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려준 天賜玉帶

신라의 세 가지 보물은 진평왕의 천사옥대와 황룡사 9층탑, 황룡사 장륙존상이다.

하늘이 내려준 옥대,  天賜玉帶(천사옥대)

신라 제26대 임금은 진평대왕이다.

진평왕은 제 24대 진흥왕과 사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동륜태자의 아들이고 제25대 진지왕의 이복형이다. 동륜태자와 입종의 딸 만호부인이 결혼해서 白淨(진평왕)을 낳았다.

572년 백정이 여섯 살 때 동륜태자가 죽고 할머니 사도태후 밑에서 자랐다. 진평왕의 왕위 계승은 사도태후의 정략이었다. 진흥왕의 말기에는 왕비인 사도부인과 진흥왕의 애첩 미실이 권력을 움직이고 있었다. 진흥왕이 죽자 그들은 금륜(진지왕)을 찾아가 자기들에게 충성한다면 왕위를 넘겨주겠다고 제의를 하였다. 금륜은 그 제의를 받아들여 진지왕이 되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진지왕은 사도태후와의 갈등이 심하였다. 이로 인하여 579년 8월 사도태후는 오빠인 이찬 노리부와 미실의 남편 세종과 함께 반정을 일으켜 진지왕을 제거하고 손자인 백정을 왕위에 올리고 진평대왕이라 하였다. 진평왕은 이때 열세 살 어린 나이로 사도태후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평왕은 기골이 장대해서 신장이 무려 11척이나 되었다. 어느 날 天柱寺에 거동하여 섬돌 위에 올라서자 두 개의 섬돌이 한꺼번에 부러졌다. 그리고는 이 돌을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고 후세 사람들이 보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城 안에 있는 다섯 가지 움직이지 않는 돌 중의 하나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이다. 진평왕이 즉위하던 해에 하늘의 사신이 대궐 뜰에 내려왔다. 옥황상제가 보낸 옥대를 가지고 왔다. 진평왕이 그 옥대를 받아들자 사신은 사라지고 말았다. 동지와 하지 때 제를 올리거나 종묘에 나갈 때는 반드시 이 옥대를 띠고 있었다. 그 뒤 고려 시대인 937년(태조 20) 5월에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이 옥대를 고려 태조에게 바쳐, 태조는 이것을 받아 내고에 간직해 보물로 삼았다. 길이가 10위이고 장식한 띳돈이 62개라 한다.

신라의 세 가지 보물은 진평왕의 천사옥대와 황룡사 9층탑, 황룡사 장륙존상이다. 다음회에  황룡사 9층탑과 장륙존상에 대하여 연재 한다. 구름 위의 하늘이 보내준 옥대는 진평왕의 곤룡포에 더욱 빛이 나고 그 옥체 한층 무거워지니 섬돌은 이제부터 쇠로 만들어야 되지 않을련지 1,500년전 그 때를 회상해 본다.  정태상


진평왕릉.  사적 제180호이며 그 면적이 4만 3,645㎡이다.

릉의 지름은 36.4m이며, 높이는 7.9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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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