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戦争協力について
第二次世界大戦中は、「国家総動員」の名のもとに、日本の国全体が戦争体制へと組み込まれていった時代でした。信教(しんきょう)の自由が抑圧(よくあつ)され、言論が厳しく統制されていた状況のなかで、当時の宗門僧侶は、日蓮大聖人の仏法の根本である本門戒壇(ほんもんかいだん)の大御本尊と唯授一人(ゆいじゅいちにん)の血脈(けちみゃく)を厳護(げんご)するため、筆舌(ひつぜつ)に尽くしがたい苦労をしました。
戦争は本来、「兵革(ひょうかく)の災(わざわ)い」すなわち悪(あ)しき不幸な状態であり、一国謗法の現証であることは日蓮大聖人の御教示に明らかです。ですから、日蓮正宗がこのような戦争に積極的に加担することは絶対にないのです。
しかし、宗門の存続をも脅(おびや)かす強大な軍部の圧力のもとに、宗門の僧俗は、教義的な謗法や逸脱(いつだつ)を犯さない限りにおいて、金属類の供出、徴兵(ちょうへい)、軍隊への境内地(けいだいち)の供用(きょうよう)、国家への奉仕などに協力せざるを得ませんでした。
また、総本山大石寺を守るうえから、一国の滅亡を避ける意味で、日本国の戦勝祈願を行ったこともありました。これも宗門が、戦争そのものに積極的に協力した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
当時の創価教育学会の出版物の中には、
「いまや、皇国(こうこく)日本か北はアリューウシャン群島方面より遙(はる)かに太平洋の真中を貫き、南はソロモン群島附近(ふきん)にまで及び、更に南洋諸島を経て、西は印度洋(いんどよう)からビルマ支那大陸に、将又蒙彊満州(はたまたもうきょうまんしゅう)に至るの広大なる戦域に亘(わた)り、赫々(かくかく)たる戦果を挙(あ)げ、真(まこと)に聖戦の目的を完遂(かんすい)せんとして老若男女を問はず、第一線に立つ者も、銃後(じゅうご)に在(あ)る者も、いまは恐(おそら)くが戦場精神によって一丸(いちがん)となり、只管(ひたすら)に目的達成に邁進(まいしん)しつゝあることは、すでに皆様熟知されるところである」(大善生活実証録・48頁)
と、日本軍の戦果を賞賛する言辞(げんじ)が見られます。
今になって創価学会は、「学会こそ、首尾一貫(しゅびいっかん)して戦争反対を唱えてきた」「牧口・戸田両会長は、戦争反対を唱えて投獄(とうごく)された」などと会員に吹聴(ふいちょう)していますが、これはまったくのデタラメです。なぜならば、戦争中の創価教育学会が戦争反対を表明したという証拠は何一つありませんし、牧口・戸田両会長が投獄されたのは、戦争に反対したからではなく、当時の「不敬罪(ふけいざい)」によるものだからです。
전쟁 협력에 대해서
제이차 세계 대전 중에는 "국가 총 동원"의 이름으로, 일본 전체가 전쟁 체제로 편입되어 가던 때였지요. 종교(신 오늘)의 자유가 억압(요크아츠되고 언론이 엄격히 통제된 상황에서 당시 종문 스님은 니치렌 다이쇼인의 불법의 근본인 본문 계를 받는 단(호은모은 단계)미사 본존과 유수 혼자 해시 유 일원)의 혈맥(트집 미야크)을 엄 마모루(언어) 하므로 필설(필설로 다할 수 없다 고생을 했습니다.
전쟁은 본래"병혁(평가)신기의 재앙(재주죠)이"즉 악(아) 불행한 상태이며, 일국 방법의 현 증거임은 니치렌 다이쇼인의 교시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일련 정종이 이런 전쟁에 적극 가담하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나 종문의 존속도 협 띠.)다. 막강한 군부의 압력 아래, 종문의 승속은 교리적인 방법과 일탈(언제다)을 저지르지 않는 한에서 금속류의 공출, 징병(나비 담)군 경내지(케이 다이치)의 공용(오늘 것), 국가에 대한 봉사 등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총 본산 오이시절을 지키는 데에서 한 나라의 멸망을 피하다 의미로 일본의 전승 기원한 것도 있었습니다. 이것도 종문이 전쟁 자체에 적극 협력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시 창가 교육 학회의 출판물 가운데는
"이제 황국(광고)일본이나 북쪽은 아류ー우샤은 군도 방면에서 아득하다(봄)에 태평양 한가운데를 지나 남쪽은 솔로몬 군도 부근(행주)까지 및 다시 남양 제도를 거치고 서쪽으로 인도 양(인과 도요우)에서 버마 중국 대륙에, 혹은 몽강 만주(혹은 이제 키요우마은 주)에 이르는 것 광대한 전역에 거쳐(제)리, 밝고 찬란한 모양( 이었다)인 전과를 행동(아)찌개, 진정(진심)성전의 목적을 완수(카은스이)직면해서 남녀노소를 문하 않고 제일선에 서는 사람도 후방(지유우고)에 자이(아)의 사람도 지금은 가공(하늘)쿠를 전장 정신에 의해서 덩어리(한 암)로 오로지(오직)에 목적 달성에 매진하는 츠ゝ 있는 것은 이미 모두 숙지할 것이다"(다이젠 생활 실증록·48쪽)
과 일본군의 전과를 칭찬하는 언사(게은지)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와서 창가 학회는 "학회에 시종 일관(시종 이쯔카은) 하고 전쟁 반대를 부르짖어 왔다""마키 구치·토다 두 회장은 전쟁 반대를 제기하고 투옥(토우고크) 된 "등과 회원에 퍼뜨린다(후 은행 나무) 하고 있는데, 이는 전혀 엉터리에요. 왜냐하면 전쟁 중인 창가 교육 학회가 전쟁 반대를 표명했다는 증거는 무엇 하나 없고, 마키 구치·토다 두 회장이 투옥된 것은 전쟁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괘씸죄(후 경제)"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료출처 : http://www.correct-religion.com/pages/souka07-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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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