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길에서 배우는 인문학

특별기고

 

옛 길에서 배우는 인문학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옛 사람들이 살아왔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삶터를 이어주는 혈맥이 

 '길'이다.  골목길, 모종길, 돌담길, 산비탈길. 논두렁길 같은 모습대로 이름지어진 길이 있

 다.  또 옛 묵객들의 유람길, 선비들의 유배길, 유생들의 과거길, 산과 들을 찾는 산책과 등

 반길. 전쟁 작전 길. 이동과 교역의 항로와 철길 등 목적과 인물, 스토리를 갖고 생겨난 수많은 길들이 중첩되어 있다.  다양한 길 중에서 옛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답사 길은 늘 설레인다.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의 멋과 맛을 제대로 할려면 월품산의 누릿재(黃峙)길과 풀치(草峙)길을 넘어 강진만을 둘러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월출산 누릿재 길은 해남, 완도, 강진 사람들이 광주와 서울로 가기 위해 넘어야했던 험난한 고갯길이었다.

“무리 산봉우리는 바위가 우뚝우뚝 /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 / 월남리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말게 / 봉우리 봉우리가 어쩌면 그리 도봉산 같아.”

월출산을 넘어 강진 땅으로 들어서던 다산 정약용은 유배길의 정회를 시로 읊었다.

 

남도의 인문학 길로 손꼽히는 '다산유배길'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고갯길을 넘다보면 만덕산 비탈길 주변 에 야생 차나무가 지천에 널려있고, 강진만의 푸른 물은 눈부신 아름다음으로 다가온다.  초당 뒷산에 올라 흑산도로 유배 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는 다산의 심정이 되어 보기도 하고, 고개를 돌려 강진만의 가우도와 청자의 고장 대구, 마량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해안 드라이브 길을 건너다본다.

 

옹기로 유명한 칠량은 민주열사 윤한봉이 나서 자란 곳이고,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 18년 중 10년을 보내면서 집필과 제자교육, 단절되었던 조선 차 문화를 부활시키고 전파한 공간이다.  초당이 자리한 만덕산은 차나무가 많아서 다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그의 호 다산(茶山) 도 여기서 유래한다.  이 길들은 정약용과 윤한봉, 남도 사람을 닮은 소박한 옹기 제작소들이 있어. 아름다음을 넘어선 감동으로 다가오는 문화의 길이다.

조선시대 과거급제를 꿈꾸며 지나던 문경새재는 대표적인 선비 과거길이다.  ‘경사로운 소식을 듣다'는 문경(聞慶)이란 이름처럼 급제를 바라는 선비들의 청운의 고갯길이었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무제와 장건이 개척한 동서 문화의 교류로 실크로드가 있었다면, 몽골 제국이 역사에 남긴 가장 큰 길 개척의 업적은 유라시아의 광활한 영토를 거미줄처럼 연결한 역참제도라 할 수 있다. 일정한 지역마다 역참을 설치해 그곳에 사람과 말(馬)을 함께 두고, 전해온 소식을 다시 이웃 역참에 전하도록 한 것은 동서문화 교류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우리말 역마살(驛馬煞)의 어원은 역참에 둔 말이 타는 사람을 따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데서 생겼고, 또 '한참'이란 말도 역참과 역참사이의 거리를 한참이라 한 데서 유래한다.

 

옛날 길손들은 어던 곳에서 쉬어 갔을까?  옛 숙박시설로는 객사(客舍), 사찰(寺刹). 원(院) , 사랑방 주막 등이 있었다.  객사는 임금께 예를 올리는 고유의 목적도 있었지만, 고위관료들이 이용하는 숙소이기도 했다.  호남에서는 전주의 풍패지관, 나주의 금성관 등이 대표적이다.

사찰은 공식 숙박시설은 아니었지만, 양반들이 여행중 이용하기도 했다.  원은 불교에서 유래된 시설로 사찰로 들어가는 길목 요충지에 설치되어 순례하는 승려와 재가 신도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행려병자 치료, 빈민구제사업, 물물 교역과 여론과 정보의 수집 등 다양한 역할도 맡았다.  오늘날 황해도 사리원, 세종시 조치원, 경기도 이천 장호원, 경북 안동제비원, 충남 예산 신례원 ,전남 나주 고막원 등으로 지금은 지명으로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서민들이 가장 쉽게 쉬어 갈 수 있는 곳은 주막이고,  사랑채는 양반 사대부들의 숙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살아가다 무슨 일이 안 풀리거나 방법이 없어 답답할 때 길이 안 보인다고 한다.  혹 칠흑같이 어두운 길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은 길을 찾아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가 살아가는 길,  걸어가는 길 중에 중요하지 않은 길은 없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뒷사람의 길이 되느니라"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 백범 김구 선생께서 즐겨 애송하셨던 글귀다.  가슴에 새기며 살아갈 일이다.  지난 한 해 동안 걸어온 길이 꽉 막혀 더딘 길이었다면, 다가오는 2020의 새해는 시원하게 뚫린 희망의 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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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