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탕카 화법으로 그린 다섯 고승의 진영

큰 스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예술을 진영이라 부른다. 진영이란 이영심진(以影尋眞)의 줄인 말이다.

티벳 탕카 화법으로 그린 다섯 고승

임금의 모습을 그리면 御眞(어진)이라 하고, 고승의 모습을 그리면 眞影(진영)이라 한다. 큰 스님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예술을 진영이라 부른다. 진영이란 이영심진(以影尋眞)의 줄인 말이다. 티벳 화가들이 탕카 방식으로 그린 한국의 다섯 분 고승 진영이다. 공들여 그린 작품들을 대원사 티벳 박물관 2층에 봉안하였다.

그림자를 통해서 진실을 본다는 뜻이다. 육신이 법신의 그림자인데 그림자의 그림자를 통해서 불법을 깨우친 스승들의 얼의 꼴(얼굴)을 본다는 뜻이다.

서산대사는 묘향산 원적암에서 제자들에게 이승의 마지막 설법을 하였다. 그리고 손수 그린 자신의 영탱(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진영)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시한수를 적어 사명과 처영에게 준 다음 가부좌하고 입적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유물은 해남 대흥사로 옮겨 보관하게 하였다. 대흥사는 삼재가 들지 않고 만세토록 파괴되지 않을 길지라고 하였다. 대흥사에 서산대사의 소중한 유물이 전래 되는 이유이다.

대원사 티벳 박물관에는 티벳 왕궁 화가 믹말과 학쌈, 체링 부부 화가가 2년동안 머물렀다.
박물관 외벽에 12점의 벽화와 장엄 단청, 출입문 장엄 단청, 박물관 내부 장엄 단청을 하였다. 수미 광명탑 내부에도 오방불 세계를 표현한 만다라 법당 장엄을 티벳의 전통불화기법에 따라 화려하고, 장엄하게 표현하였다.

비바람이 치고 햇볕을 받는 박물관 외벽의 귀한 벽화는 안타깝게도 많이 손상되었다. 수미 광명탑 내부의 오방불 벽화는 어제 그린 듯 생생하다.

살아 있는 스승들을 부처님으로 섬기는 티벳 불교 전통을 따라 한국의 다섯분 큰스님들을 티벳 탕카 방식으로 모셨다. 한 분 그리는데 한 달 이상 시간이 소요되었다.


조계총림 송광사의 방장이신 구산 선사 진영이다.
오른손에는 중생들의 번뇌를 정화 해주는 하얀 불자를 쥐고 있다. 법상 상단에는 세 가지 보배인 불법승 삼보를 이마위에 받들고 있다. 석사자의 호를 따라 불법의 수호신인 설사자가 큰스님의 좌대를 받치고 있다.


가야산의 호랑이로 널리 알려진 해인사 백련암의 성철 선사 진영이다.
오른손에는 설법의 상징인 주장자를 들어 삼천세계를 울리고 있다. 탁자 화병에는 연꽃과 모란이 있고 불법의 수레바퀴를 크게 돌리신 법륜을 모셨다. 좌대에는 새들의 왕 가루라가 받치고 있다.


 26세에 출가하여 열반할 때까지 평생을 일종식과 장좌불와 그리고 하심행으로 수행자의 사표가 되신 청화 선사의 진영이다.
오른손에는 염불선으로 마음의 본성을 깨닫게 하는 단주를 쥐고 있다. 탁자 조각에는 두마리 용이 우주의 보물을 공양 올린다. 좌대에는 독사를 잡아먹는 공작이 있다. 공작좌는 아미타불의 보좌이다.


백양사 고불총림의 방장이신 서옹 선사 진영이다.
일본 임제종에서 설립한 화원 대학에서 선학을 연찬하셨으며 임제종 묘심사 선원에서 수행하셨다. 선풍도골, 천진난만한 법상을 진영으로 잘 표현했다. 오른손에는 불자를 힘차게 들고 있다. 탁자에는 전통 법식대로 수습한 서옹 선사의 사리를 모신 사리함이다. 좌대에는 붉은 띠를 목에 두른 흰 말 한쌍이 받쳐주고 있다.


초의선사 진영이다.
왼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오른손에는 염주를 쥐고 있다. 법상 주위로 화려한 모란꽃으로 장엄하였다. 법상 하단에는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코끼리 좌대이다. 화병에는 차꽃을 올리고 중심에는 백자다기에 차 한잔을 올렸다.


* 탕카 thang-ka, 幀畵 (괘불화(탱화) 라고도 한다.
족자 또는 액자로 만들어 사용했다. 탱화의 '탱'은 '틀에 그림을 붙이는 것', '걸개', '서화를 세는 단위' 등을 뜻한다. 근본적인 목적은 명상을 돕는 데에 있으며 엄격한 의궤의 법칙에 따라 그려져 주제를 통해서 불교를 잘 이해할 수 있다. 티베트에서는 탕카라고 하며, 주로 면직물 위에 그렸다. 그림을 말아 올릴 수 있도록 밑단에 대나무 막대를 붙였다. 사원이나 가정집의 불단에 걸기도 하고, 종교 행렬에 들고 나가기도 하며, 설법을 도해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탕카는 대략 10세기경에 대두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언제 탱화가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현존하는 탱화는 고려 시대 이후의 작품이 전한다. 이 시대의 탱화는 귀족적인 성향, 조선 시대의 탱화는 민중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미 삼국시대부터 불화가 그려진 것으로 나타나므로, 탱화는 통일신라 때부터 일반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라남도 보성 대원사 티벳 박물관 2층에 전시 되어 있다.

자료/대원사 티벳 박물관  석현장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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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