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발자취를 따라 가는 길 2편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를 향해서 ~
역시 맛난 음식을 먹고나니 발걸음도 가볍다. 걸어가면서 박성용씨와 잡담을 나누었다. "조선통신사의 스탭들은 우리들처럼 이런 느린 걸음으로 걸었을까요? " "아마 당시에는 전문 짐꾼들 처럼 힘있는 사람들이 왔겠지요" 그럴것 같았다. 옛날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억만리 이국땅을 높은분들을 가마에 모시고 가는 스탭들은 아마도 수능시험보다 엄한 면접을 통해서 돌쇠들을 뽑았을 것 같다. 우리 지금 약쇠들 , 가끔은 앉아 꼭 쉬어가며 걸어야하는 잠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우리들은 공부가 부족하여 많이도 잘못 생각한 것이 있다. 그것은 <조선통신사> 스탭으로 뽑히면 큰 영광이었고 서로가 가려고 했을 것이다 ... 아니다 ! 아니었다 !
분명 국가의 큰 사명을 받고 가는 길이기에 자랑스러워 할 일이다. 그러나 교통수단의 미발달로 배가 뒤집히는 등 사망사고도 자주 났기에 서로가 가지 않으려 했다는 기록도 다수 전해지고 있다.
걸으면서 박성용씨의 한마디가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조선통신사의 뛰어난 외교관이며 문신이 <여우길呂祐吉>씨이고, 재일교포 민단 중앙단장이 <여건이>씨 이니까 여건이씨가 한일간의 관계회복에 조선통신사의 지혜로 잘 해야한다. 나루호도 ~ なるほど~ 어느덧 우리들은 스미다가와 隅田川를 걷고있다. 맑게 개인 하늘아래 잠수함처럼 생긴 멋진 유람선이 물을 가르며 지나간다. 저 멀리 스카이츠리도 보인다. 강가에는 다양한 계절 꽃들이 봐 달라고 고개를 쳐든다. 아무리 이뻐도 눈길은 살짝만 주었다.따라오면 책임도 따르니.
다음에 길가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은 <에도도쿄박물관>이었다. 옆 공원에는 평화주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동상이 삿갓을 쓰고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만약 임진왜란의 학살범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 이었다면 침을 뱉고 발길질을 했을 것이다. 마음 속으로 오랜 선린관계에 감사함을 전하며 찰칵 ! 찰칵 ! ~ 2키로만 더가면 최종 목적지히가시혼간지 東本願寺 ! 어느덧 아사쿠사로 연결되는 길에 차량 행렬이 가득하다. 관광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멋진 인력거도 연인을 태우고 달리고있다. 그 들은 아마도 그 옛날의 영주인 다이묘의 기분으로 탄듯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자 ! 곧 도착합니다. 박성용씨의 웃음 가득 외침이 들린다. 큰 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서자큰 기와를 이고있는 사찰이 보였다. 여기가 바로 우리 조선통신사 선조분들이 9회~12회 끝날 때까지 주무신 숙소였다.
잠시 그 무언가의 감회가 밀려왔다. 역사가 함께 밀려왔다. 우리는 감회에 젖어 함께 둘러서서 박성용씨의 말씀과 서로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며 하루를 정리했다. 오늘 우리가 선조분들의 발자취를 따라온 길은 짧았다. 한일간의 평화를 갈망하는 희망은 길게 길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2019 .4. 20 ㆍ 끝
자료출처 : 도쿄 박정석 선생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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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