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수탈의 상처 간직한 천년의 숲길 봉곡사

일제수탈의 상처 간직한 천년의 숲길 봉곡사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봉곡사

‘천년의 숲길’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봉곡사까지의 700m의 길을 천년의 숲길이라고 부른다.  이 길 좌우에는 100여 년을 훌쩍 넘긴 소나무 수백 그루가 늘어서 있다. 높이 20여m의 소나무 그늘은 터널이 되어 한여름 운치와 솔향기로 가득하다. 

 

 

 

 

 

 

 

 

700m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 사찰이 나오고, 고즈넉이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산사의 바람소리가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곳 바로, 만공선사가 을미년(1895년)7월에 법계성을 깨닫고 오도송을 읊은 불교 성지로 유명한 봉곡사는 아산시 송악면의 남단 봉수산의 동북 계곡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인 고찰로서 약수와 15m 높이의 향나무 및 주위에 울창한 송림 등이 유명하다.

 

봉곡사는 석축을 쌓아서 산비탈을 평지로 만들었다

 

사찰입구 안내판에 신라51대 진성여왕 원년(887년) 2월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18대 의종(1170년)때에 보조국사가 중창했으며 세종조(1419년)에 함허대사가 삼창하였는데, 이 때는 상암, 벽련암, 보명암, 태화암 등의 암자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 본전과 여섯 암자가 폐허된 것을 인조24년(1647년) 다시 중창하고 정조18년(1794년) 중수하여 봉곡사라 개칭했다.  고종7년(1891년)에 서봉화상이 법당 및 요사를 중수 현존한다.  계곡을 앞에 두고 800여평의 사역을 조성하였는데 대웅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제323호)과 향각전은 나란히 동향에 있고 그 북쪽으로 "ㅁ자형"의 큰 요사체가 있다.  요사 뒷편에 지대를 낮추어 측간과 허드레광이 마련되고, 사역 입구에서 남쪽 둔덕 위에 삼성각이 있다. 향각전과 삼성각은 근년에 세워진 반면 대웅전과 요사는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의 구조를 간직하고 있어 1891년 서봉화상에 의한 중수 기록과 걸맞은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로는 사보(寺寶)로 소장되어 있는 『영가집(永嘉集)』 외에는 두드러진 것이 없다.  그러나 대웅전 안의 후불탱화는 그 유래가 특이하여 주목된다.  세로 75㎝, 가로 43㎝인 이 관음탱화(觀音幀畵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2호)는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원래 이 절에 봉안되어 있던 것이었는데, 1909년에 이 절에 있던 병든 승려가 약을 준 일본인에게 완쾌된 뒤 선물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1958년 4월 5일 구원회(具沅會)가 일본에서 이 불화를 가져와 다시 봉안했는데, 그 유래가 불화갑(佛畫匣) 뚜껑에 쓰여 있다.

 

 

 

소나무 사이사이 세워진 돌탑은 이 길을 지나는 이들의 사연을 말하고, 여름나기가 한창인 각종 야생화는 이바위 저바위구석에서, 상처로 얼룩진 소나무 그늘에서 한창 미모들을 뽐내고 있다.  이곳 소나무들은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가 패망 직전 부족한 연료를 송진으로 대체하기 위해 이 곳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소나무허리에  V자로 상처를 내어 송진을 채취했던 그때의 상처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민감한 이 시기에  깊게 상처 난 소나무를 바라보는 심정이 무척이나 답답하고 착잡하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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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