. 이 부도가 개인이 거주하는 고택에 자리 잡은 데도 사연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이 부도탑이 바다에 수장 될 뻔하였는데 당시 완도군수였던 김상섭씨 동생인 김상근씨(김양제씨 아버지)에 의해 김양제 고택에 부도를 숨겨 지금의 자리에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 박주성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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