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인류의 습속, 인신공희 - 신라 왕성 ‘월성’에서 다시 발견되다 -

우리나라도 2017년 경주의 월성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인골 1구와 동물뼈가 추가로 발굴되었다.

아주 오래된 인류의 습속, 인신공희 - 신라 왕성 ‘월성’에서 다시 발견되다 -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인신공희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존재한다. 고대 지중해 시기부터 유럽은 물론 아스테카, 잉카 문명 등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다. 가장 좋은 것을 신에게 바치겠다는 생각이 극단적으로 뻗어나가 결국 ‘사람’을 제물로 바친 것으로 추측되는 인신공희. 우리나라도 2017년 경주의 월성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인골 1구와 동물뼈가 추가로 발굴되었다.


01.인신공희 출토 정황



4세기 제물 인골의 추가 발견

2017년 경주 월성에서 발견된 인신공희 50대 인골 2구는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친 정황’을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한 사례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고조선 시절부터 무덤에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부여나 가야 등에도 그런 풍습은 존재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성곽과 같은 생활유적은 미지의 영역이었는데 2017년의 인골 발굴로 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된 서성벽 발굴 결과, 올해 성인 여성의 인골이 1구 추가 발굴된 것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신라 왕성인 ‘월성’의 축조 연대와 축성 방식도 최초로 밝혀지면서 문화재사적으로 의미 있는 조사 결과를 얻게 되었다.


현재 조사 결과, 월성 기초부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거대하게 쌓아 올리기 전, 성벽과 문지가 견고하게 축조되길 바라는 인신공희가 거행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번에 확인된 여성 인골은 이전과 달리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 팔찌를 착용했고 키는 약 135cm 전후로 보인다. 인골과 함께 주변에서 동물 뼈도 발견되었는데 말, 소 등 대형 포유류로 추정되며 늑골 부위 위주로 선별하여 제물로 바친 것으로 보인다. 인신공희 지점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이미 1985년과 1990년 조사에서 출처 불명의 인골 20구 이상이 일괄 보고된 바 있다. 이 역시 이번에 밝혀진 월성의 축성 작업과 비교해 보면 성벽 축조 과정과 관련해 묻힌 것으로 보인다.

02.추가 인신공희 모습  03.인신공희 출토 토기   04.인신공희 토기 엑스레이 사진



신라사 연구의 새로운 전기 기대

20대 전후에 사망한 것으로 짐작되는 인골은 얕은 구덩이를 판 뒤 안치했으며, 위에는 풀과 나무판재를 덮었다. 상반신이 하반신보다 조금 낮은 상태였고 목은 부자연스럽게 꺾인 것으로 보인다. 저항 흔적이 없어 사망한 뒤 묻은 것으로 판단됐다. 인골은 굽은 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했으며, 왼손 손가락 사이에서 복숭아씨 한 점이 나왔고 머리맡에서는 토기 2점이 포개진 채로 확인됐다. 큰 토기에 작은 토기가 들어 있었고, 큰 토기에는 절반가량 흙이 있었다. 함께 발견된 동물 뼈는 완전한 형태의 개체가 아니라 늑골 부위만 해체에 묻은 것이 특징으로, 의도적으로 절단한 늑골 흔적도 보인다. 제물로 바치기 위해 특정 부위만을 선호했던 것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에 발견된 인골은 성벽의 중심 골조 가장자리에 맞춰 평행하게 시신을 둔 점이나 문지 근처라는 위치를 볼 때 계획적으로 인신공희가 이뤄졌음을 짐작게 한다. 그 당시 사람들이 성벽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원하거나 문으로 지나다니는 기운을 잡기 위해 제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월성 성벽에서 발견된 인신공희 흔적은 국내에서 발견된 유일한 인신공희 사례이다. 또한, 조사 과정에서 월성 성벽 축조 시점이 보다 명확해지면서 신라사 연구의 전기가 마련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진. 문화재청, 자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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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