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은 노승대 작가의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가 선정

“한국문화의 뿌리는 삼신사상”…‘불교와의 만남’ 조명한 40년 동안 문화답사 경력 가진
지필 노승대 작가

제17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은 노승대 작가의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가 선정됐다.
불교출판문화상 대상 수상작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출간

“한국문화의 뿌리는 삼신사상”…‘불교와의 만남’ 조명한 40년 동안 문화답사 경력 가진
지필 노승대 작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과 불교출판문화협회는 지난 11일 불교출판인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불교출판문화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올해의 불서 10종을 선정, 불교출판문화상을 시상하고 있다.

올해 17번째로 진행되는 불교출판문화상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8월 말까지 1년 동안 국내에서 초판 발행된 불교관련 도서 중 총 38개 출판사에서 접수한 83종을 대상으로 심사해 선정됐다. 대상에는 노승대 작가의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가 선정됐다.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작으로 선정된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노승대 지음/불광출판사)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불교 사찰에 숨겨진 여러 이야기들을 보따리 풀듯 소개한다. 그는 현판 뒤에 숨겨진 돼지와 문고리에 붙은 도깨비, 법당을 떠받치는 거북이, 등에서 우리 민족의 흔적을 더듬는다. 따라서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는 게, 수달, 돼지, 도깨비, 야차, 삼신할미, 신선 등 사찰 구석구석 숨어있는 수많은 상징물을 조명하는 책이다. 노승대 저자는 40여 년의 문화답사 노하우를 살려 풍부한 도판과 함께 불교경전과 역사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풀어냈다.

이 책은 40년의 문화답사 경력을 가진 저자가 현판 뒤에 몰래 숨겨진 돼지, 사천왕 밑에 깔린 도깨비, 부도 안에 새겨진 전설의 새 가릉빈가, 절 뒤편 은밀한 전각 안에 있는 삼신할미 등 사찰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지만 그 의미가 남다른, 사찰 곳곳에 가지가지 사연을 갖고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상상과 전설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찰 곳곳에 다양한 사연을 갖고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상상과 전설의 주인공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자 다른 사연을 풀어주고자 때론 불교경전이 동원되고 때론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가 등장하며 때론 다른 종교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이 땅까지 온 것도 있으니 당연히 역사와 지역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 차 있다.

시상식은 다음 달 4일 오후 4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 공연장에서 진행되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수상자만 참석한다.

고래(古來)로 우리 한민족에게 ‘3’은 특별한 숫자였다. 전통 음악에서 말하는 삼박자, 전통 무예 택견의 품(品)밟기와 씨름의 삼세판, 서원(書院)의 대문이나 왕릉에 새겨진 삼태극은 물론, 한글 창제의 원리도 하늘(天)·땅(地)·사람(人)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음양론을 따르고 짝수를 길수(吉數)로 여기는 중국, 일본과 구분되는 한민족만의 특징이다.
이와 관련, 최근 제17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을 수상한 노승대(70) 작가는 “흔히 아기는 삼신(三神)할미의 점지를 받아 태어난다고 하지 않나. 이 ‘삼신사상’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만 있는 삼존불(三尊佛)이 대표적이다.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가 우리 문화와 만나서 고유의 특색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째,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반야용선(般若龍船) 개념 때문이다. 사찰이나 전각을 생사고해를 넘어 피안의 정토에 이르게 하는 배로 본 것이다. 사찰이나 전각이 배가 되니 주변은 온통 바다다. 바다에 수중생물이 없을 수 없다. 물고기, 거북은 물론 아예 절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게, 가재 등이 등장한다.

둘째, 민화(民畵)의 유행 때문이다. 민화가 절집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19세기부터다. 그전까지 사찰 벽에는 주로 불교와 관련 있는 그림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민화의 유행으로 사찰 벽에 불교 교리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동물과 식물들이 등장한다. 게다가 민화에는 일반 백성들의 염원을 담은 그림들이 많았으니 피폐해져가는 사찰에 사람을 끌어 모으는 데도 일조했을 것이다. 넝쿨이 풍성한 포도 그림(다산), 갈대를 꽉 부여잡은 게 그림(과거 합격) 등이 그렇고, 달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 그림이나 거북이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토끼 조각, 삼국지 이야기를 그린 그림 등이 그렇다. 물론 민화의 사찰 유입은 민간과 사찰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던 것과 궤를 같이한다.

셋째, 사회적 분위기나 사건 때문이다. 임진왜란 등 전쟁으로 목조 건물인 사찰이 불에 타고 역질로 한해에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이 죽어나가던 현실은 사찰의 그림이나 조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달이나 해태 그리고 심지어는 돼지까지도 화마 방지를 위해 절에 세워두었다. 사찰에 장승이 등장하는 시기도 전염병의 창궐과 정확히 시기가 일치한다. 아예 전각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시왕전과 지장전은 전쟁과 역질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아예 명부전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지고 원인도 모른 채 죽었거나 혹은 무주고혼인 사람들을 위로하게 된다. 바람이 있으니 종교는 당연히 ‘응대’해야 했을 것이다.

넷째, 다른 종교나 민간신앙의 영향 때문이다. 도깨비나 삼신할미처럼 우리 민족 고유의 민간신앙에 영향을 받은 그림이나 조각들도 있고 유교의 영향을 받아 매란국죽(梅蘭菊竹)도 사찰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또 도교의 영향을 받아 중국의 팔선(八仙)이 사찰 곳곳에 그려지기도 했다. 불교 입장에서는 낯설지만 순례객이나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흥미롭다.

●“삼신사상, 한국불교에 영향”
사찰에서 민족의 뿌리를 찾는 이런 독특한 접근 방식은 노승대 작가가 살아온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던 1975년 출가해 불광사의 광덕 스님(1927∼1999)을 모셨고, 10여년 수행한 후 환속해 구도(求道)의 길에서는 내려왔으나 그 길에서 찾았던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은 내려놓지 않았다.


▲ 노승대 작가는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에 한민족 전통과 풍습이 더해져 우리만의 특색 있는 불교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출처= 불광미디어



이는 “인도라는 같은 뿌리를 두었음에도 한국 불교가 중국, 일본과 달라진 근거”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노 작가는 “전국 각지 불상이 있는 곳들을 잘 살펴보면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복을 바라거나 무속행위를 벌이던 신앙의 공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유입되고 난 뒤 바로 그 자리에 불상들이 세워진 것인데, 이는 거꾸로 불교 유산에서 고대 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노 작가는 불가에서 생사(生死)를 넘어 피안의 정토(淨土)에 이르게 한다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의 은유로 사찰을 읽기도 한다. 법당을 커다란 배로 본다면 배에 타는 중생들의 삶과 문화, 이를테면 삼신사상이나 거기에 영향을 받은 유교나 도교 전통이 묻어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노 작가는 “조자용 선생님은 늘 ‘책상머리에서 글 쓰지 말라’고 하셨다. 저는 그 말을 지금도 되새기고 있다. 직접 보면 분명 느끼는 바가 다르다. 책을 다 읽었다면 전북 완주 화암사와 충북 괴산 각연사를 한번 가보라. 분명 더 많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우리 전통문화의 정취도 물씬 느껴질 것이다”고 말했다.

●저자 노승대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했다. 1975년 출가해 광덕 스님을 은사로 모셨으며 10여 년 뒤 환속했다. 구도의 길에서는 내려왔으나 그 길에서 찾았던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은 내려놓지 않았다. 에밀레박물관 조자용 관장에게 사사하며, 그가 별세할 때까지 18년간 모셨다.

1993년부터 문화답사모임 ‘바라밀문화기행’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인사동 문화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다. 인사동 문화학교 졸업생 모임인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회원들과도 전국 문화답사를 다니고 있다. 그는 가족 같은 동호인들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공부하는 것을 금생의 의무라 생각하고 지금도 항상 길 위에 있다. 답사 틈틈이 ‘사람과 산’, ‘월간 불광’, ‘템플스테이’ 등에 우리 문화와 관련된 글을 기고하여 왔으며 『바위로 배우는 우리문화』(무한, 1999)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일부인용 / 문윤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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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