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에게 바친 분청사기, 희준(犧尊)

가야진사 일대는 과거부터 낙동강의 잦은 범람으로 피해가 큰 지역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국가 제사를 지냈다.

용신에게 바친 분청사기, 희준(犧尊)

가야진사 일대는 과거부터 낙동강의 잦은 범람으로 피해가 큰 지역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국가 제사를 지냈다. 그때 사용되었던 제기(祭器)중에는 소를 형상화한 것도 있다. 큰 희생(犧牲)을 상징하는 소의 몸체에 용신을 달래기 위한 술을 담아 사용하였다.

01.가야진사 출토 분청사기 희준 ⓒ양산시립박물관
02.『국조오례서례』「제기도설」희준(1474년 간행) ⓒ규장각


잦은 범람 막고자 세운 가야진사

조선시대의 양산 가야진사(伽倻津祠) 유적은 현재의 가야진사(경상남도 민속자료)와 용신제 전수회관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 전기의 가야진사 건물지와 제단이 확인되고 여러 가지 종류의 분청사기 제기가 출토되었다. 1

가야진사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용산과 마주하고 있다. 용당리를 지나가는 낙동강은 홍수 때 북쪽으로 돌출된 용산에 부딪혀 물 소용돌이를 형성한다. 과거부터 이곳을 용이 사는 용소(龍沼) 또는 회룡(回龍)이라 불렀다. 가야진사일대는 낙동강의 잦은 범람으로 길과 건물이 망가지는 일이 잦았기에 강의 순조로운 수운과 범람을 막기 위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조선은 태종대에서 세종 연간까지 국가의 제사 체계인 사전(祀典) 정비를 추진했고 국가에서 시행하는 다섯 가지 의례를 오례(五禮)로 규정했다. 오례의 하나인 길례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사에 관한 의례로 길례의 대상은 하늘 신[천신(天神)], 땅 신[지기(地祇)], 사람 신[인귀(人鬼)]이다. 길례는 제사의 규모와 중요도에 따라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구분하였다. 조선의 악해독(嶽海瀆)제사는 큰 산과 바다, 강을 대상으로 하는 산천제(山川祭)로 중사(中祀)였고 기우나 기복적 성격이 강하였다. 2

조선시대 가야진(伽倻津)은 태종 때 규정된 악해독(嶽海瀆) 제사 중 남독(南瀆)의 하나였다. 가야진이라는 장소가 의미하는 상징성은 여러 문헌기록에서 확인된다. 『세종실록』 11권, 세종 3년(1421) 4월에 “용이 경상도 가야진에 나타났다”는 기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22권, 사묘조에는 “사전(祀典)에 공주·웅진과 함께 남독(南瀆)을 삼았다고 중사(中祀)에 실려 있다. 해마다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지낸다 하였다”라고 한 내용으로 보아 가야진사의 제사 대상은 낙동강을 수호하는 용신이며 이러한 이유로 용신이 사는 용당리에 제단을 설치하였다.

03.『신증동국여지승람』 1권 팔도총도(八道總圖)의 가야진(伽倻津) (1611년 간행), ⓒ규장각

04.『세종실록』 「오례」 희준(1454년 편찬) ⓒ규장각  05.가야진사 출토 분청사기 희준 ⓒ양산시립박물관



실제로 사용되었던 제기 유물로 가치 커

국가의 사전에 올라있는 제사는 각각의 제사의식에 따라 전물(奠物)과 제기를 갖추었으며 이는 『세종실록』 「오례」와 『국조오례서례』에 그림과 함께 상세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제기는 그 성격에 따라 형태와 재질이 다양하다. 금속제 제기는 봉상시(奉常寺)가 주관하여 일정한 규격과 형태에 맞게 주조하였다. 그러나 경도(京都) 밖에서 이루어진 왕실관련 제사나 지방 군현의 제사에서는 금속제 제기의 주조가 여의치 않을 경우 자기제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가야진사 유적에서 출토된 보(簠), 궤(簋), 등(豋), 작(爵), 희준(犧尊), 상준(象尊), 대준(大尊), 세(洗) 등의 자기제 제기는 『세종실록』 「오례」와 『국조오례서례』 「제기도설」에 근거하여 만들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희준’으로 불리는 제기는 소를 형상화한 술항아리로 1454년에 간행한 『세종실록』 「오례」에 보이는 발형(鉢形) 희준과 1474년에 간행된 『국조오례서례』의 상형 희준이 모두 출토되어 가야진사의 운영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양산 가야진사 유적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제기는 조선 전기 국가 사전(祀典)에 중사로 등재된 가야진사에서 실제 사용된 ‘제기’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참고자료
1.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재단법인 한국문물연구원, 『梁山 龍堂里 朝鮮時代 伽倻津祠遺蹟』, 2013.
2.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가제례』, 2016, p. 85.

06.『광여도』(1737년 간행)의 가야진단(伽倻津壇) ⓒ규장각
07.『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9세기 초)의 가야진사(伽倻津祠) ⓒ규장각
출처 : 심지연(청주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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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