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안식처, 사리탑

진신사리는 불교신앙의 중심으로 석가모니 자체로 인식되었고, 인도에서 시작해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

불법의 안식처, 사리탑

진신사리는 불교신앙의 중심으로 석가모니 자체로 인식되었고, 인도에서 시작해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진신사리는 통도사를 비롯해 오대산 중대, 봉정암, 법흥사, 정암사에 봉안되었다. 강원 영동지방을 대표하는 사찰인 양양 낙산사와 고성 건봉사에도 진신사리가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 제작된 사리탑과 탑비가 남아 있다. 특히 사리탑은 일반적인 불탑이 아니라 승탑과 동일한 형식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보물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 ©개인자료



1692년 건립된 낙산사 공중사리탑

2005년 양양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낙산사는 극심한 피해를 보았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높이 3.35m의 공중사리탑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2006년 공중사리탑의 해체 및 수리가 진행되었고, 둥근 탑신석의 위쪽 사리공에서 비단보자기에 싸인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사리 1과가 자줏빛 유리호 안에 있었고 금제합, 은제합, 청동합 순으로 포개져 있었다. 청동합 안에서 발견된 발원문에는 강희 31년(1692년)에 사리기를 봉안하였다고 기록하였다. 홍련암으로 향하는 길목에 따로 세워진 해수관음공중사리비명에는 “1619년에 관음상을 봉안한 전각을 중건하고 1683년에 관음상을 개금했더니 하늘에서 사리 하나가 떨어져 이를 봉안한 탑을 만들어 세웠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탑비는 춘천부사로 재임하던 이석현이 썼으므로 사리 출현과 봉안에 대해서 그 당시 불교계뿐만 아니라 관청의 관심도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낙산사 공중사리탑은 승탑과 동일한 기단, 탑신, 옥개석으로 구성되었다. 기단에는 태극과 연꽃, 범(梵)자 등 다양한 문양을 조각했고, 그 위에 둥근 탑신을 얹었다. 옥개석은 삿갓 형태이고 연꽃봉오리형 보주로 마무리된 상륜부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사리탑은 탑비와 사리기, 발원문까지 모두 갖추고 있고 제작 시기가 명확한 기준작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02.건봉사 사리탑 ©개인자료    03.보물 양양 낙산사 사리장엄구 ©문화재청



사명대사가 되찾아온 진신사리가 봉안된 건봉사

건봉사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사찰이다. 건봉사 사리탑은 1726년에 제작된 석가불치상입탑비, 1906년에 세워진 석가여래영아탑봉안비, 제작 시기를 알 수 없는 석종형부도와 함께 적멸보궁 뒤편의 오른쪽에 서 있다. 세존사리탑은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탑임에도 불구하고 금당 앞에 건립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구역에 따로 위치하고 있는데 건봉사도 마찬가지이다. 건봉사 사리탑의 높이는 3.45m이고 전체적으로 세장한 느낌을 준다. 사각의 지대석 위에 팔각을 이루는 기단과 둥근탑신,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낙산사 사리탑과 동일한 형식이다. 기단에는 각 부분에 구름이나 연꽃, 범자, 아(亞)자형 무늬를 새겼다.

옥개석은 낙산사 사리탑과 같이 삿갓처럼 보이는 팔각지붕으로 기왓골이 없으나 기울기는 다르다. 상륜부 일부에는 연꽃을 조각하고 연꽃봉오리형 보주로 마무리했다. 내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금속합 3개가 겹쳐져 가장 안쪽의 후령통을 감싸고 있다. 금속합 3개를 사리기로 사용한 점은 낙산사 사리장엄구와 동일하다. 사리탑 뒤쪽에 세워진 탑비에는 “1605년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되찾아온 통도사 진신사리 가운데 12과를 건봉사 낙서암에 간직했다가 여러 해가 지나고 탑을 세워 봉안했다”라고 기록되었다. 건봉사 사적기를 보면 ‘1724년에 주지 채보가 구층탑을 세우고 불치사리를 봉안했다’는데 현재 사리탑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1986년에는 진신사리 모두를 도난당했는데, 8과는 돌아왔으나 나머지 4과는 찾지 못했다. 1996년에 돌아온 사리 가운데 3과를 사리탑에 다시 봉안했고, 나머지 5과는 만일염불원에 봉안해 지금도 직접 볼 수 있다.


영동지방의 사리신앙

낙산사와 건봉사의 사리탑은 조각수법이나 장식무늬 배치, 옥개석의 기울기, 상륜부 세부 표현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승탑과 동일한 형식을 갖추고 있고 두 사찰의 비교적 가까운 거리와 제작 시기를 볼 때 영향관계가 분명해 보인다. 승탑을 닮은 사리탑은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 분명하므로 세존사리탑이나 석가사리탑 또는 불사리탑으로도 불린다. 정확한 용어에 대한 논의와 결론이 필요하지만 진신사리를 향한 신앙에는 변함이 없다. 조선 후기 강원 영동지역에서도 그 신앙이 이어졌고 사리탑에 대한 예불을 통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출처 / 전미숙(양양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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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