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 만난 소, 옛 생활에서 찾아보기

소와 관련한 물건에는 코뚜레나 멍에, 부리망처럼 소에게 효율적으로 일을 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들도 있었지만, 추운 겨울에 소가 덮고 지낼 수 있는 덕석이나 소 신과 같이 소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소를 위한 용구들도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올해에 만난 소, 옛 생활에서 찾아보기

올해는 신축년(辛丑年) 소띠 해다. 소는 성실하고 인내하는 품성으로 소띠 해에 태어난 아이는 그런 성질을 닮았을 것이라고도 하고, 자신이 소띠생이라면 아마도 2021년을 맞아 소띠의 품성으로 행운의 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그려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는 동물은 아니더라도, 소는 우리에게 친근하며 그와 연상되는 이미지는 푸근한 마음을 갖게 한다. 농경 사회가 열리면서 소는 농가 재산 목록 1호로 소중한 자산이자 해마다 가계의 풍요를 책임져줄 식구로 여겨졌다. 소와 관련한 물건에는 코뚜레나 멍에, 부리망처럼 소에게 효율적으로 일을 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들도 있었지만, 추운 겨울에 소가 덮고 지낼 수 있는 덕석이나 소 신과 같이 소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소를 위한 용구들도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소덕석(좌) / 소 신(우) ⓒ국립민속박물관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소

한집에서 늘 함께 생활했던 농가의 소는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 존재이기도 했다. 입춘이 되면 ‘흙으로 빚은 소’를 길거리에 세워뒀다는 『고려사』의 기록이나, 함경도에서 입춘이 되면 ‘나무 소’를 관청에서 끌고 나와 마을을 돌아다녔다는 『동국세시기』의 기록은 소를 농사의 상징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참조:(〈尋牛 소를 찾아서〉, 국립민속박물관 학술강연회, 2021)


전통 회화에서나 사찰 벽화에서도 우리는 소 그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소는 농가의 여유로움을 말해주기도 하고,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교외의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볼지도 모를, 벽에 걸린 코뚜레나 쇠뿔은 벽사(辟邪)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우리의 오랜 풍습이다. 매해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십이간지 중 그 해에 해당하는 동물을 소재로 전시를 열었다.

올해에도 〈우리 곁에 있소〉라는 테마의 전시와 학술강연회가 열려 이천 년 남짓 역사 속에서 우리와 함께한 소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 올해의 동물인 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주었다. 그에 따르면 소가 농사일을 했다는 문헌 기록이나 고구려 고분벽화(안악 3호분, 덕흥리 고분 등) 속 코뚜레를 건 소들의 모습은 우리가 소와 함께한 길고 긴 세월을 말해준다. 그 덕에 소에 관한 다양한 속담들도 우리 귀에 매우 익숙하다.

여기에서는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라는 글귀와 잘 어울리는 옛 공예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소는 전통생활에서 우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해왔다. 그만큼 우리가 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뜻일 것이다.



화각 빗접(좌)  /  나전칠 국화 모란 넝쿨무늬상자(우),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전통 공예에서 고급 재료로 다양하게 사용된 소

전통 농가에서 ‘일하는 소’가 재산목록 1호였다면, 전통 공예에서는 활용도 높은 고급 소재였다. 소가죽은 신발이나 모자와 같은 의복뿐 아니라 화살통이나 소가죽방패와 같은 군기(軍器), 북이나 장고 등의 악기류까지 다양한 곳에 쓰였다. 특히 북을 만드는 장인들은 북을 메울 때 지금도 두께가 두껍고 탄력이 있는 소가죽만을 고집한다.

최근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과학적 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국가 의례에서 사용하는 ‘절고(節鼓: 아악기에 속하는 북의 종류)’가 소가죽으로 만들었음을 증명하였고, 그 외 다른 공예품들에도 소가죽의 활용도가 높았음을 확인하였다. 활을 만들 때는 소의 힘줄을 사용하는데, 특히 쇠심줄은 활쏘기의 강한 힘의 원천으로 핵심적인 재료였다.

소뿔을 이용해서 화각함을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통 주거 공간의 안방에 가장 화려하고도 고급스러운 가구였던 화각함의 장식은 소뿔을 얇게 연마하여 그 안에 당채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 장식한 것이다. 소뿔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문양이 그려진 면(面)은 손바닥보다 작아, 면면마다 그림을 그린 조각을 구획하는 계선이 필요했는데 여기에는 소뼈가 사용되었다. 지금의 플라스틱과 같은 합성소재가 없었던 당시, 화각은 최고의 공예 재료였던 것이다.

나전칠기를 비롯한 전통 옻 칠기 제작에 있어서도 소뼈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전칠기는 나무로 만든 기형에 조개패로 장식을 한 공예품을 말한다. 조개패를 붙일 때 옻칠을 하여, 결과적으로는 검은색과 조개패의 반짝이는 장식만 겉으로 드러나지만, 옻칠 바탕칠에 ‘골회(骨灰)’를 칠하는 작업이 선행된다. 골회란 ‘뼈를 태운 재’를 말하는 것으로, 옻과 섞어서 칠한다. 칠기는 나무 기형의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칠을 올리기 전에 먼저 직물을 감싸는데, 그 위에 다시 이 골회를 칠해 나무 골의 흠을 메우고, 뒤틀림을 방지하는 작업을 한다.

옻칠에 혼합된 재료로는 골분 외에도 목탄분이나 토분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구하기 어려웠던 골회의 사용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도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골회가 우리나라 나전칠기에 사용된 비교적 두꺼운 조개패를 경화시켜 깔끔하게 고정할 수 있는 고급재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실의 큰 의례가 있을 때 조선왕실에서는 국감을 설치하고 각종 필요한 의례 용구를 제작하기 위해 소의 도살을 명한 기록들을 다수 전한다.  참조:임슬령, 「근대기 骨灰의 재료 변용과 배경」, 『미술사학연구』 305, 2020.3.


기계화된 오늘날, 과거에 소를 재산목록 1호로 꼽던 농가에서도 이제는 ‘일하는 소’의 역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까지 소는 전통생활 방식에서 우리 삶의 터전을 가꾸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또 소가죽, 소뿔, 소뼈, 소 힘줄까지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심신안정을 위한 약재로 알려져 있는 우황은 소의 쓸개에서 꺼낸 담석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는 말이 그저 괜한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보내준 숭고한 희생과 도움에 고마움을 느끼며, 전통 생활 공예품을 소중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김미라(인천항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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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