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를 중심으로 생계를 꾸려온 농부들에게 물관리는 필수적인 농업 활동이다. 물관리를 잘못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고 생계에 크게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의성 ‘못’ 농업유산에 담긴 물관리 전통지식
벼농사를 중심으로 생계를 꾸려온 농부들에게 물관리는 필수적인 농업 활동이다. 물관리를 잘못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고 생계에 크게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농업은 기본적으로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농부들은 이렇게 자연에 의존하면서도 지역 환경에 적합한 관개시설을 고안하고 끊임없이 혁신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낸 특별한 가치를 계승해 왔다.
의성군 금성산 일대의 못 Ⓒ국립농업과학원
경북 의성군 금성산 일대에는 1,500여 개의 못이 축조돼 있다. 언제 축조됐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못이 남아 있어 그 역사를 대변한다. 또한 고려 공민왕 때(1359년) 이곳에 오래된 못이 있으니 보수하여 가뭄에 대비할 것을 왕에게 청한 기록이 있고, 이 지역 농부들은 『조선왕조실록』 태조 시기(1395년) 기록된 전통 방식의 못 축조기술과 관개체계를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못 축조의 목적은 농업용수 저장과 공급이다. 금성산 자락에는 고지대에서부터 ‘할아버지못’, ‘아버지못’, ‘아들못’, ‘손자못’으로 불리는 못이 골짜기를 따라 연속해서 이어진다. 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지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못의 크기는 골짜기의 넓이에 비례하는데, 고지대일수록 크기가 작고 저지대일수록 커진다. 못은 둑 쌓기와 배수관(수통) 설치 과정을 거쳐 축조된다.
먼저 물을 가둘 둑의 위치를 정하고 암반층이 나올 때까지 판 후 입자가 고운 찰흙을 다져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한다. 그런 다음 물이 논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통나무 속을 파낸 ‘아랫수통’을 놓고 다시 찰흙을 다져 쌓는다. 둑의 모양이 만들어지면 ‘윗수통’을 둑의 기울기에 맞춰 비스듬히 눕힌 다음 아랫수통과 연결한다. 위아래로 수통을 연결한 후에는 윗수통이 고정되도록 찰흙을 다져 쌓고 단계적으로 물이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 개의 구멍을 뚫는다. 이런 방식은 13~17세기에 간행된 여러 고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농업용수 공급은 윗수통에 박아놓은 어른 팔뚝만 한 ‘못종’으로 조절한다. 못종을 빼내면 수면에서부터 물이 흘러 들어가 아랫수통을 거쳐 논에 관개한다. 못종은 못의 크기와 둑의 높이에 따라 5개에서 15개 정도 설치한다. 이 같은 관개 방식은 정교한 용수공급뿐만 아니라 논물과 수온이 같은 수면의 물부터 논에 관개하여 벼의 냉해를 방지한다. 실제로 한여름 못의 수면과 수심의 수온은 10℃가량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01. 못 둑에 설치된 수통과 못 종 ⓒ국립농업과학원
02. 논에 처음 관개할 때 지내는 못 제 Ⓒ국립농업과학원
03 .못 종을 빼내는 못 도감 Ⓒ국립농업과학원
이 지역 농부들은 효율적인 물 관리와 공평한 분배를 위해 수리계(몽리계)를 조직하여 엄격하게 운영해 왔다. 시설관리와 물 분배는 ‘못 도감’이 총괄한다. 도감은 못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못 제’를 주관하고, 보수나 제초가 필요하면 이용자를 불러 모아 공동으로 작업한다. 이용자 간에 물 분쟁이 발생하면 중재자가 된다. 그 보답으로 이용자들은 추수가 끝나면 일정량의 곡식이나 현금을 지불한다.
이곳 농부들은 무형유산의 가치도 다양하게 전승 해오고 있다. 못둑의 흙을 다지면서 부르는 터다짐소리(망깨소리)를 전승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못물을 처음으로 논에 관개할 때 지내는 ‘못제’를 복원했다. 30여 년 전까지는 기우제와 풍작을 기원하는 농경의례가 성행했다. 이런 문화적 관행을 유지해 온 농부들은 현대식 관개시설의 도입과 무관하게 여전히 전통 물관리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다. 2018년 국가중요농업유산, 2020년 비정부 간 국제단체인 세계관개배수위원회(ICID)의 세계관개시설유산(WHIS)으로도 선정됐다. 우리 농부들이 전승한 전통 물관리는 화석연료, 전기 같은 에너지 투입이 거의 필요하지 않으면서 자원의 순환과 재활용을 가능하게 해 탄소중립 실천에도 효과적이다. 이런 전통기술은 우리의 소중한 국가유산이라 할 수 있다. 글 정명철(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촌환경안전과)
자료 지역상생과 자연유산 보호관리 고도화를 위한 정부-지자체 협의체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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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