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용궁사

용궁사는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산 이름을 백운산 절 이름을 백운사라 하였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인천 영종도 백운산 용궁사(龍宮寺 인천 유형문화재 제15호)

영종대교를 건너 15분 정도 가면 백운산 자락에 천 삼백 년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용궁사가 있다. 흥선대원군이 쓴 편액이 걸려있는 용궁사는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산 이름을 백운산 절 이름을 백운사라 하였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 후 구담사로 불리다가 조선 철종 5년(1854)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수 되면서 용궁사로 바뀌었다. 대웅보전, 관음전, 용황각, 삼성각, 요사채 등의 건물과 최근에 조성된 미륵불이 있다.

고기잡이로 근근이 살아가는 한 어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바다에 쳐놓았던 그물을 걷어 올렸는데 조그만 옥 부처가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어부는 "뭐 이런 것이 걸렸지"라고 투덜거리며 바다에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던진 후 건져 올렸더니 이번에도 먼저 건져 올렸던 옥 부처가 걸려 올라왔다 이러한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어부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옥 부처를 바다에 던지지 않고 백운사(용궁사 옛 이름) 관음전에 모셨다. 그 후 백운사 앞을 말이나 소를 타고 지나면 발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한 채 서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자 이 절 앞을 지날 때는 내려서 지나곤 하였고, 영험한 절로 알려져 사람들이 찾게 되었고 어부도 고기를 많이 잡아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관음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보살로 자비를 상징한다. 수월관음도는 보름달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으로 부처님을 그린 불화를 말한다. 용궁사 수월관음도는 화면 중앙에 흰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기암괴석 위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관음의 오른쪽 바위 위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화병이, 왼쪽에는 한 쌍의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19세기에 유행했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도교적인 요소를 수용하고 있다. 이 그림은 1880년에 근대의 저명한 화승인 축연과 종현이 함께 제작한 것으로 3폭의 비단을 이어서 만들었다 관음전 기둥에 쓴 글귀(주련)에는 근대 서화가이자 고종의 사진가였던 해강 김규진의 글씨가 남아 있다 내부에는 옥석으로 조각한 관음상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도난당했다. 시주자 명단에는 옛 구담사에 시주한 대왕대비 조씨와 상궁을 비롯한 여러 궁중 인물 등이 시주자로 등장하고 있어 왕실과의 관계가 돈독했음을 알 수 있다.



                   용궁사 수월관음도(龍宮寺 水月觀音圖 인천 유형문화재 제76호)

용궁사 경내에 느티나무 2그루(할아버지 나무, 할머니 나무)가 있다 할아버지 나무는 할머니 나무쪽으로만 가지를 뻗는다하여,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용궁사에 와 용황각 약수를 마시고 할아버지 나무에게 기원하면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궁사 느티나무(인천광역시 기념물 제9호) 수령 1,300년 높이 20m 둘레 5.63m 



               흥선대원군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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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