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망덕사 선율 스님

선율 스님은 대반야경을 완성 시켰다. 이 경의 내용은 모든 법은 空하다는 사상을 밝힌 것이다.

망덕사 선율 스님

신라시대 서라벌 망덕사에는 선율(善律)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망덕사지(慶州 望德寺址)는 경상북도 경주시 낭산의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7호로 지정되었다.

망덕사지는 대부분 경작지로 개간되어 있으며, 동서 목탑과 금당, 강당, 중문, 회랑, 익랑의 터 및 보물 제69호인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어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의 쌍탑 가람 배치를 보인다. 2013년에는 절터 정비를 위하여 실시한 시굴 조사에서 강당터의 위치를 추가로 확인 하였으며, 고려 초기까지 사찰이 존속하였음도 밝혀졌다.


보물제 69호 망덕사 당간지주

망덕사 주춧돌

사리공에 사리함을 봉안한 2단으로 구성된 네모 모양의 구멍

망덕사지 남쪽으로 흐르는 남천 모래밭을 장사(長沙)라 하여, 신라 눌지왕 때의 삽량주간 박제상(朴堤上)이 왕명으로 왜로 떠나갈 때 그 부인이 이 모래밭 위에서 드러누워 오랫동안 울부짖었던 곳으로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이글은 삼국유사에 있는 내용이다.


선율 스님은 600권이나 되는 대반야경을 엮으려고 열심히 시주를 모았다.
그런데 갑자기 저승사자가 찾아와서 명부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때 명부의 판관이 선율에게 인간 세계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하였는지 물었다. 그러자 선율은 "빈도는 만년에 대반야경을 만들려고 하다가 미처 이루지 못하고 갑자기 끌려 왔다"고 했다. 판관이 저승장부를 넘기다가 "네 운명이 이미 끝이 났지만 훌륭한 일을 하다 이루지 못하고 왔으니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가서 그 경전 일을 끝내도록 하라"고 돌려보냈다.

그래서 저승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길옆에서 어떤 여자가 울면서 나와 선율 스님에게 절을 하며 말하였다. 나도 역시 서라벌에서 살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우리 부모가 금강사의 논 한 마지기를 빼앗은 일로 인하여 이곳에 끌려와서 오랫동안 몹시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선율 스님이 서라벌로 돌아가시면 이 일을 우리 부모에게 알려서 속히 그 논을 되돌려주도록 해주십시요. 또 제가 세상에 있을 때 참기름을 상 밑에 묻어 두었고 곱게 짠 무명도 이불 틈에 감추어 둔 것이 있습니다. 선율 스님께서 부디 그 기름을 가져다가 불전에 불을 켜는데 쓰고 그 무명은 팔아서 경전 만드는데 보태어 써주십시요. 그렇게하면 황천에서도 그 은혜를 입어 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여자의 집은 사량부 구원사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였다. 선율스님은 이 말을 듣고 곧 명부를 떠나 다시 살아나왔다. 그런데 선율 스님이 죽은 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이미 남산 동쪽 기슭에 장사를 지낸 후였다. 그래서 무덤 속에서 사흘이나 소리를 외쳤더니 지나가던 목동이 이 소리를 듣고 절에 가서 알렸다. 스님들이 와서 무덤을 파고 선율 스님을 꺼냈다. 선율 스님은 그동안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 여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 여자는 이미 죽은 지 15년이나 되었는데 참기름과 무명은 그대로였다. 선율 스님은 그 여자가 말 한대로 하고 명복을 빌어 주었다. 어느 날 그 여자가 나타나서 선율 스님의 은혜로 고통의 구덩이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놀라고 감동하였다. 이리하여 스님은 대반야경을 완성 시켰다. 이 경의 내용은 모든 법은 空하다는 사상을 밝힌 것이다. 그것을 동도 승사서고 안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매년 봄과 가을에 그 경전을 펴서 재앙을 물리쳤다고 한다.  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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