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정 공원

45년간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 4번 출구 근처에 있는 사가정공원은 2005년 4월 13일 개장한 공원이다. 공원의 명칭은 용마산 근처에서 거주했던 조선 전기의 문인인 서거정 선생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그의 호 사거정을 따서 지어졌다. 또한, 그의 대표적인 시 4편을 골라 시비를 만들어 설치하여, 공원 이용객들이 산책과 함께 명시를 감상할 수 있게 꾸몄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 서거정(1420~148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강중(剛中), 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이다. 45년간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신흥왕조의 기틀을 잡고 문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김시습과 쌍벽을 이룬 당대의 대문호였지만, 김시습과는 달리 계유정난 때 세조의 편에 서게 되어 출세 가도를 달린 고위 관료였다.

문장에 일가를 이루고, 특히 시(詩)에 능하였다. 1438년(세종 20)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44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다.

1470년(성종1) 좌참찬이 되었고, 1471년 순성명량좌리공신(純誠明亮佐理功臣) 3등에 녹훈되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1474년 다시 군(君)에 봉해지고 좌참찬에 복배되었다. 1476년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중국사신을 맞이했는데, 수창(酬唱: 시로써 서로의 마음을 문답함)을 잘해 기재(奇才)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그를 통한 황화집 皇華集의 편찬으로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저술로는 시문집으로 『사가집(四佳集)』이 전한다. 공동 찬집으로 『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동문선(東文選)』·『경국대전(經國大典)』·『연주시격언해(聯珠詩格言解)』가 있고, 개인 저술로서 『역대연표(歷代年表)』·『동인시화(東人詩話)』·『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필원잡기(筆苑雜記)』·『동인시문(東人詩文)』 등이 있다. 그의 글씨는 충주의 화산군권근신도비(花山君權近神道碑)에 남아 있다. 시호는 문충이며, 대구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 되었다.

서거정은 용마산 자락에 정자 사가정(四佳亭)을 짓고 자기가 좋아한 매화 대나무 연꽃 해당화 네 가지를 정자에 심어 만끽했다고 한다. 그의 호 사가(四佳)는 네 가지 아름다움을 좋아함을 뜻한다고 한다.



사가정공원 시비를 한번 감상 해 보자. 

白髮紅塵閱世間 世間何樂得如閑
開吟開酌仍閑步 閑坐閑眠閑愛山
홍진에 백발이 되도록 세상을 살아보니
세상살이에 그 어떤 즐거움이 한가로움 같으랴.
한가히 시 읊고 한가히 술잔 들며 한가히 산보하고
한가히 앉아 쉬고 한가히 잠들고 한가히 산을 즐김에야.



주렴의 그림자 방안 깊숙이 드리우고 (簾影深深轉)
연꽃 향기 연이어 방안으로 들어오네 (荷香續續來)
홀로 낮잠을 자다 꿈에서 깨니 (夢回孤枕上)
오동잎에 우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桐葉雨聲催)



金入垂楊玉謝梅 (금은 수양에 들고 옥은 매화에서 떠나는데)
小池春水碧於苔 (작은 못의 봄물이 이끼보다 파랗구나)
春愁春興誰深淺 (봄의 수심과 흥취는 어느 것이 더 깊고 얕은가)
燕子不來花未開 (제비는 아직 오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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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