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물로 시각을 넓히다

한반도에서 나오는 여러 유물 가운데 서역 등에서 온 것들이 종종 나타난다. 물론 직접적인 교류가 아닌 중국이나 고구려를 거쳐 들어왔을 수도 있다.

문물로 시각을 넓히다

한반도에서 나오는 여러 유물 가운데 서역 등에서 온 것들이 종종 나타난다. 물론 직접적인 교류가 아닌 중국이나 고구려를 거쳐 들어왔을 수도 있다.

터키석, 청금석 등 이국적인 보석을 끼워 넣은 황남대총의 금팔찌, 독특한 형태와 문양이 있는 계림로 황금보검, 금속기에 보이는 서역계 문양과 기법 등은 신라와 서역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오래계 문물이다.



한편 백제에서는 인도와 사산조 페르시아 등에서 발생한 독특한 식물 문양인 팔매트문이 무령왕릉 왕비 관식에서 보이는데 중국을 거쳐 전파된 문양 요소로 추정하고 있다. 또 사비 시기 유적에서 출토된 유리는 인도나 동남아시아산일 가능성도 있다.

가야지역인 남원 월산리와 합천 옥전 고분에서는 유리제품이, 창원에서는 낙타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


고구려에 대해서는 알려진 자료가 적지만 벽화무덤에 다양한 서역계 요소가 묘사되어 있다.


삼채 낙타. 당나라. 국립중앙박물관

경주월성 해자(토우) 삼국시대

황금보검. 경주 계림로14호묘 삼국시대

경주천마총(유리잔) 삼국시대

경주 식리총(금동신발) 삼국시대

삼채뼈항아리. 경주조양동. 통일신라시대

청동세발솥. 울산하대. 고구려시대

황남대총(금팔찌)  삼국시대


삼국시대 외래계 문물들이 이렇게 특정 지역에 편중되는 현상은 단순히 삼국의 서로 다른 생활양식이나 취향 차이 때문만은 아니라 지정학적 위치와 한반도 내부의 긴장 관계 속에서 한층 복잡해진 각국의 정치, 외교 활동 등이 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삼국이 통일되고 난 후 국제적인 문화 다양성을 즐기고 공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경주에서 출토된 당삼채, 오리모양뿔잔, 청동병 등은 모두 당나라에서 유행하던 것들이었다. 당나라와의 교류는 물품에 그치지 않고 신라인의 복식과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신라에서 번영한 국제적 문화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당시 중국의 서쪽을 지칭하는 서역의 문화가 한층 풍부해졌다는 점이다. 경주 용강동의 서역인상, 원성왕릉의 무인상 등은 신라인과는 달리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이국적인 용모를 띠고 있어 주목된다.

주로 동아시아 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물의 교류는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시점부터 그 외연을 확장해 나갔다. 전통적인 동북아시아 해로와 해상 실크로드가 연결되면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에서 반입된 유리구슬도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흉노와 한반도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북방 유목민족의 상징적 동물장식 장신구와 금속제 솥 등도 나타난다. 나아가 한반도 남부 해안지역에 약 20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출토되는 일본 야요이 토기들의 존재도 확장된 문물교류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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