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찰문제에 대해서

神札問題について
宗門は、日蓮大聖人の仏法を護(まも)り、個々の信徒を無用の軋轢(あつれき)から守るために、軍部の強制による「天照太神(てんしょうだいじん)」と書かれた紙を、受け取ることをやむなく容認したこともありました。創価学会でもこのとき、戸田理事長(のちの第二代会長)の名をもって「通諜(つうちょう)」を出し、
「学会の精神たる天皇中心主義の原理を会得し、誤りなき指導をなすこと(中略)皇大神宮の御札は粗末に取り扱はざる様敬神崇祖の念とこれを混同して、不敬の取り扱いなき様充分注意すること」(昭和18年6月25日付)
と、神札を粗末(そまつ)に扱わないよう、会員に通知しています。

また創価学会は、「宗門は戦時中、大石寺に神札を祀(まつ)るという謗法を犯した」といっていますが、これについて第六十六世日達(にったつ)上人は、
「総本山において、天照大神のお札を貼ったことは一度もありません。(中略)別に我々がその天照大神のお札を拝(おが)んだことなどありもしない。また、実際その中(軍部が強制的に使用していた書院)へ入って見たこともない。入れてくれもしない。まあ借家(しゃくや)同然で、借家として貸したんだから向こうの権利である。そういうような状態であって、決して我々が天照大神のお札を祭(まつ)ったとか、拝んだとかいうことは、事実無根であります」(達全2-5-607頁)
と仰せられています。

戦争という異常な状況のなかで、当時の御法主上人および僧俗の苦労によって本門戒壇の大御本尊と唯授一人(ゆいじゅいちにん)の血脈(けちみゃく)は護られ、その後の宗門・学会の発展につながったのです。
創価学会は、自分たちの行為を棚(たな)に上げて、あたかも宗門が戦争に協力し、謗法を容認したかのように主張していますが、これは宗門を貶(おとし)めるための悪宣伝であり、卑劣(ひれつ)きわまりない言動というべきです。


신찰 문제에 대해서
종문은 니치렌 다이쇼인의 불법을 보호(얼마)리, 개개의 신도를 무용의 알력에서 지키기 위해서 군부의 강제에 의한 "아마테라스 오가(응 조금 다이지은)"라고 적힌 종이를 받는 것을 부득이 허락한 것도 있었습니다. 창가 학회에서도 이 때, 토다 이사장(후일의 두대 회장)의 이름을 가지고"통첩(츠우 초)"을 내고
"학회의 정신인 천황 중심 주의의 원리를 터득하고 오류 없는 지도를 이루는 것(중략)황대신궁에 모신 어찰첩은 함부로 취하급은 바구니님 경신 숭조.심과 이를 혼동하고, 불경한 취급 없는 거 충분히 주의할 것"(쇼와 18년 6월 25일자)
과 신찰을 경시(.)에 다루지 않도록 회원에 통지했습니다.

또 창가 학회는 "종문은 전시 중 대마사에 신찰을 모시겠습니다(주말) 있다고 하는 방법을 저지른 "이라고 말하고있습니다만, 이에 대해서 제예순 여섯세 일달(에 있는)스님은
"총본산에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부적을 붙인 것은 한번도 없어요.(중략)별로 우리가 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돈을 배(이) 있는 것이 있지도 않은. 또 실제 그 중(군부가 강제적으로 사용하던 서원)에 들어 본 적이 없다. 넣어 주시기도 하지 않는다. 음 셋집(시야크야)수준으로 전세로 빌렸으니 저쪽의 권리이다. 그런 상태이지 우리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부적을 축제(주말),다거나 보다라는 것은 사실 무근입니다"(달전 2-5-607쪽)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이상한 상황에서 당시의 법주 상인 및 승속의 노고에 의해서 본문 계를 받는 단 대, 본존과 유수 혼자 해시 유 일원)의 혈맥(트집 미야크)은 보호한 뒤의 종문·학회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창가 학회는 자신들의 행위를 선반(선반)에 올리고 마치 종문이 전쟁에 협력하고 방법을 용인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종문을 실추시키기 위한 흑색 선전이다 야비(히레츠)기 짝이 없는 처사라고 합니다.


자료출처 : http://www.correct-religion.com/pages/souka07-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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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