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創価教育学会は反戦団体」の虚偽
昨今、地方ローカル局が「教育は子どもの幸福のために~牧口常三郎が目指したもの~」なる特別番組を相次いで放送している。「聖教新聞」によればその内容は「番組では、軍国主義の中、『国家のため』ではなく『子どもの幸福のため』の教育を目指した牧口初代会長の生涯と思想を紹介。当時から半世紀以上を経た今、ブラジルなど国内外で、その教育学説が評価され、実践される模様を伝えた」(二・二六付け)というもので、創価教育学会の会長である牧口を、「子どもの幸福を最第一と考える教育界の偉人」と宣揚する内容となっているようだ。
こうした動きと連動するかのように、創価学会の外郭(直営)出版社である第三文明社や潮出版社からも牧口を「軍国主義に抗った偉人」「子どもの幸福を第一とした教育界の偉人」だとアピールするいわゆる「ちょうちん本」が出されている。
だが、牧口が軍国主義に抗い、「国家」よりも「個」である「子どもの幸福を最第一」とする教育者であったかといえば、決してそんなことはない。
なぜなら牧口は、その教育方法に特殊な着想はもっていたものの、国家、軍国主義体制との関係で言えば、「忠君愛国」「盡忠報国」を子どもに植え付けることを推進する体制迎合の一般的な教育者に過ぎなかったからである。
実例をあげよう。牧口は二・二六事件のあった昭和十一年に、「『光瑞縦横談』と教育・宗教革命」という論文を執筆しているが、そこで文部省が教育現場において「軍事教練」を義務づけたことを、「大でき」だと次のように高く評価している事実がある。
「最近、文部省が軍事訓練を課したるは、近ごろの大できである。……何という、今の非常国家に適切の忠告であろう」
また、これに先立つ大正元年には、「教授の統合中心としての郷土科研究」という論文の中で、子どもに「忠君愛国」「盡忠報国」の概念を徹底してたたき込むべきだとこう主張している。
「わが国においては国および国の首長たる天皇は、まったく同心一体と申すべきで、君に忠を尽くすのはすなわち国を愛する所以であるということを十分子供に了解させてお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ここには「国」に優先して「個」を大事にし、国家よりも子どもの幸せを優先するという考えは微塵もみられない。まして「軍事教練」の義務化を賞賛する牧口に、軍国主義に反対する思想があったとはとうてい言えない。
こうした牧口の宣揚と軌を一にする形で創価学会は、牧口が率いた戦前の創価教育学会は、「侵略戦争・軍国主義」に抵抗した「反戦平和」団体であり、それゆえ創価教育学会の系譜を継ぐ創価学会は、戦前・戦後を通じ一貫して平和主義の旗を振ってきた「日本最大の平和勢力」などと自己宣伝を繰り広げている。
例えば平成十一年五月発行のSGI(創価学会インタナショナル)グラフ掲載の、「1945 初代・2代会長は、軍部国家主義と戦った」との見出しがついた記事には次のようにある。
「国家が強権で民衆をおさえこんだ時代。創価学会牧口(常三郎)初代会長は、国家主義にかたよらない、世界市民の育成を訴えた。侵略戦争に反対し、信教の自由のために苦闘した。そのため、牧口会長と戸田(城外)理事長(当時)は不当にも逮捕され投獄(1943年)。牧口会長は1944年11月18日、獄中に殉じ、1945年7月3日、戸田理事長は衰弱した体で豊多摩刑務所を出獄。壊滅させられた創価学会の再建に歩み出した」
たしかに牧口や戸田が不敬罪や治安維持法違反で逮捕されたことは事実だが、その理由を「国家主義にかたよらない、世界市民の育成を訴えた。侵略戦争に反対し、信教の自由のために苦闘した」ことによると主張することは、真っ赤なウソであり、歴史の偽造以外のなにものでもない。
こうした「反戦平和」団体を装う創価学会の歴史偽造については、拙著『公明党=創価学会の野望』(かもがわ出版)で詳述しているので、興味のある方はご一読いただきたいが、ここではそのエッセンスを記載して創価学会の欺瞞的体質を明らかにしてみたい。
筆者の手元には、創価教育学会の実態を伝えるいくつかの資料がある。その一つは総会の模様を記録した「大善生活実証録――総会記録」である。
創価教育学会は戦火が太平洋の各地にまで拡大した昭和十七年五月十七日に神田・一橋にある教育会館で第四回総会を開催し、その模様を「大善生活実証録――総会記録」と題して出版しているのだが、そこには創価教育学会の__真実_≠フ姿が、臨場感豊かに記載されている。
総会はまず宮城遥拝・黙祷で始まるが、続いて野島辰次理事の次のような「開会の辞」に移る。
「大東亜戦開始以来の戦果は、法華経の護持国家なればこそであります。昨夜のラヂオ放送の如き余裕下に、今日総会を開くのは感激の極みであります」
大東亜戦争(太平洋戦争)で赫々たる戦果があがっているのは、日本が法華経の護持の国であればこそであり、勝利の戦果を聞く時に総会を開催することは感激の極みだというのである。宮城遥拝に次いで首脳幹部が大東亜戦争の戦果を賞賛する。ここには「侵略戦争に反対」したという事実も、「軍国主義に抵抗」した事実も全く見あたらない。あるのは「侵略戦争」に迎合協力する体制翼賛団体としての創価教育学会の姿だけである。
そうした実態は、これ以後の各幹部の発言にも端的に示されている。
例えば、午後の部では、出征中の会員の来信の紹介に続いて戸田理事長が、次のような「生活改善同盟の歌(幹部会員四海民蔵作詩)」を披露している。
「男だ 日本人だ 日蓮正宗の信者だ 栄光ある生活改善同盟の戦士だ
大君のかがやく御稜威 八紘一宇肇国の御理想 今 全く地球を包む」
「大君の御稜威 八紘一宇肇国の御理想 今 全く地球を包む」とは、大東亜共栄圏の建設を目指した軍部政府のアピールそのものである。
さらには、岩崎洋三理事の次のようなあいさつ、牧口会長による「聖上の万歳を三唱し奉って」第四回総会は幕を閉じている。
「我々は大東亜戦争を戦ひ取っている、日本帝国の銃後の一員として課せられた一大使命を発見する者であります。産業報国が然り、職域奉公が然り貯金報国が然り簡素の生活が然り、而し斯る一通りの事に依って銃後の使命足れりとする創価教育学会の会員が万一ありとすればそは誤れるの甚しき物であります。然らば我等の使命は何ぞや。折伏之のみであります。折伏に於て此の幸福の生活を世間に延しひろめて、不安と疑と嫉妬と排斥ときづなと権謀の世界の消へ去った時こそ、たとへ何年でも大東亜共栄圏を戦ひ取る迄がんばり抜く銃後が築かれるのである」
八紘一宇の思想に基づく大東亜共栄圏を建設するために、通り一遍の協力のみならず、「大東亜共栄圏を戦ひ取る迄がんばり抜」ける優秀なる「銃後の民」を築くのが、創価教育学会員の一大使命だというのである。
創価教育学会の実態が、創価学会の言う「侵略戦争に反対」する「反戦・平和の団体」ではなく、軍国主義体制に迎合する体制翼賛団体であったことは、第四回総会での一連の幹部発言に照らせば明瞭である。
오늘날 지방 지역 방송국이 "교육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마키 구치 쓰네 사부로가 목표로 한 것~"특별 프로그램을 잇달아 방송하고 있다."성인의 가르침 신문"에 의하면 그 내용은 "프로그램에서는 군국주의의 가운데 『 국가를 위해서 』 아니『 아이의 행복 』의 교육을 지향한 마키 구치 초대 회장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 당시부터 반세기 이상을 거친 지금 브라질 등 국내외에서 그 교육 학설이 평가되고 실천하는 모양을 전했다"(두·니로크자)라는 것으로, 창가 교육 학회 회장인 마키 구치를 "자녀의 행복을 가장 첫째로 본 교육계의 위인"와 선양하는 듯하다.
이런 움직임과 연동하듯 창가 학회의 외곽(직영)출판사인 셋째 문명사와 조수 출판사에서도 마키 구치를 "군국주의에 항거한 위인""자녀의 행복을 제일로 한 교육계의 위인"이라고 어필하는 이른바"초롱 책"이 나오고 있다.
지만 마키 구치가 군국주의에 항거,"국가"보다 "개인"인 "아이의 행복을 가장 제일"의 교육자였거나 하면 결코 그런 일은 없다.
군사 교련을 높이 평가
왜냐하면 마키 구치는 그 교육 방법에 특수한 착상은 가지고 있었지만 국가, 군국주의 체제와 관계에서 말하면,"충군 애국""진충 보국"을 자녀에게 심어 주려는 것을 추진하는 체제 영합의 일반적인 교육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실례를 줄게. 마키 구치는 두·흐로 사건이 일어난 쇼와 십일년"『 고즈이 종횡담 』과 교육·종교 혁명"이라는 논문을 집필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문부성이 교육 현장에서 "군사 교련"를 의무화한 것을 "썩 잘한다"이라고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요즘, 문부성이 군사 훈련을 부과한 것은 최근의 썩 잘하다.……뭐라고, 지금의 비상 국가에 적절한 충고이다"
또 이에 앞서다이쇼 원년에는,"교수의 통합 중심으로 토속학 연구"라는 논문에서 아이에게 "충군 애국""진충 보국"의 개념을 철저히 주입해야 한다고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국가 및 국가의 수장 천황은 완전히 일심 동체라고 하야 하며 너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곧 나라를 사랑하는 이유임을 충분히 아이에게 양해시켜서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나라"에 우선해서"개인"를 아끼고 국가보다 자식의 행복을 우선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군사 교련"의무화를 찬양하는 마키 구치에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사상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마키 구치의 선양과 궤를 같이 하는 형태로 창가 학회는 마키 구치가 이끈 이전의 창가 교육 학회는 "침략 전쟁·군국주의"에 저항했다"반전 평화"단체인, 그래서 창가 교육 학회의 계보를 있는 창가 학회는 이전 및 전후에서 일관되고 평화 주의의 깃발을 흔들어 왔다"일본 최대의 평화 세력"등과 자기 선전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면 헤세이 십일년 오월 발행의 SGI(창가 학회)그래프 게재의 "1945초대·2대 회장은 군부 국가 주의와 싸웠다"라는 표제가 붙은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있다.
"국가가 강권으로 민중을 오사에코은한 시대. 창가 학회 마키 구치( 쓰네 사부로)초대 회장은 국가 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세계 시민 육성을 호소했다.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종교의 자유 때문에 고전했다. 그래서 마키 구치 회장과 토다(궁성)이사장(당시)이 부당하게 체포된 투옥(1943년). 마키 구치 회장은 1944년 11월 18일 옥중에 목숨을 버리다, 1945년 7월 3일, 토다 이사장은 쇠약한 몸으로 풍다마 교도소에서 출옥. 파괴된 창가 학회 재건에 걸어 나왔다"
틀림없이 마키 구치, 토다가 괘씸죄나 치안 유지 법 위반으로 체포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를 "국가 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세계 시민 육성을 호소했다.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종교의 자유 때문에 고전했다"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며 역사 위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반전 평화"단체를 가장한 창가 학회의 역사 위조에 대해서는 졸저 『 공명당=창가 학회의 야망 』(카모 가와 출판)에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으므로 흥미가 있는 분은 읽어 주고 싶지만, 여기에서는 그 에센스를 기재하고 창가 학회의 기만적인 성향을 밝히고 싶다.
필자의 수중에는 창가 교육 학회의 실상을 알리는 여러 자료가 있다. 그 하나는 총회의 무늬를 기록했다"다이젠 생활 실증록 ― ― 총회 기록"이다.
창가 교육 학회는 전화가 태평양의 각지로 확대한 소화 십칠년 오월 십칠일에 칸다·히토쓰바시에 있는 교육 회관에서 네번째차 총회를 열고 그 모양을 "다이젠 생활 실증록 ― ― 총회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고 있지만, 거기에는 창가 교육 학회의__진실_≠의 모습이, 실제감 풍부하게 기재되어 있다.
총회는 먼저 궁성 요배, 묵념으로 시작된데 이어 노지마 타쯔지 이사의 다음과 같은 "개회사"로 넘어간다.
"대동아전 개시 이후 전과는 법화경의 수호 국가 이를테면야 있습니다. 어젯밤 라디오 방송 같은 여유 속에 오늘 총회를 열것은 감격의 극치입니다"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가 오르는 것은 일본이 법화경의 수호의 나라이기에이고 승리의 전과를 들을 때마다 총회를 개최하는 것은 감격의 극치다. 궁성 요배에 이어정상들이 대동아 전쟁 전과를 칭찬하다. 여기에는 "침략 전쟁에 반대" 했다는 사실도 "군국주의에 저항"한 사실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있는 것은 "침략 전쟁"에 영합 협력하는 체제 익찬 단체로서의 창가 교육 학회의 모습 뿐이다.
그런 어려움은 이 이후의 각 간부의 발언에도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오후의 부에서는, 출정 중 회원의 내신의 소개에 이어토다 이사장이 다음과 같은 "생활 개선 동맹의 노래(간부 회원 사해 타미조 작시)"을 선 보이고 있다.
"남자다 일본인인 일련 정종의 신자다 영광 있는 생활 개선 동맹의 전사다.
대군의 빛나는 미이즈 팔굉 일우 조국의 이상 지금 전혀 지구를 쌌다"
"대군의 미이즈 팔굉 일우 조국의 이상 지금 전혀 지구를 쌌다"란 대동아 공영권 건설을 목표로 한 군부 정부의 어필 자체이다.
또, 이와사키 히로미 이사의 다음과 같은 인사, 마키 구치 회장에 의한 "성상의 만세를 삼창 하다 모시고"넷째번 총회는 막을 내리고 있다.
"우리는 대동아 전쟁을 전히 취하고 있는 일본 제국의 후방의 일원으로서 부과된 일대 사명을 발견하는 자입니다. 산업 보국이 마찬가지, 직역 고용살이가 마찬가지 저축 보국이 마찬가지 간소 생활이 마찬가지,았고 해이의 대략의 것에 의존하고 후방의 사명 충분하다고 한다. 창가 교육 학회의 회원이 만일 있다면 조금은 잘못되는 것 심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절복 이것 뿐입니다. 절복에 있어서 이 행복의 생활을 세상에 연기하다 넓히고, 불안과 의심과 질투와 배척 때 즈나과 권 모의 세계의 사라지에 떠날 때 경과에 몇년이나 대동아 공영권을 전히 취하까지 끝까지 견디다 후방이 쌓는 것이다"
팔굉 일우의 사상에 기반한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해서, 피상적인 협력뿐만 아니라"대동아 공영권을 전히 취하까지 열심히 일본"다 우수한 "후방의 백성"을 만들기, 창가 교육학 회원의 일대 사명이라는 것이다.
창가 교육 학회의 실태가 창가 학회의 말"침략 전쟁에 반대" 해"반전 평화 단체"가 아니라 군국주의 체제에 영합하는 체제 익찬 단체인 것은 넷째번 총회의 간부 말에 비추면 명료하다.
자료출처 : http://www.correct-religion.com/pages/souka07-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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