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에는 수많은 불상이 곳곳에 있다. 대략 불상 조각한 것이 80여 채, 석탑이 61기, 옛 절터가 110군데나 남아있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에는 수많은 불상이 곳곳에 있다. 대략 불상 조각한 것이 80여 체, 석탑이 61기, 옛 절터가 110군데나 남아있다.

아직도 중생들의 눈에 띄지 않고 깊은 삼매에 빠진 부처는 더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남산 자체가 거대한 법당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넓고 넓은 우주 법계 속에는 무수한 부처가 존재한다.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을 위시해서 밤하늘에 별처럼 뿌려진 것이 부처이다. 그래서 부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남산에는 앉았거나 또는 섰거나 얼굴에는 미소를 지으며 때로는 깊이 선정에 든 모습으로 이 어지러운 사바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다. 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부처님은 언제나 입을 다물고 있다. 때가 되면 스스로 알고 깨우치기를 말없이 가르치고 있는것이다.

무릎을 탁하고 치며 아하! 할 때 바로 정각을 이루게 된다. 우리가 믿는 것은 부처님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지만 불교는 스스로 깨우치는 것. 혹은 돌부처가 외면해서 내 마음속을 알아보지 못해서 섭섭한 생각이 들지만 내가 바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한결 가벼워진다.

경주 남산중에서도 동남산 자락에 불곡(佛谷)이 있다. 그리 멀지 않는 곳에 고요히 앉아있는 부처님이 있다. 혹시나 금강석 같은 정적이 무너져 내릴까, 지레 조심스러워진다. 깊은 선정의 법향이 마음속으로까지 이어오고 뒷꿈치 조차도 들어서 사뿐하게 가라앉는다.



거칠고 차디찬 돌에 생명을 불어넣은 석공의 투박한 그 손을 그려본다. 정을 때릴 때마다 어찌 좋은 날만 있었으랴. 즐겁고 신나는 날도 있지만 때로는 산고의 고통보다 더한 아픔도 훑고 지나갔으리라. 아무도 알아보아 주는 이도 없는 것 같았는데 오늘날까지 우리가 이렇게 석공의 피땀 어린 정성으로 신라인을 다시 만나는 인연을 연결해 준 셈이다.

그 공덕으로 아마 지금은 극락의 구품연지에 향기 가득한 꽃을 바라보며 날마다 좋은 날을 누리고 있을 것 같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이름 자체가 너무 사무적이다. 관리를 위한 방편이겠지만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친밀함이 다가온다. 부처골 할머니라고 부르면 실례가 되는 것일까. 첫인상이 꼭 동네 할머니와 같은 모습에 신라의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환생을 한 신라인을 보는듯하다.

부처의 위엄이나 자비가 어디로 가고  마치 우리들의 할머니 같은 토속적이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두덩이 풍성한데 왜 물든 홍조의 빛깔이 연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가부좌를 틀었는데 유독 오른발을 강조한 것이 의아하다. 더구나 상현좌 인데도 불구하고 오른발을 내보이는 깊은 뜻은 무엇일까.

커다란 화강암 암반에 약간 석굴 형태로 파고 들어갔다. 인도나 중국에서는 흔하지만 우리나라는 드물게 석굴사원이 있다. 군위 삼존석굴이나 골굴사와 석굴암의 연계선상에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는 주로 사암이나 석회암이라서 조건이 되겠지만 이곳은 가장 단단한 화강암이다. 정과 망치만으로 다듬었다는 것은 대단한 공력이다. 석공의 마음과 정성을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이 커다란 바위 속에 숨어 있던 부처를 찾아낸 것만 같아서 대견스럽다,

부처가 새겨진 감실의 높이는 150cm, 넓이 110cm 감실깊이 90cm이다. 불상 높이는 115cm, 얼굴길이는 36cm, 어깨너비 64cm이다.

불상은 방형에 가까운 신체에 두 무릎은 매우 넓어 안정감을 준다. 턱은 앞으로 당겨서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얼굴 표정이 부드럽다. 머리에는 두건을 쓴 것 같은 소발에 낮고 넓은 육계를 표현하였다. 두 손은 단전 앞에 모아 양쪽 소매 속으로 넣은 공수자세이다. 대의 착의법은 통견식이며 가슴에는 왼쪽 어깨부터 사선으로 표현된 내의를 입고 옷 주름은 무릎 밑으로 흘러내려 대좌를 덮은 상현좌를 하고 있다.

중국 7세기 북제. 북주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경주 배동 석조 여래삼존상이나 644년 경주 남산 장창곡 삼화령 석조 미륵삼존상과 같은 인상과 얼굴을 원각에 가까운 고부조이지만 평면적인 신체와 선각화된 옷주름 표현 등에서 삼국시대 말기인 7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정태상 ucho7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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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