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1

문경 토끼비리 옛길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1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했던 문경 토끼비리 옛길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鳥嶺川)과 가은읍에서 흘러가는 영강(穎江)이 만나는 곳에서는 아주 특별한 산길이 있다. 이 산길은 산골짜기의 협곡을 따라 굽이굽이 물이 흐르면서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벼랑을 따라 나 있다. 오정산(810.5m)의 서쪽 끝자락에서 영강이 만나는 곳의 절벽에 만들어진 이 긴 길이가 약 3km에 달하는 잔도(棧道)이다. 잔도는 바위 절벽 등을 파고 다듬어 낸 옛길이다. 토끼비리는 조선 시대에 영남지방과 한양을 오가던 사람들이 다니던 영남대로의 옛길에서 가장 험난한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길이 통과하는 구간의 지형이 험준하다는 데에서 ‘관갑’이라는 이름을 붙여 관갑천잔도(串岬遷棧道)라고도 부른다.


문경토끼비리_고모산성 상단방향



문경토끼비리

‘비리’는 위험한 낭떠러지의 험하고 가파른 언덕을 일컫는 ‘벼루’ 또는 ‘벼랑’의 경상도 방언이고 한자로는 천(遷)으로 표기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을 향해 군사를 이동할 때 이곳에 이르러 길이 사라지자 고심했다고 한다. 그 순간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그 길을 따라갔더니 군사들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서 토끼비리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로부터 토천(兎遷)이라는 명칭도 생겨났다.

조선 시대에는 낙동강을 거슬러 온 사람들이 문경새재로 갈 때 물이 흐르는 영강의 물길보다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산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토끼비리를 자주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남대로는 조선 시대에 한반도에서 사람들의 통행이 가장 잦았던 구간이다. 당시의 영남대로는 지금의 경부고속도로보다 100리 이상이나 짧은 도로였다고 전해진다. 토끼비리의 바닥은 암석으로 되어 있지만, 수백 년 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암석이나 바위는 미끌미끌해졌으며 사람들이 디뎠던 곳은 발자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양으로 반질반질 닳고 달았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은 아니지만, 주변을 통과하는 철도 및 고속교통로 등과 어우러지고 자연경관과도 잘 어울리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옛길로 남아 있다. 벼랑길의 바닥에서 우리 선조들이 다니던 옛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토끼비리 구간은 근대와 현대에 들어서 새로운 교통로가 개통되면서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곳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토끼비리를 서쪽으로 돌아 문경읍으로 향하는 국도 3호선이 개통되었다. 문경지방에서 무연탄이 생산되면서 무연탄을 수송하기 위한 문경선이 1955년 9월 개통했으며, 문경선의 지선인 가은선도 개통되었다. 이 두 철도는 1990년대 중반까지 활기차게 운행했지만, 이후 석탄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1990년대 중반 운행을 멈추었다. 지금은 토끼비리에서 영강 건너편에 옛 철도 노선만이 남아 있으며, 이 철길은 레일바이크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바뀌었다. 토끼비리의 동쪽은 오정산의 정상부로 향하는 구간이어서 해발고도가 높아진다. 2010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문경시를 통과하여 개통되면서 토끼비리 동쪽의 산악구간은 진남터널을 통해 통과한다. 토끼비리와 그 주변 지역은 옛길을 중심으로 근대와 현대의 길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토끼비리는 43,067㎡의 면적이 2007년 12월 17일 명승 제31호로 지정되었으며, 옛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영강과 절벽, 강 건너편의 맞은편 마을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옛길의 중간중간에는 주막거리와 성황당을 설치하고 당나무를 심어 옛길 문화를 잘 보여준다. 진남교 주변의 진남교반은 경북 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힐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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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