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에 담은 신라인의 염원과 이상향

1934년 일본인에게 팔려 당시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진 이래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72년 국내로 환수되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에 담은 신라인의 염원과 이상향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막새 중에서 유일하게 손으로 빚은 것으로 당시 우수한 와당기술이 집약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1934년 일본인에게 팔려 당시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진 이래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72년 국내로 환수되었다.


01.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는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



문화재 사랑이라는 한마음으로 이룬 환수의 모범 사례

‘신라의 미소’로 회자되고 있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人面文圓瓦當)는 2018년에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2010호로 지정되었다. 수막새는 목조건물의 처마 끝에 잇는 대표적인 무늬기와로 구름과 연꽃, 인동과 보상화, 용과 봉황, 가릉빈가와 사자 및 귀면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길상과 벽사, 극락 왕생 등을 나타낸다.


얼굴무늬 수막새1는 소박한 미소를 머금은 사람 얼굴 장식의 장이 특이하고, 지붕을 이는 기와로서 처음 보물로 지정되어 그 의의와 가치가 매우 높고 귀중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고가로 구입하여 반출하였다가 광복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온 환수문화재의 모범적인 사례로, 개인 소장가가 아무런 보상 없이 기증한 사연도 주목된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일제강점기에 영묘사지가 위치한 경주 사정동에서 수집되었다. 1934년 공의(公醫)로 경주 야마구치(山口)의원에 근무했던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골동품상에서 고가로 구입하여 애장(愛藏)하게 되었다. 당시 경주분관에 근무한 오사카 긴타로(大坂金太郞)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조선(朝鮮)』에 처음 보는 이 기와를 ‘신라예술의 귀중한 가면와(假面瓦)’로 소개하였고, 교토(京都) 제국대에서 출판한 『신라고와의 연구(新羅古瓦の硏究)』에서는 ‘특이한 인면기와’로 해설을 곁들어 게재하였다. 이후 이 수막새는 일본으로 반출되었고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져 그 행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1972년 2월 박일훈 경주박물관장은 일본 나라(奈良)를 방문해, 경주공립보통학교(현 계림초등학교)에 다녔을 때 스승이었던 오사카 긴타로를 만나 얼굴무늬 수막새의 행방을 물었고 이의 기증을 주선해 주도록 간곡히 부탁하였다. 얼굴무늬 수막새를 소장한 다나카 도시노부는 경주에서 구입한 160여 점의 신라 문화재를 후쿠오카현 기타규슈시립역사박물관에 대부분 기증하였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다행히 박물관의 기증품에서 제외되어 다나카 도시노부의 자택에 수장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경주분관장을 역임한 오사카 긴타로와 박일훈 경주박물관장의 누차에 걸친 지극한 정성과 설득으로, 다나카 도시노부는 마침내 1972년 10월 경주박물관을 방문하여 무상으로 얼굴무늬 수막새를 기증하여 귀환이 무사히 성사되었다. 의사로서 신라 문화재를 수집한 다나카 도시노부와 두 관장 모두 경주 및 신라문화와 깊은 인연을 맺은 순수한 문화재 사랑이 공유되어, 얼굴무늬 수막새가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02.유금와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구려의 복합무늬 수막새

03.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의 수막새



신라인의 염원과 이상향을 담은 명품

얼굴무늬 수막새는 목재 틀에서 찍어낸 후, 얼굴의 각 부위를 손으로 정성스럽게 매만지고 다듬어 완성하였다. 얼굴에는 목리(木理)와 지두 흔적이 약간씩 관찰되며 숙련된 와공의 수준 높은 마무리 솜씨가 돋보인다. 입은 작으나 입술을 오므려 붙여 오묘하고, 두 눈은 눈꺼풀이 두툼하며 눈동자가 깊숙이 묻혀 잔잔한 웃음이 서렸다.


코는 크고 오뚝하여 당차며 두 뺨은 알맞게 살이 올라 자애롭고 넉넉한 모습이다. 우측 하단이 없어졌으나 얼굴 전체가 조화를 이루며 따스한 미소가 번져 신비하다. 가히 신라인의 염원과 이상향을 엿볼 수 있는 명품으로, 수준 높은 예술적 경지를 함축해 후세 사람들의 찬탄을 받을 만하다.


수막새의 테두리인 주연은 목재 틀에서 보축된 자국이 침선(沈線)처럼 남았다. 뒷면 상단은 수키와가 부착된 흔적이 뚜렷하여 실제 지붕에 이어져 사용한 기와임을 알 수 있다. 수막새는 현재 지름이 11.5cm 내외로 작은 규모인데 호국영령을 위무한 사원의 묘당(廟堂)에 이어진 신라의 기와로 추정된다.


얼굴이 장식된 우리나라의 기와는 삼국에서 조선까지 계속 제작되어 사귀를 막는 벽사의 의미를 잘 나타냈다. 고구려의 수막새2는 연꽃과 귀면, 얼굴이 번갈아 장식되었는데 두 얼굴은 입을 벌린 채 근엄한 장수의 모습이다. 경주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신라의 대형치미는 손으로 빚은 자애로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장식이 감입되어 이채롭다.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의 수막새3는 입을 다물고 턱에 수염이 났는데 두 눈은 길쭉하고 양 볼이 도톰하다. 조선시대에는 얼굴이 시문된 막새와 망와가 성행하였다.


구미 수다사의 명부전에 이어진 망와4는 오뚝한 코에 입과 눈, 귀가 음각되었다. 합천 묵와고가의 안채에 이어진 망와5는 고택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이 의장되었는데, 계축(癸丑)의 간지에서 조선 철종 4년(1853)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얼굴무늬 기와는 사귀를 막는 벽사기능을 지녀 귀면과 같이 무섭고 근엄하게 장식되는 것이 기본이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인자한 모습으로 묘사된 것은 한국인의 따스한 심성이 잘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04.구미 수다사에 소장되어 있는 얼굴무늬 망와     05.합천 묵와고가의 얼굴무늬 망와



잔잔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미소를 지닌 얼굴무늬 수막새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규모가 크지 않은 작은 기와로 눈과 입, 코와 두 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사람 얼굴은 대개 귀면과 같이 사귀를 막는 벽사를 상징하여 얼굴을 찡그리거나 근엄한 모습으로 의장되는데, 얼굴무늬 수막새는 눈을 감고 미소 짓는 소박한 모습에서 포근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돌아온 문화유산으로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우리에게 아픈 역사와 문화재 사랑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수많은 문화유산의 도굴과 해외 반출을 교훈삼아, 우리 문화유산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문화재 사랑을 다짐해 볼 만하다. 경주에 가면 경주박물관 전시실에 들러 얼굴무늬 수막새를 들여다보면서 환수문화재의 모범적 사례인 세 사람의 인연을 되새겨, 따스한 ‘신라의 미소’를 느끼고 훈훈한 문화재 사랑에 젖는 것도 뜻깊은 여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사진자료. 김성구(전 국립경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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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