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공동체 문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공동체 문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공동체 문화 ‘콩알 한 개라도 나누어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눔’을 중시했던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잘 드러내는 속담이다. 새삼스럽게 ‘나눔’의 의미가 다시 강조되어야 할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그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한국인 전통의 공동체적 삶

한국 근현대 100년 민중의 삶에서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나눔’의 장치인 공동체 문화가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인 전래의 삶은 공동체적 삶, 그 자체였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 늘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고, 노동력이 부족한 여건은 민중으로 하여금 서로 돕고 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힘들게 만들었다.

 

여성의 삶을 보자. 여성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길쌈이었다. 길쌈은 단조롭고도 지겨운 일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동으로 길쌈하는 것을 두레길쌈·삼두레라 불렀다. 늦은 여름밤이나 겨울에 마을 여자들이 한자리에서 길쌈을 하노라면 우스갯소리도 하게 되고 길쌈노래도 부르며 신세 한탄을 겸해 일의 고달픔을 덜어보는 것이다. 주인집에서는 정성으로 차린 음식을 내와 여흥을 돋우어 주고 일의 신명을 추켜세워 준다. 내것 네것 없이 음식을 나누던 공동체적 삶의 전형이다.

 

남자들의 두레는 어떤가. 신농유업(神農遺業) 혹은 농자천하지 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쓴 두레기가 휘날리며 마지막 세벌 김매기를 매노라면 농민들은 신명이 솟구쳤다. 논둑을 따라 큰애기(큰아기)가 점심 바구니를 내오는 옷자락이 보일라치면 총각들은 신바람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꽹과리를 잡은 상쇠도 신명에 어깨춤을 덩실거리고 “저기 오는 저 처자야, 속눈만 뜨고서 날만을 보누나.”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일과 놀이가 함께 갔던 두레의 옛 모습이다.

 

 

공동체 정신으로 함께한 노동의 의미

김매기를 공동으로 해나갔음은 물론이고 많은 장정의 밥을 해먹이려고 여성들이 총동원되어 참을 꾸렸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나눔의 밥상공동체’라고도 표현한다. 농민들은 항시 서로 돕고 사는 생활 속에서 두레·황두·소겨리·품앗이·수눌음·접·계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생활을 꾸려 왔다. 계도 본래 취지는 공동체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조금씩 돈이나 포목을 모아 두었다가 돌아가면서 어려운 일에 썼던 데서 계가 시작되었다.

 

장례나 혼례는 예나 지금이나 집안의 가장 큰 일이며, 마을에서는 공동으로 혼·상구를 장만했다. 상엿집이 있었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가마가 하나쯤은 마을마다 있었다. 큰일이 닥치면 술, 쌀 등을 들고 와서 공동으로 거들었다. 상여메기는 남자들이 총동원되어 합심하여 대처했으며, 무덤을 만들고 달구질을 하는 일도 공동 대처였다. 혼례식은 그 자체가 동네 축제였다. 마을주민이 모두 모여서 음식을 준비하고 그야말로 잔치를 열었다.

 

일반적으로 간단한 노동은 품앗이로 해결했다. 품앗이란 ‘품(노동력)을 앗이(교환)한다.’라는 뜻이니 돌아가면서 일을 도모했다. 가령 겨울철 김장도 품앗이로 돌아가면서 해결했고, 새 볏짚으로 지붕을 이는 일도 품앗이로 했다. 제주도에서는 ‘수눌음’이라고 하여, ‘수눌어 간다.’라는 말은 함께해 나감을 뜻했다. 이처럼 공동체적 노동 관행을 의미하는 뜻이 너무도 많아 모두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더불어 삶’을 통한 공동체 정신의 계승

한국사회는 근현대 100여 년간 급변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민족 지배라는 압제 속에 공동체적 가치관이 급격히 무너졌다. 6·25전쟁은 삶의 뿌리를 뒤흔들었으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1960년대 이래 산업화는 서구적 삶의 양식을 급격히 이식시켰다. 개인주의의 발흥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측면도 많으나, 반면에 공동체적 삶이 급격히 와해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발전을 도모하기보다는 천민자본주의로 상징되는 황금적 가치관은 ‘나눔’이란 말 자체를 우습게 만들었다.

 

건강해진 공동체는 자신들에게도 되돌아간다. 나눔이 정착된 사회는 그야말로 건강한 사회다.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한국인의 삶 속에서 강인하게 전승되는 공동체의 DNA를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면서도 공동체적 ‘더불어 삶’이 공유되는 한국 사회의 균형 잡힌 미래를 꿈꾸어 본다.  출처: 글.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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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